닐 하우 지음│박여진 역│한국경제신문│4만3000원 시간을 이해하는 방식에는 세 가지가 있다. 카오스 시간, 순환적 시간, 선형적 시간 개념이 그것이다. 카오스 시간은 시간 흐름에 특정 패턴이 없다는 것이고, 순환적 시간은 주기적 사건이 반복해서 일어난다는 것이며, 선형적 시간은 명확한 시작과 명확한 끝이 있다는 것이다.
이 중 현대 역사에 순환적 개념을 대입한 대표적 학자가 있다. ‘밀레니얼 세대’의 등장을 예고하기도 한 세계적 세대이론가이자 역사가인 닐 하우다. 그는 600여 년이라는 방대한 영미권 역사를 철저히 분석한 후 역사의 흐름에는 ‘강력한 패턴’이 작동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패턴은 인간 생애 길이와 같은 80~100년 주기로 형성된다고 설명한다.
이 책은 과거의 일들을 인식 가능한 패턴으로 추출해 역사가 순환하고 있음을 증명한 책이다. 저자에 따르면 역사는 고조기, 각성기, 해체기, 위기라는 네 가지 시기를 주기적으로 되풀이하고 있으며 각 시기는 고유의 특성을 가진다.
문제는 지금이 네 시기 중 ‘위기의 시대’에 해당한다는 점이다. 계절로 치면 ‘겨울’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 시기에는 경제위기가 닥치고, 포퓰리즘이 득세하며, 전염병이 돌고, 전쟁 발발의 가능성도 높아진다. 사회적 우선순위는 개인주의에서 공동체의 가치로 이동하고 가족의 역할이 강해진다.
저자는 1997년에 처음으로 이 같은 주장을 하면서 2000년대 초반부터 20~30여 년간 이 시기의 징후들이 나타날 것임을 예측했다. 실제로 9·11 테러를 전조로 2007년 무렵 세계는 금융위기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그리고 또 다른 위기는 2016년(도널드 트럼프가 공화당을 장악한 해)과 2020년(글로벌 팬데믹)에 찾아왔다. 그리고 지금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으로 전 세계는 위협 속에 내몰려 있다.
책은 먼 과거로 돌아가 ‘위기의 시대’(일명 네 번째 전환기)마다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를 검토한다. 2010년으로부터 대략 80년씩 거슬러 올라가보면 1930년대에는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이 있었고, 1850년대에는 남북전쟁이, 1760년대에는 미국 독립혁명이 있었다. 그리고 그 시기마다 세상은 격변했고 낡은 질서가 붕괴됐다.
책은 대체로 미국의 역사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세계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한 국가의 변화는 도미노처럼 다른 지역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도 크다. 이번 시기에 나타난 금융위기나 팬데믹 현상은 물론이고, 전환기를 주도하는 새로운 세대(현재는 밀레니얼 세대)의 등장은 특정 지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책의 또 다른 목표는 역사의 순환론을 토대로 역사의 현주소와 함께 미래를 예측하는 것에 있다. 닐 하우는 “미국은 2030년 중반에 미국 독립혁명과 남북전쟁 그리고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 같은 비상사태에 버금가는 크나큰 역사적 관문을 통과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모든 위기의 시대가 그랬듯 이번에도 미국은 가공할 만한 파괴 기술을 갖게 될 것이다.
위기의 시대가 끝난 후 다시 도래할 ‘고조기’에 미국은 어떻게 될까. 세계는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저자는 겨울 시기를 보내고 맞이할 봄의 시기도 상세히 기록했다. 즉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통해 세상은 다시 ‘황금기’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검토했다.
처칠의 말대로 더 멀리 되돌아볼수록 더 멀리 내다볼 수 있다. 세상의 변화를 진보적 관점에서 이해하는 사람에게는 이러한 순환적 패러다임에 약간은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인식 가능한 범위 안에서 역사의 패턴을 추출해 그 의미를 성찰하는 일은 여전히 유효하며, 이 방대하고 대담한 저자의 지적 모험에 압도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윤효진 한경BP 출판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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