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ABC 조사, 경합주에서 49%로 동률
7개 스윙스테이트가 승부 가른다

[커버스토리 : 트럼프vs해리스 정책해부②]
미 대선, 역대급 접전…펜실베니아가 승부 가른다[트럼프vs해리스 정책해부②]
역사상 가장 치열한 미국 대선이 벌어지고 있다. CNN에 따르면 1964년부터 2020년까지 모든 미국 대선에서 한 후보가 다른 후보를 5%p 앞선 기간이 3주 이상 이어졌지만 이번 대선 기간에는 이 정도 격차가 벌어진 날이 단 하루도 없었다.

올해 승자를 가를 경합주 스윙 스테이트(Swing States)는 7곳(펜실베이니아, 미시간, 위스콘신, 조지아, 애리조나, 네바다, 노스캐롤라이나)이다. 쇠락한 공업단지 러스트벨트와 기후가 온화한 남서부의 선벨트가 그네를 타듯 민주당과 공화당을 오가며 선거의 키를 쥐고 있다.

경합주가 중요한 이유는 미국이 대통령 선거를 결정하는 선거인단 때문이다. 미국은 대선에서 주마다 유권자가 선거인단을 뽑고 그 선거인단이 대통령을 선출한다. 선거인단은 하원의원 수와 상원의원 수를 더한 535명에 컬럼비아특별구인 워싱턴DC에 배정된 3명을 합해 총 538명이다. 이 중 과반수인 270명 이상을 확보해야 당선된다.

7개 경합주를 제외한 지역은 민주당 표와 공화당 표가 전통적으로 정해져 있다. ‘블루월(Blue wall)’과 ‘레드 스테이트(Red states)로 불리는 이 지역의 표심은 웬만해선 바뀌지 않는다. 한국의 투표지형이 지역으로 나뉘어 있는 것과 비슷하다.

현시점에서 7개 경합주를 제외하고 민주당이 226명, 공화당이 219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선거에서 최종 승리하기까지는 절반 이상인 270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해야 하는데 민주당 텃밭, 공화당 텃밭을 각각 합해도 270이 나오지 않는다.

아직 표심을 정하지 않은 경합주가 승자를 결정하는 구조다. 파이낸셜타임스가 여론조사 평균을 분석한 결과 7개 경합주에서는 평균 1.5%p 이내의 숨막히는 접전이 벌어지고 있다. 미 ABC 방송과 여론조사기관 입소스가 지난 4∼8일 진행한 조사에서는 두 후보의 지지율이 경합주에서 49%로 같았다.

결말을 알 수 없는 숫자인 만큼 트럼프와 해리스 모두 이 7개 주에 선거 자금과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다. 1. 러스트벨트를 차지하라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펜실베니아에서 열린 트럼프 후보의 연설에 참여해 점프하고 있다./AFP 연합뉴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펜실베니아에서 열린 트럼프 후보의 연설에 참여해 점프하고 있다./AFP 연합뉴스
펜실베이니아는 경합주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지역이다. 경합주 중에서 가장 많은 19명의 선거인단을 뽑을 수 있다. 지난 12번의 미국 대선 중 10번이나 펜실베이니아에서 승리한 후보가 당선됐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고향이지만 2016년 힐러리 클린턴이 나온 대선에서는 트럼프가 승리한 지역이라 끝까지 결과를 알 수 없다.

해리스와 트럼프 모두 막판까지 펜실베이니아를 잡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각계각층의 슈퍼스타들도 등판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지난 10월 5일 펜실베이니아 트럼프 유세장에 참석했다. 머스크는 “보다시피 나는 단순한 마가(MAGA :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가 아니라 다크 마가”라며 “트럼프가 미국 민주주의를 보존할 유일한 후보”라고 지지를 호소했다.

펜실베이니아가 고향인 미국 최고 슈퍼스타 테일러 스위프트는 해리스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민주당에서 가장 강력한 대중적 파워를 갖고 있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10일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서 해리스 지원 사격에 나섰다.

펜실베이니아는 미국 블루칼라 노동자인 백인 중산층의 도시다.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이 겨루던 45대 미국 대선 때부터 이들이 선거의 키를 쥐고 있다.

트럼프는 금융 산업이 부흥하고 이민자들이 들어서며 소외됐던 백인 중산층의 분노를 자극해 당선됐고 바이든 역시 공급망 재편을 강력하게 밀어붙이며 ‘제조업 부활’과 ‘중산층 재건’을 내세웠기에 당선될 수 있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노조를 만나 “중산층이 잘되면 모두가 잘된다. 바이드노믹스는 당신을 위한, 미국의 블루칼라 청사진”이라며 경제 성과를 강조하기도 했다.

트럼프 역시 ‘MAGA’를 내세우며 백인 중산층의 표심을 자극하고 있지만 해리스는 이들을 공략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공격적으로 진행했던 ‘제조업 리쇼어링’ 등 경제 분야에서 더 선명한 호소력을 발휘해야 하는데 경제정책 대신 낙태와 이민 등 다른 정책을 앞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연설하는 해리스 부통령./AF 연합뉴스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연설하는 해리스 부통령./AF 연합뉴스
이대로라면 해리스가 러스트벨트를 수성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2020년 대선 당시 바이든 대통령에게 강한 지지를 보냈던 노동단체가 해리스에게는 등을 돌리고 있다.

해리스는 전미자동차노조(UAW)와 미국교사연맹(AFT) 등으로부터 지지를 얻었지만 미국 최대 운송 노조인 팀스터스(Teamsters), 국제소방관협회(IAFF) 등은 이번 대선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두 단체 모두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 편에 섰었다.

펜실베이니아주의 핵심 산업인 셰일가스를 두고도 트럼프 편에 서는 지지자들이 많다.

해리스는 과거 환경오염 등을 이유로 셰일가스를 캐는 프래킹(Fracking·수압 파쇄법) 금지를 주장했지만 최근 CNN 인터뷰에선 “프래킹을 금지하지 않고도 청정 에너지 목표를 달성할 방법이 있다”며 말을 바꿨다. 반면 트럼프는 환경 규제가 일자리 창출을 저해한다며 규제를 줄이고 국제 기후 조약에서 다시 탈퇴하겠다고 했다.

미국 자동차산업의 중심지인 ‘디트로이트’로 대표되는 미시간 역시 치열한 경합주다. 선거인단 15개를 가지는 대표적인 러스트벨트로 2016년에는 트럼프 편에, 2020년에는 바이든 편에 섰다. 이번 대선에서도 디트로이트, 그랜드피즈 등 부유한 러스트벨트를 잡는 제조업 정책이 표심을 가를 것으로 보인다.

미시간의 표심을 자극할 또 다른 핵심은 ‘중동정책’이다. 미시간은 미국에서 아랍계 비중(2.1%)이 가장 높다. 이들은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살상 규모가 급증하는 과정에서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바이든 행정부를 강하게 비판해왔다.

미국의 아랍계는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한 편이었으나 바이든 행정부가 이스라엘을 지원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이 올라갔다. 아랍미국연구소가 최근에 한 전국 여론조사에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아랍계 사이에서 4%포인트 우위를 보였다. 특히 지난 9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헤즈볼라 소탕을 이유로 레바논에 강공을 펼치고 나서면서 민심이 악화했다.

펜실베이니아, 미시간과 함께 3대 러스트벨트로 불리는 위스콘신(선거인단 10명)은 2020년 모든 주 가운데 가장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올해 공화당 전당대회 역시 위스콘신 밀워키에서 열렸는데 이 자리에서 트럼프는 오하이오주 상원의원인 JD 밴스를 러닝메이트로 지명했다. 쇠락한 공업지대 출신의 흙수저지만 가난과 역경을 딛고 성공한 밴스를 소개하는 무대로 위스콘신을 택한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팜벨트’(농업지대)가 모여 있는 위스콘신에서 관세정책 역시 표심을 결정할 요인이라고 봤다. 위스콘신은 미·중 무역전쟁 이전까지 전체 인삼 생산량의 85%를 중국에 수출해왔는데 무역전쟁 이후 큰 타격을 입었기 때문에 트럼프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위스콘신은 2016년 대선에서 힐러리가 아닌 트럼프를 택했다. 힐러리는 전통적 민주당 지지 지역이라고 보고 당시 한 차례도 유세를 가지 않았고 결국 대선에서 패배했다.
미 대선, 역대급 접전…펜실베니아가 승부 가른다[트럼프vs해리스 정책해부②]
해리스에 등 돌리는 선벨트 이민자남부의 일조량이 많은 선벨트 경합주인 애리조나와 조지아, 네바다, 노스캐롤라이나 역시 오차 범위 내에서 두 후보 간 치열한 경쟁이 이어지고 있다.

조지아에서는 한국계 미국인이 ‘캐스팅보트’로 부상하고 있다. 선거인단 16명이 걸려 있는 조지아주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지난 2020년 대선 당시 바이든 대통령의 승리에 큰 공을 세우는 등 민주당 성향을 보여왔지만 이번 선거에선 상당수가 민주당에 등을 돌리고 있다.

미국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불확실한 경제 상황과 인플레이션, 높은 생활비 등으로 민주당 지지가 흔들리고 있다”며 “(한국계 미국인들의 민심 이반으로) 해리스가 조지아에서 패배할 수도 있다”고 했다.

멕시코 접경지역인 애리조나주는 이민 문제에 민감한 경합주다. 두 후보 모두 이곳에서는 국경 안보에 집중한 공세를 펼쳤다. 해리스는 지난 9월 27일 애리조나주 더글러스를 방문해 국경을 넘어 유입되는 범죄는 틀어막되 이민자들이 미국 사회 구성원으로 안착할 수 있는 인도적 시스템을 열어두겠다고 약속했다.

검사 시절 국경을 넘어 들어오는 범죄조직 등을 단죄한 경험이 있다고 소개한 그는 “국경 강화는 내게 새로운 일이 아니다”라고도 강조했다.

반대로 트럼프는 “어린 미국인 소녀들이 무지막지한 외국인 범죄자들에 의해 성폭행을 당하고 그들의 손에 목숨까지 잃고 있다”며 거친 언사를 동원해 ‘불법 이민자 급증을 부른 장본인은 해리스’라는 공세를 이어갔다.

민주당이 기대를 걸고 있는 정책은 낙태권이다. 미국에서는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결 이후 임신 약 24주까지는 낙태가 헌법상의 권리로 인정됐다. 그러나 2022년 6월 보수 우위의 연방대법원이 이 판결을 폐기하면서 낙태 허용 여부를 주별로 결정하게 됐다.

이후 낙태에 반대해온 공화당이 장악한 여러 주에서는 낙태를 금지했고 여성 유권자들이 이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2022년 11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고전한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애리조나주 역시 160년 전 만들어진 낙태금지법을 부활시킨 만큼 여성 임신중지권이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라스베이거스가 있는 네바다주는 2004년 이래로 모든 대선에서 민주당에 투표했다. 하지만 히스패닉 유권자들 사이에서 트럼프 지지율이 높아지면서 해리스의 지지율이 불안정해지고 있다.

서퍽대 정치연구센터 데이비드 팔레올로고스 이사는 “민주당의 (상대적) 부진은 주로 젊은 히스패닉 남성 때문”이라며 “트럼프는 네바다주 18~34세 히스패닉 남성 사이에서 53% 대 40%로 해리스를 앞섰다”고 진단했다. 미국 매체들은 최근 몇 년 동안 이 지역 인플레이션이 전국 평균을 앞지르면서 민주당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고 분석한다. 네바다주 실업률은 5.4%로 미국에서 가장 높다. 젊은 도시 노스캐롤라이나,
오바마 이후 처음 민주당에 투표할까
대학의 도시 노스캐롤라이나는 새로운 경합주로 떠올랐다. 전통적인 보수당 텃밭이었던 노스캐롤라이나에서는 1980년 이래로 승리한 민주당 후보가 2008년 버락 오바마 단 한 명뿐이었다. 하지만 최근 여론조사에서 해리스의 지지율이 올라가고 있다.

워싱턴포스트와 퀸피악 대학이 9월 25~29일 실시한 유권자 대상 여론조사에서 트럼프가 해리스를 2%포인트 차로 앞섰지만 블룸버그·모닝컨설트가 9월 26일에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는 해리스가 2%포인트 차로 트럼프를 앞질렀다. CNN·SSRS가 9월 27일에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는 두 후보의 지지율이 같았다.

전문가들은 노스캐롤라이나의 인구분포가 해리스에게 유리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노스캐롤라이나주 인구의 22%가 흑인이고 격전지 중 학사학위 이상을 소지한 인구 비중이 가장 높았다.
최근 미국에서는 학사학위 이상 유권자들이 민주당에 투표하는 경향이 높다.

미국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는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좌편향 변화는 주로 민주당을 지지하는 잠재 유권자들(고학력층 포함)의 인구 증가에 기인한 것”이라며 “특히 롤리-더럼-채플힐의 ‘리서치 트라이앵글’ 지역 근처에서는 2020년 이후 인구가 5.6%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미국 정치 통계학자 네이트 실버가 고안한 선거예측모델에 따르면 해리스가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승리하면 당선될 확률은 95.8%에 이른다.

한편 조지아와 노스캐롤라이나를 휩쓴 허리케인 ‘헬린’과 ‘밀턴’이 미국 대선판을 흔드는 새로운 변수가 됐다. 공화당이 ‘바이든 행정부의 대응 실패론’을 밀어붙이고 있는 만큼 해리스에게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번 선거를 예측이 사실상 불가능해 결과가 나온 이후에나 사후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보기 드문 선거라고 평가하고 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