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와 캘리포니아 사이 북서태평양에 떠있는 거대 쓰레기 섬. 사진= 태평양관광기구
하와이와 캘리포니아 사이 북서태평양에 떠있는 거대 쓰레기 섬. 사진= 태평양관광기구
워킹맘 A 씨는 매주 금요일마다 바쁘다. 분리수거(엄밀히는 배출이 맞는 표현) 날이기 때문이다. 택배상자마다 일일이 배송 스티커와 테이프를 떼고 투명 페트병의 라벨을 벗긴다. 씻어서 말려놓은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까지 정리하면 한 시간은 훌쩍 지나간다. 상자에 재활용품을 가득 담고 분리수거장에 가는 것도 일이다. 비라도 오면 난감하다. 이날을 놓치면 며칠간 집 안에 쓰레기를 쌓아둬야 한다. 그런데 힘 빠지는 소식을 접했다. 최근 미국 주정부가 “플라스틱 재활용은 사기극”이라며 관련 회사에 소송을 걸었다는 뉴스다. 매주 성실히 쓰레기를 재활용하기 위해 분류하는 A 씨는 분리수거를 왜 해야 하는지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1. 분리수거 모범국은 한국

분리수거의 목적은 쓰레기를 줄이는 데 있다. 자원을 재사용하고 폐기물을 최소화하는 것.
한국은 분리수거 제도가 도입되기 전 커다란 비닐봉지에 모든 쓰레기를 담아서 버렸다. 1960년대는 가난해 버릴 것도 별로 없었다.

1970~80년대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쓰레기도 급증했고 언론들은 쓰레기 공해문제를 다룬 기사를 시시때때로 내보냈다. 1983년 서울에서 처음으로 종이, 유리, 깡통의 3종 분리수거를 시행했고 1986년 폐기물 관리법이 도입되면서 ‘재활용’이라는 개념이 법상 도입됐다. 1995년 쓰레기종량제를 전국적으로 실시하면서 동시에 분리수거도 진행했다. 지방자치단체마다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재활용품을 생활쓰레기와 섞어서 버릴 경우 1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분리수거를 통한 재활용품은 새로운 제품의 원료가 되고 음식물 쓰레기는 퇴비로 썼다. 서울에서 분리수거가 시행된 지 30년 만에 한국의 재활용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상위권을 기록했다. 재활용 및 퇴비로 이용되는 비율이 59%, 소각을 통한 에너지 재활용이 24%로 합산 83%의 쓰레기가 재활용됐다. 이는 OECD 재활용률 평균 54%를 크게 웃돈다.

미국은 주마다 정책이 다르다. 비닐봉투 하나에 모든 쓰레기를 버리는 곳이 있는가 하면 캘리포니아처럼 재활용 정책을 시행하는 곳이 있다. 캘리포니아는 마트 등에서 재활용이 가능한 물건을 살 때 재활용 비용을 추가로 내야 한다. 해당 물건을 구매했던 곳이나 리사이클센터에 방문해 공병 등을 모아서 갖다주면 현금으로 교환해주는 식이다. 캘리포니아는 2022년 음식물 쓰레기 분리배출도 의무화했다.
그래픽=송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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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플라스틱 재활용은 사기극이라고?

미국에서 소송은 그린워싱(친환경이 아닌데 친환경인 척하는 행위)에 대한 얘기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지난 9월 23일(현지 시간) 미 최대 석유화학 기업인 엑손모빌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플라스틱 재활용으로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거짓된 광고로 소비자를 속여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플라스틱을 쓸 수 있도록 소비를 부추겼다”는 내용이다. 미국 주정부가 플라스틱 환경 공해를 이유로 글로벌 석유화학 기업을 제소한 건 처음이다.

엑손모빌은 세계 두 번째로 큰 석유·가스 회사이며 플라스틱의 재료 ‘폴리머’의 세계 최대 생산업체다. 폴리머의 원재료는 ‘석유’다.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지난해 4월부터 플라스틱 오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화석연료·석유화학 업계에 대한 조사를 시작해 왔다. 그 결과 엑손모빌이 그동안 마케팅해온 내용이랑 배치되는 자료가 상당수 발견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는 것이다.

당국은 엑손모빌이 ‘소비자를 기만’했다고 봤다.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인 롭 본타는 “엑손모빌이 1970년대부터 반세기 동안 플라스틱 재활용을 통해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대중에게 캠페인을 벌여왔지만 (기업은) 플라스틱 재활용으로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특히 본타 장관은 ‘화학적 재활용’ 공정으로 생산된 플라스틱이 ‘순환성’이 높다고 마케팅에 활용하는 것은 사기라고 꼬집었다. 그동안 엑손모빌은 ‘화학적 재활용’을 통해 플라스틱을 원료 단계까지 분해한 후 다시 플라스틱을 만들어 새로운 제품으로 전환한다는 ‘고급 재활용 프로그램’을 홍보해왔다.

하지만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검증을 해봤더니 화학적 재활용을 거쳤다는 플라스틱의 92%가 연료로 쓰였다. 1% 남짓 정도만 재활용됐다. 게다가 신제품에는 재활용 물질이 거의 포함돼 있지 않았는데 프리미엄을 받고 비싼 값에 판매했다고 당국은 지적했다.

또 ‘재활용 기호’가 붙은 플라스틱을 바르게 분리해 버리면 재활용될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을 소비자들에 주입했다고 꼬집었다. 캘리포니아주는 플라스틱 제품의 재활용 정보를 소비자에게 제공하기 위해 재활용 표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엑손모빌과 다른 플라스틱 회사들이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주정부에 수십년 동안 재활용 기호를 사용할 수 있도록 요구했다는 주장이다.

본타 장관은 “잘못된 믿음은 일회용 플라스틱 구매율을 높이는 데 일조했다”며 “수년 동안 재활용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실제로는 재활용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소비자가) 알아야 물병과 쇼핑백 같은 품목을 재사용하는 데 더 중점을 둘 수 있다”고 말했다.

엑손모빌은 캘리포니아주 공무원들이 수십 년 동안 캘리포니아의 재활용 시스템이 비효율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반박했다. 까다로운 규제 때문에 오히려 회사가 효율적인 재활용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또 자사의 고급 재활용 프로그램이 효과적이었고 6000만 파운드 이상의 플라스틱 폐기물을 ‘사용 가능한 원료’로 처리해 매립되지 않도록 했다고 밝혔다.

소송의 배상액은 수십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미국 뉴욕타임스).
그래픽=송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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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플라스틱 폐기물의 9%만 재활용

이 소송은 다시 플라스틱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인류에게 플라스틱은 딜레마와 같은 존재다. 플라스틱은 현대 산업에 없어서는 안 되는 핵심 소재다. 가볍고 내구성 좋은 데다 저렴하기 때문이다. 창문틀과 벽지, 배수관, 바닥재, 전선피복 등에 널리 사용되고 있다. 플라스틱 페트병의 등장은 음료업계의 폭발적인 성장에 기여했고 플라스틱으로 만든 인공합성섬유인 나일론은 스타킹으로 상품화되며 초대박이 났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최근 보고서에서 2050년까지 제1차 플라스틱 생산량이 11억 톤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부작용도 엄청나다. 석유를 원료로 하는 플라스틱은 환경오염의 주범이다. 원료 추출(석유 시추)부터 생산, 소비, 폐기에 이르는 전 생애주기에 걸쳐 온실가스를 뿜어내 지구온난화에도 영향을 미친다. 플라스틱의 생애주기 온실가스 배출량은 19억 톤(2022년 OECD)이다.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3%를 넘는 수치이며 독일·영국·프랑스·이탈리아의 국가 배출량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은 양이다.

태평양, 인도양, 대서양 곳곳에는 조류의 흐름에 따라 한곳에 플라스틱 쓰레기가 모여 섬도 생겼다. 하와이와 캘리포니아 사이 북서태평양에 떠 있는 플라스틱 쓰레기 섬은 180만㎢(2023년 기준)에 달한다. 한국 땅의 약 16배 크기다.

그나마 재활용된다는 믿음으로 플라스틱을 사용했는데 플라스틱은 기대와 달리 ‘재활용’되고 있지 않다는 주장은 이어지고 있다. 수천 종에 이르는 다양한 플라스틱을 재활용하기 위해서는 동일 재질끼리 분류해야 하는데 이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동일 재질끼리 분류하더라도 다른 화학 첨가제나 착색제가 포함돼 있으면 재활용이 쉽지 않다. 플라스틱 대부분이 매립, 소각 또는 단순히 버려지는 이유다.

2022년 OECD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플라스틱이 재활용되는 비율은 9%에 불과하다. 플라스틱을 가장 많이 생산하고 소비하는 미국은 플라스틱 폐기물의 약 5~6%(2021년)만 재활용된다고 환경보호단체 비욘드 플라스틱은 추정했다. 폐기물 관리 체계가 잘 갖춰져 있는 편인 한국도 플라스틱 재활용률은 16.4%에 불과했다(2023년 충남대 연구팀).

버려지는 플라스틱 폐기물은 분해되지 않는다. 잘게 쪼개진 미세 플라스틱은 토양, 강, 바다 등에 스며들어 오랫동안 생태계를 위협한다. 세계자연기금(WWF)은 2050년까지 플라스틱 누적생산량이 340억 톤에 달하고 이 중 120억 톤이 버려져 계속해서 토양과 해양에 유입될 것으로 내다봤다.

인체에도 해롭다. 미세 플라스틱이 인체에 침투해 염증 유발, 면역 세포 억제 등을 유발한다는 연구 결과가 계속 나오고 있다. UNEP는 플라스틱에 사용되는 1만6000종이 넘는 화학물질 중 약 4분의 1을 인간 건강과 안전에 대한 잠재적 우려 물질로 판단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더러운 강’이란 별명을 가진 인도네시아 치타룸강에 배를 타고 나온 주민들이 강을 뒤덮고 있는 쓰레기 더미에서 재활용 가능한 플라스틱을 수거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세계에서 가장 더러운 강’이란 별명을 가진 인도네시아 치타룸강에 배를 타고 나온 주민들이 강을 뒤덮고 있는 쓰레기 더미에서 재활용 가능한 플라스틱을 수거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4. 생산 감축 vs 기술개발

플라스틱이 전 지구적 환경오염원으로 지목되고 있다. 플라스틱 생산업계에선 생산 규제 대신 ‘친환경 플라스틱 생산’을 해결책으로 내세우고 있다. 친환경 플라스틱은 석유 대신 옥수수 전분·팜유 등 천연재료를 원료로 만든다. 일반 플라스틱이 분해되려면 100년 이상 걸리는 데 친환경 플라스틱은 분해 기간이 훨씬 짧다. 박테리아, 조류, 곰팡이 등 자연에 있는 미생물이나 효소 등에 의해 분해되기 때문이다. 일반 플라스틱보다 탄소 배출도 60~80% 줄일 수 있다. 한국 기업에선 한화솔루션, LG화학, GS칼텍스, SK지오센트릭, SK리비오(SKC의 자회사), 롯데케미칼 등이 출사표를 던졌다.

엑손모빌이 말하는 ‘화학적 재활용’도 플라스틱 생산업계에서 밀고 있는 해결책 중 하나다. 화학 공정을 통해 폐플라스틱을 분해해 원재료로 되돌린 뒤 재생산하는데 이때 열분해·해중합(화학적으로 분해한 뒤 재융합) 등 기술이 쓰인다.

한국 정부는 열분해 기술이 폐플라스틱 소각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판단, 열분해 처리 비중을 2030년까지 100배인 10%까지 키운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2022년 폐기물관리법 하위법령을 수정해 열분해 시설을 기존 ‘소각시설’이 아닌 ‘재활용시설’로 재분류하고 연료로만 사용하게 돼 있던 열분해유(고열로 폐플라스틱을 분해하면 생기는 액체)를 석유화학제품의 원료로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미국·유럽연합 등에선 플라스틱 제품에 재활용 플라스틱 사용을 의무화하고 의무 함유율을 점차 높여가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기도 하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는 2050년 글로벌 재활용 플라스틱 규모가 600조원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환경단체 등은 생산량을 ‘감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플라스틱 생산업계가 감축을 회피하기 위해 화학적 재활용을 플라스틱 문제의 해결책으로 삼고 있지만 화학적 재활용 과정에서 유해 물질들이 방출되고 많은 비용이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기후보전센터는 ‘플라스틱 재활용의 사기’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플라스틱 재활용이 기술적 경제적 한계 때문에 실패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재활용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더라도 새로운 플라스틱을 생산하는 것보다 비용이 더 많이 들 수 있어 경제적으로 실행 가능하지 않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다만 국제 논의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위한 법적 구속력이 있는 국제 협약(국제플라스틱협약)’에서도 플라스틱 생산량 감축에 관한 구체적인 목표가 제시됐지만 합의를 이루지는 못했다. 플라스틱 협약을 만들기 위한 ‘제5차 정부 간 협상위원회’(INC-5)가 오는 11월 부산에서 열린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