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변협·서울변회, 불복해 행정소송 제기
法 “공정거래법 적용 대상 아냐”

[법알못 판례 읽기]
서울 강남구 로앤컴퍼니 본사. 사진=한국경제신문
서울 강남구 로앤컴퍼니 본사. 사진=한국경제신문
로톡 등 법률 플랫폼 이용 변호사를 징계한 대한변호사협회와 서울지방변호사회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내린 과징금 부과 처분은 법에 어긋난다는 서울고등법원 판단이 나왔다.

변호사 단체가 리걸테크 업계를 통제하는 행위는 변호사법에 따른 정당한 행위로 공정거래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취지다.

이번 판결로 리걸테크 업계에 대한 변호사 단체의 규제 강도가 한층 높아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리걸테크 업계에서는 인공지능(AI) 등 정보기술의 발달로 잠재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 리걸테크 산업이 직역 갈등으로 인해 성장 타이밍을 놓칠까 우려하고 있다.

“징계는 변호사법에 따른 합리적 행위”

서울고법 행정3부(부장판사 정준영)는 2024년 10월 24일 대한변협과 서울변회가 공정위를 상대로 제기한 시정명령 등 취소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원고들의 청구를 받아들여 피고(공정위)가 원고에 대해 한 시정명령, 통지 명령 및 과징금 납부 명령 모두 취소한다”고 판시했다. 소송비용도 공정위가 부담하도록 했다.

재판부는 두 단체의 징계 행위는 공정거래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원고들이 변호사법의 범위 내에서 소속 변호사들에 대해 징계를 했고 달리 원고들에게 온라인 법률 플랫폼 자체에 대해 감독권을 행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며 “이는 변호사법에 따른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고 판시했다.

이어 “변호사 직무는 고도의 공공성과 윤리성이 있고 리걸테크 등 현실의 변화에 대응해 탄력적이고 유연한 규제가 요구된다”며 “법상 금지되는 광고의 범위를 정함에 있어서는 원고 대한변협에 상당한 재량이 부여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원고들의 광고 관련 규정 제·개정, 소속 변호사에 대한 감독 및 징계에 ‘절차적 하자’가 없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최근 세계적으로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는 리걸테크 분야가 우리나라에서도 발전하기 위해서는 종전에 예상하지 못했던 기존 법체계와의 다양한 형태의 충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구성사업자인 변호사들이 리걸테크를 이용하는 경우 그 사업내용이나 활동에 대한 원고들의 적정한 검토·심사 등 검증이 불가피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러한 검증을 거친 리걸테크 분야는 더욱 지속가능한 성장이 가능하다는 측면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서울 지하철 교대역에 걸린 로톡 광고판. 사진=한국경제신문
서울 지하철 교대역에 걸린 로톡 광고판. 사진=한국경제신문
법무부, 지난해 9월 ‘징계 취소’ 처분

앞서 대한변협과 서울변회는 변호사들이 로톡을 이용하는 행위를 ‘변호사 광고 규정 위반’으로 규정하고 2021년 5~6월 변호사 업무 광고 규정과 변호사 윤리 장전을 개정해 법률 플랫폼 이용 변호사 징계 근거를 마련했다.

이후 여러 차례 소속 변호사들에게 법률 플랫폼 탈퇴를 요구했고 2022년 10월에는 변호사 9명에게 과태료 300만원 등의 징계를 내렸다. 공정위는 이런 행동이 “변호사 간 경쟁과 소비자 선택권을 제한했다”며 지난해 2월 시정명령과 함께 두 단체에 각각 과징금 10억원을 부과했다.

두 단체는 “결과를 미리 정해 놓고 억지로 끼워 맞추기식 심사를 했다”며 공정위를 상대로 불복 소송을 제기했다. 공정위 처분은 1심 판결의 효력을 지니기 때문에 공정위 처분에 대한 불복 소송은 고등법원에서 대법원으로 이어지는 2심제로 진행된다.

두 단체는 소송을 제기하면서 집행정지도 신청했는데 재판부가 지난해 5월 이를 일부 인용하면서 공정위의 시정명령과 통지 명령의 효력은 일시 중단된 상태였다.

한편 법무부 변호사징계위원회는 지난해 9월 법률 플랫폼 가입 변호사 123명에 대한 징계를 취소했다. 구체적으로 120명은 혐의없음, 3명은 불문경고(죄는 묻지 않고 경고) 처분했다. 법무부 징계위는 로톡 등 법률 플랫폼이 특정 변호사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는 서비스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날 재판부는 법무부의 징계 취소 결정이 공정위 처분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변협이 소속 변호사의 사업내용이나 활동을 부당하게 제한하려는 의도를 명확하게 갖고 있었다거나 절차적 하자가 있었음을 인정할 만한 뚜렷한 사정이 없는 이상 공정위가 지적하는 바와 같이 법무부 징계위의 결정 등을 근거로 변호사에 대한 감독 및 징계 결정에 합리적인 근거가 없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변호사 단체 “법원이 심사·감독 권한 인정”

변호사 단체의 법률 플랫폼 규제가 정당하다는 취지의 법원 판단이 나오면서 리걸테크 업체들에 대한 변호사 단체의 통제도 한층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서울변회는 이날 선고 후 “오늘 공정위 관련 1심 선고가 예정돼 있었기 때문에 그동안 변호사 광고 규정을 명확히 위반하고 있던 법률 플랫폼에 대해 비교적 신중하게 접근해 왔다”며 “이제부터는 (법률 플랫폼에 대해) 엄중하게 대응하면서 규제에 나설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장기적으로는 법무부 등과 변호사 단체가 참여하는 협의체 구성을 제안해 합리적으로 리걸테크 업체들을 통제하는 방안을 모색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대한변협은 다음 날 입장문을 통해 “법원이 변호사법의 위임을 받아 광고에 관한 규제를 하는 것은 법령의 위임에 따른 공권적 행정작용임을 인정했다”며 “변호사 광고 규제에 대한 행위는 단순 사업자단체의 행위에 그치지 않았다는 주장이 인정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서울고법은 리걸테크 산업에 대한 대한변협의 적정한 검토와 심사 권한까지 인정했다”며 “AI 등 향후 리걸테크 산업이 변호사법의 범위 내에서 대한변협의 심사와 감독을 통해 상생·발전해야 한다는 당연한 논리를 법원이 새삼 확인해 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법원의 판단에 따라 향후 대한변협은 국민의 생명과 신체, 재산권에 심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법률서비스의 품질을 관리하고 리걸테크 산업이 변호사법의 범위 내에서 발전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감시하겠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해당 사건의 판결문을 송달받는 대로 판결 이유 등을 분석한 후 상고를 제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돋보기]
긴 싸움에 만신창이 된 ‘로톡’ 운영사 로앤컴퍼니

로톡은 리걸테크 기업 로앤컴퍼니가 2014년 내놓은 온라인변호사상담 서비스 플랫폼이다. 소비자와 변호사를 앱으로 연결해 법률서비스 문턱을 낮춘 혁신적인 플랫폼이란 평가를 받았다.

한때 로톡 가입 변호사 수는 4000명(2021년 상반기)에 이를 정도로 젊은 변호사들 사이에서 반응이 뜨거웠다. 하지만 출시 초기부터 기성 변호사 단체의 반발에 부딪혔고 갈등은 10년 가까이 지속됐다. 대부분 법률 싸움에서 로앤컴퍼니 측이 승리했다.

대한변협은 2015년에, 서울변회는 2016년에 각각 로앤컴퍼니가 변호사법상 금지된 변호사 소개·알선·유인 행위를 했다며 형사고발했지만 검찰은 모두 무혐의 처분했다. 직역수호변호사단도 2020년 로앤컴퍼니를 형사고발했으나 이 역시 무혐의 처분으로 마무리됐다.

헌재는 변협이 추진한 변호사들의 법률 플랫폼 이용을 금지하는 내용의 변호사 업무 광고 규정 개정안에 대해 2022년 5월 일부 위헌 판단을 내리기도 했다.

법무부의 법률 플랫폼 이용 변호사 징계 취소 처분이 나오면서 업계 안팎에선 드디어 법무부가 ‘혁신’의 손을 들어줬다고 평가했지만 로앤컴퍼니는 웃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동안 막대한 법률 비용을 지출해야만 했고 변호사 단체가 법률 플랫폼 이용 변호사에 대해 징계를 밀어붙이면서 등록 변호사 수는 크게 줄었으며 결과적으로 수익성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로앤컴퍼니는 지금까지 성장 발판을 꾸준히 쌓아가고 있다. 지난 7월에는 법률가 대상 법률 AI 어시스턴트 ‘슈퍼로이어’를 출시했다. 472만 건의 판례 데이터와 법령, 결정례, 행정규칙, 유권해석 등 방대한 법률 정보를 바탕으로 답변을 제공하는 게 특징이다.

로앤컴퍼니에 따르면 슈퍼히어로는 출시 100일 만에 전체 변호사(3만5900여 명)의 약 12%에 이르는 약 4300명의 가입자를 확보할 정도로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민경진 한국경제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