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發 경영난 감안 138억 감액 배상 확정
이스타홀딩스 재산 없어 ‘빈 승리’ 우려도
이스타홀딩스의 계약 위반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코로나19라는 특수 상황을 고려해 손해배상액을 감액한 2심 판단이 최종 확정되면서 제주항공은 ‘반쪽짜리 승리’를 거뒀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판결이 향후 M&A 분쟁의 중요한 선례가 될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4년간의 법적 공방, 그 시작과 끝
2019년 12월 제주항공은 이스타항공 지분 51.17%를 인수하는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계약금으로 115억원을 지급했으나 2020년 초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항공업계가 직격탄을 맞은 가운데 양사는 체불임금 등 비용 부담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었다.
결국 제주항공은 2020년 7월 인수 포기를 결정하고 같은 해 9월 이스타항공 최대주주인 이스타홀딩스와 대주주인 대동인베스트먼트를 상대로 인수 포기에 따른 계약금 반환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제21민사부(재판장 강민성)는 이스타홀딩스의 계약 위반을 인정하고 계약금 115억원에 손해배상예정액 115억원을 더한 230억원 전액 지급을 명령했다. 대동인베스트먼트에는 4억5000만원을 제주항공에 지급하라고 했다.
주요 계약 위반 사항으로는 △항공기 리스료 등 860억원 채무 불이행 △직원 임금 188억원 미지급 △일부 노선 운항 시각 반납 미고지 △항공안전법 위반 등이 지적됐다.
반면 2심을 맡은 서울고법 제18민사부(재판장 정준영)는 계약 위반 판단을 유지하면서도 손해배상액을 20%(115억→23억원)로 감액했다.
재판부는 “원고가 계약 체결 이전부터 대상 회사의 재정 사정이 좋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고 셧다운의 시기와 방식에도 동의했다”며 “코로나19로 인한 영업손실이 주된 원인이었던 점, 계약금 대부분이 운영비용으로 투입된 점 등을 고려할 때 감액이 필요하다”고 판시했다.
특히 2심 재판부는 이스타홀딩스의 계약 위반이 ‘중요한 면에서의 위반’이기는 하나 ‘근본적 위반’이나 ‘고의·기망·은폐 행위’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2심 감액 판단 정당성 인정
대법원 3부(주심 이숙연 대법관)는 “손해배상예정액의 감액 사유에 대한 사실인정이나 그 비율을 정하는 것은 그것이 형평의 원칙에 비추어 현저하게 불합리하다고 인정되지 않는 한 사실심의 전권사항”이라며 2심의 판단이 적절했다고 봤다.
특히 대법원은 2심이 제시한 8가지 감액 사유가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2심은 ①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의 재정 상태를 사전 인지했던 점 ②제주항공도 셧다운에 동의했던 점 ③코로나19가 주된 원인이었던 점 ④계약서상 ‘근본적 위반’이나 ‘고의·기망·은폐 행위’가 아닌 경우 매매대금의 10% 한도 내에서만 배상책임을 지도록 한 점 ⑤매매대금(500억원) 대비 손해배상예정액(115억원)의 비율이 높은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감액을 결정했다.
대법원은 이러한 2심의 판단이 “손해배상예정액 감액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거나 논리와 경험칙을 위반한 잘못이 없다”고 결론 내렸다. 이스타홀딩스의 계약 위반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제반 사정을 고려한 손해배상액 조정이 필요하다는 2심의 판단이 법리적으로 타당하다고 본 것이다.
이에 따라 이스타홀딩스는 계약금 115억원과 감액된 손해배상금 23억원을 합한 총 138억원만 배상하면 된다. 이는 당초 1심이 명령한 230억원의 60% 수준이다.
제주항공 측 윤용준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계약위반의 책임이 있는 이스타홀딩스가 20%밖에 손해배상을 안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라며 “너무 온정적인 판결”이라고 반응했다.
이스타홀딩스 측 이동근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계약 이행 과정에서 제주항공이 근로자 정리해고 등을 요구한 정황이 계약 불이행으로까지 평가받기에는 부족했으나 손해배상 예정액을 감액한 것은 쌍방의 책임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재판부의 합리적 판단”이라고 평가했다. 계약해제의 정당성은 확인했지만 감액 결정
소송의 최대 승부처는 ‘진술·보장 위반’의 책임 소재였다. 이스타홀딩스 측은 500장이 넘는 녹취록을 증거로 제출하며 “모든 조치가 제주항공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제주항공 측 광장은 자금흐름 분석과 문서 생성 시점 추적이라는 ‘팩트 체크’ 전략으로 맞섰다. 특히 제주항공이 강제적으로 인력 구조조정에 나선 것이 아니라 주식매매계약 체결 이전에 이미 인력구조조정안이 작성됐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자금일보 수급 현황’ 분석을 통해 제주항공에서 파견한 자금관리인이 자금 집행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실제 잔고 부족이 원인이었음을 입증했다.
대법원은 “이스타홀딩스가 거래종결시한인 2020년 6월 30일 기준으로 주식매매 계약상 진술 및 보장을 중요한 면에서 위반했고 시정 요구에도 10영업일 내 시정되지 않았다”며 제주항공의 계약해제 청구가 적법하다는 결론을 확정했지만 손해배상액을 감면한 2심 판단을 그대로 인정했다.
이번 판결은 불가항력적 상황에서 계약 당사자의 귀책 사유를 어떻게 평가할지에 대한 기준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코로나19와 같은 특수 상황이 아니더라도 계약 이행 과정에서 양측의 귀책 사유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손해배상액을 조정할 수 있다는 선례가 됐다.
이동근 화우 변호사는 “이번 판결로 계약이 체결됐지만 이행하지 못하는 과정에서 누구의 잘못인지, 그 과정에서의 규칙 사유를 볼 때 반드시 일방의 잘못만은 아닌 경우 감액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줬다”고 강조했다.
[돋보기]
이스타홀딩스 배상금 지급할 수 있나…판결 ‘빈 껍데기’ 우려
대법원이 이스타홀딩스에 138억원의 배상을 명령했지만 실제 돈을 받아낼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법조계에서는 이스타홀딩스의 자력이 충분치 않아 ‘빈 승리’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금전 관련 민사소송에서 승소 판결이 확정되면 제주항공은 채권자 지위를 얻게 된다. 판결문에 집행문을 부여받아 이스타홀딩스의 재산을 찾아 강제집행을 진행하거나 재산 명시를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실무에서는 한계가 뚜렷하다.
법원 관계자는 “민사 판결은 지급 의무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일 뿐 실제 돈을 받아내는 것은 별개”라고 설명했다. 재산 명시 제도도 채무자가 허위로 작성하면 이를 검증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채무자가 재산을 은닉하거나 가명으로 빼돌릴 경우 ‘강제집행 면탈죄’로 형사처벌이 가능하지만 단순 계약상 손해배상 사안에서는 적용이 쉽지 않다.
이스타홀딩스의 실제 배상 능력이 관건이다. 이상직 전 국회의원의 횡령·배임 수사 과정에서 회사 자산 대부분이 소실된 것으로 알려져서다. 창업주인 이 전 의원은 이스타항공에 수백억대 재산상 손해를 끼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대법원에서 2023년 4월 징역 6년이 확정됐다.
일각에서는 이스타홀딩스가 제주항공으로부터 받은 계약금을 이스타항공 운영비로 사용한 점을 근거로 이스타항공을 상대로 한 추가 소송 가능성이 제기된다.
다만 이스타항공은 이미 회생절차를 거쳐 VIG파트너스가 인수했고 이번 판결이 현 이스타항공에 미치는 재무적 영향은 없다.
법조계 관계자는 “이번 소송의 실질적 의미는 M&A 계약 무산의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고 제주항공의 회계·세무 처리를 위한 채권·채무 관계 확정”이라며 “실제 채권 회수보다는 대손 처리를 위한 절차적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허란 한국경제 기자 w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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