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열풍을 몰고 왔던 경기도 공장은 물론 대부분 주인이 나타나던 수도권 아파트 물건도 전 같은 인기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는 서울 안에서도 외곽이나 비(非)강남권 아파트가 2회 이상 유찰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경쟁률이 떨어진 만큼 기회의 문이 넓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막상 수요자가 덤벼들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부동산 대출규제가 여전한 데다 거시경제 리스크가 커지며 가격 상승에 따른 시세차익을 볼 수 있을지 불확실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강남 아니면 ‘in서울’ 아파트도 인기↓ 지난해 ‘전세사기’ 여파로 인해 많은 다세대주택이 법원경매에 쏟아져 나왔다. 빌라 기피 현상에 낙찰자를 찾지 못한 다세대 물건들은 유찰을 거듭하며 다시 경매에 나오길 반복했다. 지방은 물론 수도권 물건도 마찬가지였다.
아파트 경매도 비슷한 조짐이 보이고 있다. 올해 하반기 들어 수도권 아파트 경매 건수는 증가하는 흐름이다. 반면 평균 응찰자 수는 줄고 있다. 지지옥션에 따르면 올해 10월 서울아파트 경매 건수는 380건에 달했다. 2015년 4월 이후 최고치였다.
11월에는 경매 건수가 267건으로 이보다 30%가량 줄면서 상대적으로 평균 응찰자 수는 늘었다. 그나마 서울 아파트는 압류되기 전에 시장에서 팔리거나 경매법원에서도 찾는 수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낙찰가율은 97%에서 94.9%로 떨어졌다. 응찰자들이 한 달 전보다 높은 가격을 부르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주현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서울 아파트는 통상 1회 유찰되면 낙찰자가 나왔는데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은 최근에는 강남권 외 지역에선 2회 유찰돼야 매각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부동산이 법원 경매에 나오기 전 감정평가를 진행할 때부터 몇 달 시차가 발생하는데, 주택 시세가 주춤하면 감정평가액보다 낮은 가격에 낙찰을 받아야 손해를 보지 않는다. 통상 감정평가액이 감정 시기의 시세에 맞춰 정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12월 4일 기준 같은 달 경매법원에 나왔거나 나올 예정인 서울 노원구 소재 아파트(주상복합 포함) 43개 물건 중 28개 물건이 이미 1회 이상 유찰된 세대들이다. 그중 4건은 2회 유찰된 뒤 3번째 경매시장에 나온다.
1회와 2회 유찰된 물건의 최저 입찰가는 감정평가액의 각각 80%, 64%로 낮아진다. 경매 전문가들에 따르면 지난해와 올해 상반기까지는 통상 한 번 유찰된 서울 아파트 물건은 강남 지역에 위치하지 않아도 감정가보다 80~90% 저렴한 가격에 낙찰자가 나왔다.
그런데 최근에는 한 번 유찰돼도 응찰자를 찾기 힘든 주택이 늘고 있다. 임차인이 대항력을 갖췄을 때는 새 집주인이 해당 임차인이 돌려받지 못한 보증금을 떠안아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 같은 물건은 여러 번 유찰을 거듭하는 특징이 있다. 그런데 지분만 나온 특수 물건이거나 세입자 보증금을 물어주지 않는 물건도 매각이 점차 어려워지는 추세다.
이달 경매에 나오는 노원구 상계신동아아파트(전용면적 85㎡)는 큰 투자 리스크가 없는데도 응찰자가 없어 2회 유찰됐다. 캐피탈사 등이 근저당권을 설정한 임의경매 물건으로 매각되면 기존 채무 관계는 모두 말소된다. 현재까지 원래 집주인인 채무자가 전입한 상태다. 5억8400만원이던 이 물건의 최저입찰가는 1회 유찰 후 4억6720만원을 거쳐 이번에 3억7376만원까지 떨어졌다.
구로구 구로동 소재 구로주공2차아파트(전용면적 41㎡)도 신협, 대부업체가 채권자인 물건으로 낙찰 시 임차인의 월세 보증금 1000만원을 포함한 모든 권리관계가 말소된다. 하지만 현재까지 2회 유찰돼 3번째 경매를 기다리고 있다. 그동안 5억8900만원이던 최저입찰가는 3억7696만원으로 낮아졌다. 이처럼 갈수록 2회 유찰 후 새 집주인을 찾는 사례가 늘고 있다. 현금 부자만 ‘줍줍’ 가능해
서초, 강남에선 아직은 우면동 등 외곽지역 아파트나 아파트의 일부 지분 등을 제외하면 여전히 1회 유찰 뒤 매각되는 분위기다. 서초구 소재 새 아파트인 방배그랑자이 전용면적 84㎡ 타입은 11월 경매에 나와 10명이 응찰한 끝에 감정가 28억2000만원의 93%인 26억1600만원에 주인을 찾았다.
현재 부동산 경매는 지역 양극화라는 시장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일반 주택과 마찬가지로 경매 물건 역시 대출규제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8월부터 본격화한 금융권의 주택담보대출 제한 이후 ‘현금 부자’들만이 장만할 수 있는 일부 주거 선호지에만 수요자가 집중되는 추세다.
올해 상반기까지는 지방과 수도권 간 격차가 두드러졌다면 점차 시장이 악화하면서 강남권으로 잘 팔리는 지역의 범위가 좁혀진 셈이다.
꼭 대출규제가 적용되지 않더라도 금리나 경기의 영향을 많이 받는 근린상가 등 비주거용 부동산의 인기는 그 전부터 떨어진 상태였다. 한때 주목받던 공장 투자도 이제는 시들한 분위기다.
부동산 경매업계에 따르면 지난해까지만 해도 주요 도로 등 교통망과 접한 경기도 공장이 희소성을 바탕으로 투자자들의 관심을 받았다. 수도권정비계획법에 따라 ‘수도권 공장총량제’가 시행되고 있어 신규 제조시설을 짓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해 들어서는 점차 제조업 경기 역시 침체하면서 공장 투자로 이익을 보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경매 전문가인 정상열 천자봉플러스 대표는 “공장은 기존에 제조업을 하던 사업자가 경영상 문제로 채무를 갚지 못해 경매로 넘어가는 사례가 많다”며 “투자자들이 임대료를 제대로 받기 위해 아예 새 임차인을 들이려 하는데 요즘에는 제조업을 운영할 임차인을 구하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는 “이제는 괜찮은 물건이 나와도 그나마 현금을 많이 보유한 부자들이 투자를 할 수 있고 이들이 강남 건물이나 개발 보상을 노린 수도권 토지 등에 장기 투자하는 사례들이 조금 있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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