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 “면허체계 근간 흔들려” vs 간호계 “의료 현실 반영한 판결”

[법알못 판례 읽기]
한 대형병원에서 간호사들이 걸어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 대형병원에서 간호사들이 걸어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법원이 의사만 할 수 있다고 여겨졌던 골수 검사를 숙련된 간호사도 수행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1심과 2심에서 엇갈린 판단을 최종 정리한 이번 판결은 의료계의 고착화된 관행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의료행위, 시대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해석해야”

대법원 형사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12월 12일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서울아산병원을 운영하는 의료법인에 대해 무죄로 판단하고 원심을 파기·환송했다(2023도10286).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의료행위의 개념을 획기적으로 재해석했다.

“의료법은 의료인을 의사·간호사 등 종별로 엄격히 구분하면서도 의료인 상호 간 업무 영역과 면허 범위에 대해서는 규정을 두지 않았다”며 “이는 의료행위의 종류가 매우 다양하고 그 개념도 의학의 발달과 사회의 발전, 의료서비스 수요자의 인식과 요구에 따라 변화될 수 있음을 감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간호사의 ‘진료 보조’ 행위 판단 기준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해당 의료행위가 진단·치료의 본질적·핵심적 부분인지 여부 △시행되는 부위 및 구체적 방법과 난이도 △요구되는 의료지식과 기술의 수준 △발생 가능한 부작용이나 위험성의 정도 △임상의학 분야의 실질적 의료분업 현황 △의료기술과 의료산업의 발전 양상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골수 검사는 의사만이 할 수 있는 진료행위 자체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다”며 “환자의 개별적인 상태 등에 비추어 위험성이 높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의사가 진료의 보조행위 현장에 입회할 필요 없이 일반적인 지도·감독 아래 자질과 숙련도를 갖춘 간호사가 진료의 보조행위로서 시행하게 할 수 있는 의료행위”라고 판시했다.

1심과 2심 판단 엇갈려


이 사건은 2018년 서울아산병원의 종양전문간호사들이 골수 검체 채취를 위한 골막 천자를 시행한 것이 발단이 됐다.

이들 종양전문간호사는 한 달 정도 의사들이 골막 천자를 할 때 옆에서 관찰하고 검사 방법과 유의사항 등을 교육받았다. 이에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PA 불법의료 신고센터를 통해 이런 제보를 받고 병원과 관련자들을 경찰에 고발했다.

1심을 맡은 서울동부지법 재판부는 “부작용 사례가 없고 종양전문간호사 교육과정에 포함된 행위”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해외에서도 전문간호사가 수행하는 점을 고려했다.

특히 “모호한 규율 상태를 장기간 방치하거나 법에 따른 행정규칙 규율을 미뤄놓고 그 불명확 내지 규율 공백 상태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이익을 개인에게 돌리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며 의사들의 고의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반면 2심은 1심 판결을 완전히 뒤집었다. 재판부는 “의사 입회 여부와 관계없이 간호사의 골막 천자는 진료행위 자체”라며 “간호사의 행위는 자격 범위를 넘는 의료행위로 의료법 제27조 1항 무면허 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또 “의사들의 업무 과중을 이유로 전문간호사에게 이 사건 의료행위를 지시한 것으로 보인다”며 “무면허 의료행위에 대한 고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다만 종양전문간호사가 골막 천자를 수행해 환자의 건강이 손상되는 등 위험이 발생하지 않았고 고발 이후 의사가 직접 골막 천자를 하고 있다는 점 등을 참작해 벌금 2000만원을 선고했다.

치열했던 공개변론…전문가 의견 팽팽


이 사건의 중요성을 인식한 대법원은 지난 10월 8일 소부 공개변론을 열어 양측의 의견을 청취했다. 대법원이 전원합의체가 아닌 소부 사건의 공개 변론을 연 것은 2022년 3월 이후 2년 7개월 만이었다.

검찰 측은 “골수 검사는 마취나 골수 채취에 대한 전문성은 물론 부작용 및 합병증에 대한 지식과 응급 상황에 대한 대응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며 “이러한 성격을 보면 의사만이 해야 하는 절대적 의료행위이고 보조적 의료행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검찰 측 참고인으로 출석한 정재현 해운대부민병원 소화기센터 진료부장은 “종양 전문 간호사도 간호사 면허 안에서만 할 수 있고 진료 보조 행위를 벗어날 수 없다”며 “숙련된 간호사가 할 수 있는 경우라도 의사가 옆에서 보고 판단하고 합병증 발생 여부도 판단해야 한다”고 증언했다.

반면 서울아산병원 측은 “외국의 경우 전문 간호 인력이 이 검사를 실시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며 “의학은 글로벌 스탠더드를 가지고 있고 외국에서 허용되는 것을 우리나라에서 하지 못하는 합리적 근거를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피고인 측 참고인인 배성화 대구가톨릭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골수 검사는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것이 아니라서 숙련만 되면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적다”며 “누구나 부위를 확인할 수 있고 사람마다 차이가 없어 숙련만 되면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적다”고 증언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보건복지부의 입장 변화다. 2019년에는 골수 검사를 ‘명백하게 의사만이 할 수 있는 절대적 의료행위’라고 규정했으나 최근에는 “간호사의 경력에 맞게 업무 범위를 설정하고 적절하게 교육을 진행했다면 이 사건 검사의 진행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번 판결은 2025년 6월 시행 예정인 간호법과 맞물려 의료계의 큰 변화를 끌어낼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대법원은 일정한 제한도 두었다.

“환자의 체구가 작거나 성인과 같은 정도로 골화가 진행되지 않은 소아 등과 같이 골수 검사 과정에서 환자의 전반적인 상태나 검사 부위의 합병증 발생 여부를 직접 파악할 필요가 있을 때는 의사가 골수 검사 현장에 입회해 진료 보조행위를 하는 간호사에 대해 구체적인 지도·감독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명시했다.

이번 판결은 의료인 간 업무 범위와 협력 관계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다는 평가다. 의료 기술 발전과 의료서비스 수요 변화를 반영한 유연한 해석이 필요하다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돋보기]
의료계 ‘찬반 논란’ 격화

골수 검사를 숙련된 간호사도 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을 두고 의료계 안팎에서 갑론을박이 거세다. 의사단체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대한의사협회는 “단순 숙달 여부 등을 이유로 본질적인 업무 범위가 달라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우려를 표명했다.

사건을 최초 고발했던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의료인 면허체계의 근간을 흔든 오판을 규탄한다”며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반면 한국전문간호사협회는 “간호의 전문성과 환자 중심 의료를 반영한 현명한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한국백혈병환우회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골수검사 경험이 있는 환자들의 60.5%가 ‘의사만 할 수 있는 의료행위’라고 답했다. 다만 “매달 바뀌는 레지던트보다는 전문간호사가 하는 게 더 좋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번 판결의 후폭풍은 2025년 6월 시행 예정인 간호법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대한간호협회는 “의사가 해야 할 다른 침습적 행위도 간호사에게 떠넘겨질 수 있어 법적 부담 등을 고려한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환자 단체와 간호계는 공통적으로 “골수검사와 같은 침습적 검사행위에 대해 환자의 안전과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허란 한국경제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