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한국인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하며
'텍스트힙' 열풍 몰고와…한강 소설 흥행
지난해 쇼펜하우어 붐에 이어
올해 인생 의미 찾는 인문학 서적 인기
베스트셀러는 숫자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사회의 상처를 헤아리고 갈증과 결핍을 채워주는 치유의 도구다. 잘 팔리는 책이 시대를 비추는 거울로 평가받는 까닭이다. 2024년 우리가 원하는 게 무엇이었는지 베스트셀러를 관통하는 주요 키워드로 살펴보려고 한다. ◆소설 - 한강, 한강, 한강“가장 어두운 밤에도 언어는 우리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묻고, 언어는 이 행성에 사는 사람의 관점에서 상상하기를 고집하며, 언어는 우리를 서로 연결한다.”
한강 작가가 12월 10일(현지 시간) 스톡홀름 시청 ‘블루홀’에서 열린 2024 노벨상 시상식 연회에 참석해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을 밝혔다.
한강 작가는 지난 10월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스웨덴 한림원은 “자신의 작품에서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했다”고 수상 이유를 설명했다. 또 한강 작가가 시적이고 실험적인 스타일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됐다고 평
가했다. 특히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사태와 맞물리면서 더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소년이 온다’는 국가의 무자비함을 생생하게 그려내 인간의 잔혹함과 악행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살아남은 것을 오히려 치욕으로 여기며 매일을 힘겹게 견뎌내는 이들에 어떤 답을 줄 수 있는지 고민하는 내용이다. 백지연 문화평론가는 ‘소년이 온다’에 대해 “이 소설은 우리가 ‘붙들어야 할’ 역사적 기억이 무엇인지를 절실하게 환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한강의 ‘채식주의자’, ‘작별하지 않는다’, ‘희랍어 시간’, ‘흰’ 등 대부분의 작품이 모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경제·경영 - ‘돈·투자’보다 중요한 ‘삶의 교훈’ 경제·경영 부문에서는 당장 수익을 낼 수 있는 ‘꿀팁’보다는 문제를 해결하는 법과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조언들이 담긴 책이 주목받았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주식으로 유명한 지주회사 벅셔해서웨이의 부회장을 지낸 찰리 멍거의 ‘가난한 찰리의 연감’이 올해도 ‘투자자의 바이블’로 꼽히며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 책에는 찰리 멍거의 강연 중 가장 뛰어난 11개의 강연 외에도 청중과의 질의응답, 평생의 동업자 워런 버핏과 찰리 멍거 자녀들의 회고, 오마하에서 소박하게 살던 소년 시절부터 엄청난 재정적 성공을 거두기까지 찰리 멍거의 생애와 그의 투자 평가 절차 및 원칙이 담겨 있다.
모건 하우절의 ‘불변의 법칙’이 출간 직후 미국 아마존과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자리에 오른 것도 같은 이유다. 돈과 투자 영역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인간의 본성과 세상의 이치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워런 버핏, 유발 하라리 등 유명 인사의 흥미로운 일화를 통해 인간사를 꿰뚫는 통찰과 삶의 교훈을 알려준다. ◆ 인문 - 인생의 나침반이 필요한 순간에 대입, 취업 등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서 압박감과 무력함을 느끼고 염세주의자가 된 MZ세대는 책을 통해 삶의 본질을 찾아간다. 냉소와 염세의 철학자 ‘쇼펜하우어 붐’이 만들어진 것도 MZ세대의 현실이 반영된 결과다. 인문 부문에서는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책이 인기를 끈 것도 ‘어른은 없고 꼰대만 남았다’고 외치는 MZ세대들이 잡을 수 있는 몇 없는 동아줄이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사회인류학자 토마스 힐란드 에릭센의 ‘인생의 의미’는 노르웨이 국민들의 인생책으로 불린다. 인류의 궤적을 ‘인생의 의미’라는 관점으로 재편성한 것으로 “무엇을 위하여 우리는 이토록 열심히 사는 걸까”라는 질문을 곱씹어보면서 내가 하는 일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뉴욕타임스 기자 존 릴런드는 ‘만일 나에게 단 한 번의 아침이 남아 있다면’에서 삶의 마지막을 향해 유유히 걸어가는 노인 여섯 명과 1년에 걸쳐 인터뷰를 진행해 이 책에 담았다. 인생의 의미와 삶의 가치, 행복에 대해 함께 묻고 답하며 흔들리던 삶의 갈피를 잡아가는 내용이다.
길을 잃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삶의 태도, 행복을 찾는 방법, 한 번뿐인 인생을 대하는 자세 등을 알려준다.
성공학 콘텐츠 전문가 고윤이 지은 ‘왜 당신은 다른 사람을 위해 살고 있는가’에서는 철학이 없는 사람들에게 단순한 동기 부여가 아닌 새로운 철학을 통해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한다. 나이가 들며 삶의 중심을 잡을 수 있는 이유는 자신만의 원칙과 철학이 있기 때문이며, 지금 인생이 흔들리고 있다면 ‘철학의 부재’가 원인 중 하나일 수 있다.
이 책은 “삶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으면 타인을 위해 살게 되는 불상사가 생긴다”며 “우리가 사는 방식은 우리의 생각에 따라 결정된다고 한다. 흔들리는 내 삶의 중심을 잡아주는 철학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 자기계발 - 고요하게 나를 지키는 삶 2025년 트렌드를 관통하는 단어는 ‘무탈’과 ‘평온’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행복의 과시가 일상이 되고, 세계 곳곳에서는 전쟁이 발생하고 있다. 세계경제는 30년 만에 최악의 저성장 궤도에 진입했다. 시대의 불안이 극대화되면서 스스로 안정을 찾고 있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자기계발 부문에서 ‘나를 지키는 삶’에 대한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독일 작가 마티아스 뇔케의 ‘나를 소모하지 않는 현명한 태도에 관하여’는 폭풍 같은 세상에서 고요하게 자기 중심을 잡고 서는 사람이 되는 법을 담아냈다. 모든 것이 과하게 요구되고 요란하게 소비되는 시대에 ‘더 현명한 삶의 방식’은 무엇인지를 통찰했다. 뇔케는 스스로를 존중하기 위해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는 삶, 다른 사람의 기준과 요구에 내 행복을 걸지 않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자기를 드러내느라 ‘시끄러운’ 사람들은 이 책을 싫어하겠지만 절제와 겸손을 선택한 ‘조용한’ 사람들은 이 책을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조직심리학자 벤저민 하디가 써낸 ‘퓨처셀프’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나’에게 집중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눈앞의 목표보다는 미래의 나는 어떤 모습일지 깊이 생각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저자는 ‘5년 뒤의 나’, ‘10년 뒤의 나’를 상상하고 자신이 되고 싶은 ‘미래의 나’와 현재를 연결해 매일을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상상한 미래 자아는 현실에서 원동력이 되어 목표와 우선순위가 달라지게 만든다. 미래의 자신과 밀접하게 연결될수록 더 나은 현재를 살아갈 수 있다는 의미다. ◆ 필사용 서적 - 마음에 키우는 근육 올해는 특히 MZ세대 사이에서 필사 열풍이 불면서 ‘필사 도서’가 인기를 끌었다. 개성 있고 유행에 밝은 것을 뜻하는 ‘힙하다’와 ‘글’을 의미하는 ‘텍스트’가 합쳐진 신조어 ‘텍스트힙’이 유행하면서 마음에 드는 문장을 필사해 SNS에 게재하는 행위도 늘어났다.
미국 출신의 작가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은 젊은층에서 필사 서적으로 인기를 얻은 뒤 최근 필사용 특별판으로 출간됐다. 1936년 ‘친구를 만들고 사람을 설득하는 법’이라는 제목으로 나온 이 책은 단순하고 실용적인 원칙들로 관계와 관련된 고민을 해결해준다. 사람을 다루는 기본적인 방법, 사람들이 당신을 좋아하도록 만드는 방법, 사람들을 설득하는 방법, 반발 없이 상대를 변화시키는 방법 등이 담겼다.
이 외에도 공자의 가르침이 담긴 ‘논어’, 윤동주 시인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조셉 머피의 ‘잠재의식의 힘’ 등이 필사용 책으로 관심을 받고 있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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