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패션업계, 성장 둔화에 어려움 겪을 전망
소비자, 인플레이션 경험 이후 가격 민감도 높아져
패션 트렌드로는 '맥시멀리즘의 귀환'
치마바지, 모토 보헤미안 등도 트렌드로
올해 패션업계는 더 어려운 시험대에 올랐다. 성장할 여지는 있지만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소비자들은 높아지는 가격에 더욱더 민감해지고 있으며 기후변화 속도는 빨라지고 있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수많은 브랜드가 생겨나면서 소비자들의 피로도는 높아지고 있다. ◆ 어려움은 계속된다 올해 패션업계는 ‘2024년의 연장선’이다. 지난해 업황 침체에 따른 기저효과로 성장은 하지만 이 역시 착시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와 패션 전문지 비즈니스오브패션(BoF)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글로벌 패션 산업은 2~5% 수준의 성장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맥킨지는 “성장 둔화가 이어지고 있다”며 “성장할 여지는 있지만 경제적 불확실성, 지리적 격차 등이 변수다. 결과적으로 많은 브랜드에 2025년은 심판의 시간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우선 경제적 불확실성이 지속되면서 패션업계도 그 영향을 받는다. 세계경제의 둔화와 소비자 신뢰 저하가 영향을 미친다. 특히 인플레이션(물가상승) 경험 이후 가격 민감도가 높아진 소비자들이 옷이나 가방 등을 쉽게 구입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세부적으로는 명품 산업의 침체가 올해도 계속되면서 2010년 이후 처음으로 비명품 카테고리 성장률이 명품 카테고리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비명품군의 예상 성장률은 2~4%지만 명품군은 역성장까지 우려되고 있다. 특히 중국에서는 명품군이 -3%까지 역성장할 수 있다는 시각이 있다.
그럼에도 긍정적인 요인은 있다. 유럽과 미국에 대한 시장 전망이 긍정적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은 2024년 12월 네 번째 금리인하를 결정했다. 앞서 ECB는 6월, 9월, 10월에도 금리인하를 결정했다. 2023년 4.00%까지 치솟았던 예금금리는 2024년 말 들어 3.00%까지 낮아졌다. 맥킨지는 금리인하로 인해 유럽의 소비가 활성화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미국에서는 고액 자산가가 늘어난 게 시장에 긍정적인 요인이다. 프랑스계 컨설팅기업 캡제미니가 발간한 ‘세계 부 보고서 2024’에 따르면 2023년 유동자산이 100만 달러(13억7000만원) 이상인 고액 순자산 보유자(HNWI)의 수는 전년보다 5.1% 늘어난 2억2800만 명이다. 전 세계 주식시장 호황의 영향이다. 이들이 미국 자산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만큼 미국 경제는 고액 자산가들의 소비와 투자가 늘어나며 패션업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맥킨지는 “미국에서는 인플레이션 감소, 가처분 소득 증가, 부동산 시장 강세로 인해 중산층 및 상류층 소비자들의 사치품 소비 능력이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아시아는 중국이 문제다. 경제성장 둔화가 이어지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벌써부터 중국 압박을 시작했다. 양웨이민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경제위원회 부주임, 왕충민 전 사회보험기금이사회 부이사장, 궈레이 광파증권 수석이코노미스트 등 중국 전문가들은 최근 포럼을 열고 소비를 진작하고 부동산 하락세를 멈추는 게 관건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경제 침체, 소비자 선호도 변화 등으로 중국 경제성장이 매우 어려워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 글로벌 패션 브랜드들은 중국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아시아 시장을 물색하고 있다.
맥킨지는 “올해 패션산업은 거시경제적 압박과 계속된 가격 상승으로 인해 소비자들의 구매 행동이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한 해”라며 “일부 경제가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소비자들의 가치 중심적 소비 행태는 더 강화될 전망이다. 이러한 변화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 장기적인 소비 트렌드”라고 예측했다. ◆ 트렌드: 맥시멀리즘부터 치마바지까지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새로운 패션 트렌드는 만들어진다. 맥시멀리즘의 귀환, 스커트 팬츠(치마바지)의 유행 등이 대표적이다.
우선 맥시멀리즘이 다시 뜬다. 구찌의 부흥기를 이끈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약 2년 만에 패션업계로 돌아온 영향이다. 미켈레는 2024년 9월 발렌티노의 크레에이티브 디렉터(CD)로 첫 데뷔쇼를 가졌다. 미켈레의 발렌티노뿐만 아니라 로에베, 생로랑, 스키아파렐 등 다양한 브랜드에서 화려한 디자인의 ‘25 SS(봄여름) 컬렉션’을 선보였다.
패션 매거진 하퍼스 바자는 “SS 컬렉션에서 많은 디자이너들이 비단 재킷부터 보석이 박힌 상의까지 궁극의 화려함을 위해 ‘더 많을수록 더 좋다’는 접근 방식을 취했다”고 평가했다.
이미지 공유 소셜미디어 플랫폼 핀터레스트 역시 ‘맥시멀리스트 디자인’이 2025년 트렌드가 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Z세대 사용자 비중이 40%인 핀터레스트는 트렌드 보고서를 통해 “우리는 지난 5년 동안 80%의 정확성을 입증했다”며 “올해는 맥시멀리즘과 과감한 스타일로 회귀한다”고 분석했다.
‘모토-보헤미안’도 새로운 트렌드다. 모토-보헤미안 룩은 모터사이클(오토바이)과 보헤미안(자유분방한 삶을 사는 집시)의 합성어로 오토바이를 탈 때 입는 옷과 나풀거리는 레이스 원피스의 조화를 뜻한다. 예를 들면 두꺼운 가죽 재킷, 레이스 치마, 롱부츠 등을 함께 입는 방식이다. 또 치마와 바지를 합친 ‘스커트 팬츠’도 트렌드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치마와 바지가 결합된 디자인에 주목하고 다. 아미, 꾸레쥬, 폴로 랄프로렌 등 여러 해외 브랜드들은 25 SS 시즌 컬렉션을 통해 바지 위에 같은 소재의 치마를 레이어드하는 스커트 오버 팬츠와 랩 스커트를 바지와 매치하는 스타일을 런웨이에 올렸다.
치마와 바지를 함께 입는 트렌드가 부상함에 따라 국내 소비자들의 관련 상품 수요도 큰 폭으로 늘었다. 패션 플랫폼 무신사에 따르면 2024년 11월 한 달간 ‘치마 바지’, ‘스커트 팬츠’와 같은 키워드 검색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배 이상 늘어났다. 관련 상품을 찾는 고객들이 늘며 ‘레이어드 치마 바지’ 등과 같은 올해 새로 등장한 키워드가 높은 검색량을 기록하기도 했다.
무신사에서 주목받는 디자이너 브랜드들도 이번 시즌에 다양한 스타일의 치마 바지를 발매했다. 모노톤의 클래식 놈코어 룩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트리밍버드는 소재와 실루엣, 디테일을 달리해 여러 디자인의 랩 스커트 팬츠를 새롭게 선보였다. 트리밍버드가 최근 발매한 ‘레이어드 랩 스커트 데님 카고 팬츠’ 와이드 데님 팬츠와 레이어링된 듯한 스커트 디자인으로 유니크한 실루엣을 완성했다. 사선으로 퍼지는 스커트에 카고 입체적인 포켓 디테일, 워싱을 적용해 캐주얼하면서도 감각적인 스타일링을 연출할 수 있다.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치마를 바지 위에 레이어드하는 스타일을 주목할 만하다. 2024년 7월에는 배우 구교환이 영화 ‘탈주’ 무대인사에서 여러 차례 치마 패션을 완벽하게 소화해 화제가 됐다. 펜디, 루이비통 등 해외 럭셔리 브랜드에서도 남성용 스커트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패션 영역에서 성별의 경계를 허무는 젠더리스(성 구별이 없는) 트렌드가 확산함에 따라 2025년에는 스커트 팬츠를 찾는 남성들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외에도 스트라이프(줄무늬), 젠더리스 등이 올해 패션업계의 유행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무신사 관계자는 “정형화된 틀을 벗어난 실루엣을 제안하는 스커트 팬츠가 새로운 패션을 시도하고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려는 고객들이 즐겨 찾는 패션 아이템으로 떠오르고 있다”며 “무신사에서도 브랜드만의 색깔이 드러나는 독창적인 디자인과 활용도 높은 다양한 스커트 팬츠가 새롭게 등장해 이 같은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