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호재로 들썩이던 것도 잠시,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정국이 혼란해지면서 두 지역 분위기는 다소 잠잠해진 상태다. 애초에 현 정부가 추진한 정책인 만큼 지역에선 사업 진행 가능성에 대한 불안감을 표하기도 한다.
그러나 국회를 통과한 특별법(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바탕으로 추진됐으므로 당장의 사업 진척에는 큰 문제가 없을 확률이 높다. 선도지구 신청을 하는 단계에서 구역별 동의율이 워낙 높았던 데다 이제 정비계획 수립을 목표로 달리는 초기 단계에서는 결정적인 걸림돌이 생기기 어렵다.
다만 ‘2027년 착공’이라는 실현 불가능한 목표에 대해선 조정이 필요해 보인다. 중앙정부 주도로 급하게 추진된 만큼 곳곳에서 허점도 발견된다. 주민들 간에 “우리가 먼저 해야 한다”는 마음에 제대로 계산기를 두드려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통합 재건축’이라는 정책의 틀 안에서 각 단지 주민들의 이해관계가 나중에 갈등 요인으로 표출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과열된 분당, 따라간 일산 ‘재건축 이슈’를 가장 먼저 선점한 지역은 성남 분당이었다. 분당은 1기 신도시 중 아파트 완공 및 입주 시기가 1991년으로 가장 빨랐던 데다 입지나 부동산 시세도 재건축 사업을 추진하는 데 가장 유리한 곳으로 꼽혔다. 이에 따라 시범단지가 재건축 연한인 30년을 바라보던 2015년 전후로 재건축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분당신도시 내 재건축추진준비위 관계자는 “노후계획도시 특별법이 제정되기 전에도 분당 주민들 사이에선 30년 차가 되면 기존 도정법(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따라 재건축을 추진할 수 있도록 정비기본계획에 용적률을 3종일반주거지역 상한인 300%로 높여달라는 요구가 있었다”며 “그럼에도 당시 성남시에선 요구를 들어주지 않아 일부 단지가 주택법상 리모델링을 추진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2023년 노후계획도시 특별법 제정 가능성이 커지자 분당의 재건축 열기가 금방 달아오른 것은 당연했다. 특별법이 시행되면 해당하는 아파트 단지들은 안전진단 없이 재건축을 추진할 수 있으며 역세권에선 용적률 혜택(기존 300%→최고 500%)도 기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분당신도시 내에는 신분당선과 수인·분당선, 경강선,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A노선이 정차하며 역사는 환승역 수를 제외하면 8개에 달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분당에선 올해 전체 아파트 단지의 70%가 선도지구 공모에 신청했다. 평균 주민동의율은 90.7%를 기록했다. 가장 높은 배점을 차지하는 동의율 만점(60점) 기준이 ‘95%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만점을 채운 단지 중에서 선도지구가 나왔다. 이 과정에서 일부 단지는 재건축 미동의 세대를 아파트 게시판에 공개하는 등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대지지분은 일산 > 분당 이에 비해 조용하던 일산에선 2022년 지방선거와 이듬해 고양시 사전컨설팅 공모를 거치며 주민들 사이에서 재건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게 됐다. 일산신도시의 기존 용적률 평균이 169%로 1기 신도시 중 2번째로 낮은 분당(184%)보다도 15%가량 낮다는 점도 일부 작용했다.
사전컨설팅에선 주민동의율 50%, 공공기여 방안 의지 10% 등 고양시가 내세운 채점 기준이 있었으나 ‘대규모 블록 통합정비’, ‘역세권 복합고밀개발 통합정비’, ‘연립주택 통합정비’, ‘단독재건축’ 등 총 4개 부문에 따라 신청을 받아 최고점을 받은 구역이 최종 선정되게 했다.
이에 따라 일산동구 강촌1·2단지, 백마1·2단지가 대규모 블록 통합정비, 일산서구의 후곡3·4·10·15단지는 역세권 복합고밀개발 통합정비, 일산동구 백송마을5단지는 단독재건축으로 총 3개구역이 선정됐다.
이처럼 일산과 분당에서 재건축 주민동의를 얻는 과정에는 타 단지에 대한 경쟁심리가 크게 작용했다. 선도지구로 선정되면 예산지원 등 각종 혜택을 볼 수 있는 데다 선도지구가 되지 못하면 이주대책 문제로 사업 속도가 크게 밀릴 것이란 우려 때문이었다. 실제로 정부는 지난 12월 19일 인근에 택지개발이 활발한 일산을 제외한 분당, 평촌, 산본에 이주지원주택 7700여 가구 공급계획을 발표하는 등 이주대책을 적극 마련하고 있다.
학군지 손 들어준 정부
최종적으로 2024년 11월 선도지구에 선정된 곳은 1기 신도시 전체에서 총 13개 구역, 3만6000세대에 달한다. 이 중 분당과 일산에서 각각 3개 구역 1만948세대, 3개 구역 8912세대 규모가 뽑혔다. 이들 구역에 속한 단지들의 공통점은 대부분 역세권이거나 학군지라는 것이다.
분당구 서현동에 위치한 시범우성 등 3713세대와 분당동 샛별마을 동성 등 2843세대, 수내동 양지마을 금호 등 4392세대는 분당신도시에서 손꼽히는 학군지다. 시범아파트 단지가 밀집한 서현동은 대학진학률이 높은 서현고 등을 품고 있고 샛별마을과 양지마을은 분당을 대표하는 ‘수내학군’에 속한다.
일산에선 백송마을1·2·3·5단지, 후곡마을3·4·10·15단지, 강촌마을 3·5·7·8단지가 선정됐다. 후곡마을 외에는 사전컨설팅 선정 결과와 차이가 있지만 결국 같은 지역 인근 단지가 뽑혔다. 일산의 대표 학원가가 자리 잡은 후곡동을 비롯한 이들 지역 역시 학군이 좋은 지역에 속한다.
이에 대해 한 일산 부동산 관계자는 “아무래도 사업성과 입지, 재건축 분담금 등을 고려해 입지가 좋고 소유주들이 사업을 감당할 능력이 되는 곳을 선정한 것이 아니겠나”라고 평했다.
통합 재건축, 졸속은 위험
분당 선도지구는 재건축 기대감에 선도지구 발표를 앞두고 급격히 가격 상승을 기록했다. 시범우성 전용면적 64㎡는 선도지구 발표 이후인 12월 12억7500만원에 실거래됐는데, 이는 2022년 기록한 전고점인 12억1500만원을 넘긴 것이다.
일산 선도지구는 잠겼던 거래가 다소 살아나긴 했지만 쌓여 있는 매물로 인해 가격 상승폭은 크지 않은 상황이다. 마두역 인근 강촌5단지(강촌라이프) 아파트 전용면적 49㎡ 타입은 12월에만 26일 기준 5건이 거래됐으나 실거래가격은 모두 3억원 후반~4억원 중반대로 2022년 전고가인 5억4000만원을 밑돌았다. 연말 GTX-A 개통 호재에도 경기북부라는 점과 재건축 허용 용적률이 분당보다 낮은 300%에 그쳤다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일산의 재건축 열기는 이어지는 분위기다. 정부는 이번 선도지구 지정 이후 공모 형식이 아닌 개별 구역별 제안 형식으로 재건축 사업지를 선정할 계획이다. 한 일산 주민은 “호수공원 인근 장항지구 등에 아파트가 계속 지어지고 있지만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등하교를 해야 하는 등 각종 인프라가 집중된 기존 일산 아파트 단지의 입지를 대체하지 못하고 있다”며 “선도지구로 선정된 곳 외에도 단지마다 개별적인 재건축 움직임이 지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재건축 추진에서 앞서간 분당에서는 향후 ‘묻지마식’ 통합 재건축 추진에 대한 부작용이 나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번 선도지구 선정 기준이 25m 이상 도로로 구획된 아파트 단지들에 대해 통합 대단지를 조성하도록 구역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각 구역에선 빠르게 동의율을 채우는 과정에서 통합 재건축 사업 추진의 핵심인 조합원 분양 아파트의 위치, 단지별 수익 및 비용 정산 문제를 미처 정하지 못했다.
일부 통합 재건축 단지는 조합원이 기존 아파트 위치를 옮기며 발생하는 갈등을 예방하기 위해 ‘제자리 재건축’을 택하거나 단지별 ‘독립정산제’를 적용해 각 단지의 대지지분 및 허용용적률에 따른 분양수익을 분담금에 반영한다.
분당 재건축 준비위 관계자는 “노후계획도시 특별법에 따라 각종 인허가 절차를 단축하더라도 현 정부의 임기 말인 2027년 첫 재건축 선도지구 아파트를 착공하겠다는 계획은 어불성설”이라며 “현 정부 계획은 어차피 미뤄질 가능성이 높으나 정비계획 수립 후 한 구역에 속하게 되는 각 단지가 독립정산제를 따를지 심도 있는 논의가 있어야 추후에 빠른 사업 추진이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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