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4구역 시공사 선정은 2024년 하반기부터 재개발·재건축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이벤트다. 국내 최고 건설사인 삼성과 현대의 참전이 유력했기 때문이다. 2022년 말 대우건설과 롯데건설이 한남2구역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한 뒤 2년 만이다. 주택경기가 가라앉고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리스크가 커지면서 과감한 수주전에 뛰어들 만한 회사가 삼성, 현대 외에 없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양사가 2024년 11월 조합에 입찰제안서를 제출하고 보증금 500억원을 납부하면서 결국 수주전은 성사됐다. 그리고 약 한 달 뒤인 12월 24일 용산구청을 낀 녹사평대로 내 불과 50여 m 거리에 나란히 홍보관을 열었다. 삼성물산은 명품시계 브랜드 브라이틀링이 입점한 이태원 초입 건물(명보빌딩)의 5~6층을 임차했다. 현대건설은 아예 크라운호텔 부지에 단독 건물을 꾸렸다. 이들 홍보관에선 본사 관계자들과 지원인력들이 정해진 시간대마다 사전예약을 통해 방문하는 조합원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양사는 물론 1군 건설사 대부분이 집단 휴가 및 단축근무를 하던 새해 마지막 날 홍보관 직원들은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나서까지 열정적으로 조합원들을 상대했다. 홍보관 직원과 방문 조합원들로 인해 인근 식당과 카페도 평소보다 더 붐볐다. 한 홍보관 관계자는 “홍보관이 가까워 식당에서 동료는 물론 경쟁사 직원들을 마주치는 것이 일상”이라며 “명동교자 등 인기 식당에는 점심 때 줄이 꽤 길다”고 말했다.
홍보관 내 모형도로 전시된 각사의 대안설계에는 무엇보다 조합원이 가장 원하는 ‘한강조망’을 살리기 위한 노력이 철저히 반영됐다. 이주비, 분담금 납부에 필요한 금융지원 등은 덤이다. 조합원 총회가 2주 앞으로 다가오며 비방전도 심화하는 모양새다. 한강변 입지 살리려 안간힘 조합원 다수의 눈길은 아파트 완성 모형과 평면도에 쏠렸다.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은 각각 세계적 설계사인 UN스튜디오, 자하 하디드 아키텍트와 협업해 2024년 5월 서울시를 통과한 한남4구역 건축계획을 대폭 변경한 대안설계안을 내놨다. 화려한 조명까지 설치하는 등 공을 들여 완성한 아파트 단지 모형을 통해 어렴풋이 상상했던 대안설계가 실현된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대안설계의 핵심은 입지에 걸맞은 단지 고급화와 조망 확보에 있다.
한남4구역은 조합원 수(1162명) 대비 일반분양이 많아 한남뉴타운 내에서도 가장 사업성이 좋은 곳으로 꼽힌다. 그러나 다른 한남뉴타운 재개발구역과 마찬가지로 남산경관지구에 속한 터라 고도가 90m로 제한돼 층수를 높이기 어렵고 한강변에 인접한 부지 면적이 넓지 않은 단점이 있다.
4구역 내 5개 블록(BL) 중 한강 전면에 위치한 곳은 30블록과 34블록이다. 특히 한강변을 따라 길게 자리 잡은 30블록은 세대에 따라 영구 한강조망이 가능한 동시에 완공 후 아파트의 얼굴이 될 곳이다. 그러나 11만5000㎡에 달하는 전체 사업구역에서 10분의 1 수준인 1만8000여 ㎡에 불과하다. 34블록도 1만5000㎡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그나마 강변북로로 이어진 서빙고고가차도와 지대가 높은 오산고등학교, 리버뷰 아파트 등도 한강으로 향하는 시야를 가리는 요소다. 실제로 강변북로와 접한 한남4구역 현장을 방문하니 가파른 언덕 위에 위치한 오산고에서 재개발 구역 내 다가구주택촌이 내려다보였다. 이 같은 상태에서 양사는 조합원 눈높이를 총족하기 위해 이 두 개 블록에 랜드마크를 배치했다. 삼성물산은 층별로 6개 가구가 원형 모양으로 코어를 둘러싸고 있는 O타워 4개 동을 30블록과 34블록에 놓고 넓은 동 간격을 통해 전용면적 84㎡가 일부 위치한 뒷동에서도 한강뷰를 누릴 수 있도록 했다. O타워 각 세대는 30㎡에 가까운 개인 테라스를 갖추고 있으며 뒷동의 평면은 반듯한 판상형으로 구성된 것이 특징이다.
또 단지 내 통경축을 통해 ‘조합원 100% 한강조망 입주’를 실현하고 아파트 시세 상승을 극대화하겠다는 계획이다. 한강조망 가구 수를 조합원 수보다 약 500가구가 많은 1652가구로 넉넉히 잡았다는 것이다. 홍보관에선 특정 동의 각 층에서 누릴 수 있는 한강조망을 시뮬레이션 화면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현대건설은 층마다 양창형 구조를 갖춘 4개 가구가 배치된 Y자 타워를 30블록과 34블록에 집중 배치한다. 이들 세대는 양창형 또는 3면 개방형으로 설계돼 한강조망을 극대화하며 타워형이지만 맞통풍이 가능하다. 최고 7m 길이(아파트 3개 층 높이)의 필로티를 통해 지대가 낮다는 단점을 보완해 저층에서도 한강조망을 누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 30블록과 34블록에 각각 Y자 3개 동, 2개 동을 연결한 ‘더블 스카이브리지’가 눈에 띈다. 한강변 최장 규모인 300m 길이의 스카이브리지는 유명 건축가인 자하 하디드 특유의 곡선미를 살린 스타일로 전체 8만8000개 알루미늄 패널을 통해 특화할 단지 외관과 함께 어우러질 전망이다. 사업성 우위 vs 고급화 대결 홍보관에서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프레젠테이션 내용은 절반 이상 상대의 사업 조건을 지적하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특히 양사는 상대의 랜드마크 설계를 정밀 타격하고 나섰다. 삼성물산은 현대건설이 설계한 한강변 스카이브리지가 경관을 가려 서울시 심의를 통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삼성물산은 인허가를 고려해 조합이 건축심의를 받은 대로 32블록에 스카이커뮤니티를 조성했다는 것이다.
또 현대건설 설계에선 30블록 내 아파트 동 간격이 가장 좁게는 5.7m까지 가까워지며 일자형 배치로 인해 뒷동 조망권이 확보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이로 인해 오히려 34블록 뒤편에 있는 한남3구역에서 일렬로 늘어선 아파트 건물 사이로 한강조망을 누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남3구역 재개발 시공권은 현대건설이 2019년 수주했다. 권혁태 삼성물산 소장은 “현대건설은 한남4구역에 3구역 이상의 사업조건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현대건설은 인공지능(AI) 분석 결과 삼성물산 주장만큼 한강조망 세대가 많이 나올 수 없다고 지적했다. 현대건설이 AI 전문 업체를 통해 분석한 자사 설계상 한강조망 세대 수는 849세대이며 삼성물산은 650세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또 삼성물산의 계획대로라면 단지 고급화가 어렵다고 강조했다. 삼성물산 설계상 한강변 저층에선 필로티가 없어 한강조망이 어렵고 강의 반대편을 마주한 O타워의 북향 세대들도 비선호 세대로 남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32블록 저층에 전체 세대 수의 24%에 달하는 복도식 전용면적 39㎡·46㎡가 밀집해 있는 것도 문제 삼았다. 정원석 현대건설 소장은 “삼성물산은 비선호 세대에 대해 조합원이 분양받지 않고 일반분양하거나 임대로 넣으면 된다고 주장한다”며 “결국 일반분양 세대도 고급화해야 전체 단지가 고급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진흙탕 된 수주전, 홍보관도 기준 위반 이에 대해 한 설계업계 전문가는 “양사가 한강 입지를 최대한 살리려고 하다가 다소 실험적인 설계를 내놓은 게 아닐까 한다”며 “모형이나 도면만으로 한강조망 세대를 수치화하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이 밖에 시공사 입찰지침을 정할 당시부터 문제가 됐던 ‘책임준공확약’과 자금조달 조건에 대해서도 네거티브전이 이어졌다. 책임준공확약이란 시공사가 정해진 기한 내에 공사를 마치지 못하면 시행자의 채무를 인수하거나 손해배상을 하겠다는 계약방식이다.
삼성물산은 현대가 책임준공확약서에 ‘시공사의 책임이 없는 경우를 제외’하는 단서조항을 달았다고 지적했다. 권혁태 소장은 현대건설이 시공단 주간사로 참여한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공사 중단 사례 등을 지적하며 “‘나한테는 그러지 않겠지’라고 생각해서 다시 뽑아줘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현대건설은 외려 자사가 대표이사 직인까지 찍은 확약서를 제출한 데 비해 삼성물산은 “시공사 선정 후 조합과 협의해 계약하겠다”는 단서를 달았다고 주장한다. 상대 측의 비판에 대해 각사는 “근거 없는 비방일 뿐”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현장에선 조합원 한 명, 또는 일행까지 2~3명당 직원 한 명씩 담당하며 상담을 진행했다. 조합원들은 비교적 조용히 홍보관 관계자들의 말을 경청하는 모습이었다. 양사는 상대방 홍보관 내 조합원 인원과 분위기 등에 대해 관심을 기울였다.
한편 서울시와 용산구청은 양사가 자율적으로 홍보관을 꾸린 행위 자체가 서울시 공공지원 정비사업 시공자 선정 기준 위반이라는 입장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각 시공사는 조합이나 사업자가 공동으로 마련한 홍보공간 1곳에서만 홍보활동을 할 수 있다. 이미 서울시와 용산구는 한남4구역 조합은 물론 삼성물산, 현대건설과 해당 위반행위에 대한 회의를 진행했다.
일부 조합원들은 조합의 미온적인 단속 태도에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한 조합원은 “홍보관을 화려하게 꾸미고 대접을 받으면 당장은 조합원들 기분이 좋지만 결국 그럴수록 우리 재개발 사업비에 반영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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