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①]
최상목 한국호의 구원투수로 [위기의 환율①]
환율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경제와 정치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환율은 현재 한국 사회의 복잡한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민감한 바로미터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에 근접했다. 원화 약세다. 경제는 물론 정치까지 환율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급등하는 환율은 단순히 수급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한국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과 정치적 리스크를 동시에 드러내는 신호다.

정치와 경제의 혼란 속에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중심에 섰다. 최 권한대행은 환율 안정과 자본 유출 방지라는 국내 과제 외에도 트럼프 행정부와의 협상에서 강력한 카운터펀치를 상대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까지 안고 있다. 그의 어깨에 진 무거운 짐, 환율의 향방이 한국 경제의 명암을 좌우할 전망이다.

최상목 한국호의 구원투수로 [위기의 환율①]
“경제 상황을 나타내는 환율을 보면 분명하다. 환율은 계엄선포로 요동쳤고 탄핵 부결, 윤석열 추가 담화, 한덕수의 헌재재판관 임명거부에 폭등했다. 경제 안정을 위해선 불확실성을 줄여야 하는데 내란세력 준동이 불확실성을 극대화하며 경제와 민생을 위협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2024년 12월 31일)

“환율 급등과 주가 폭락은 민주당의 자폭적인 탄핵안 발의가 초래한 결과다.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소추안이 발의되자마자 외환시장이 요동쳤다. 민주당의 무책임한 행동이 민생과 국가 안정을 위협하고 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2024년 12월 27일)


환율은 위기를 알려주는 핵심 지표다. 외환위기, 금융위기 등 위기 때 주목받는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에 근접하며 한국사회의 골칫거리로 떠올랐다. 이번 환율 변동은 과거와 다르다. 정치인들이 정치적 쟁점에 환율을 끌어들이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환율 급등이란 결과는 같지만 이를 해석하는 여당과 야당의 시각은 극명히 엇갈리고 있다. 야당은 대통령의 계엄선포와 국무위원의 동조가 환율상승의 원인이라고 지목하며, 여당은 야당의 연이은 탄핵이 환율상승의 원인이라고 방어에 나섰다.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사태 이후 본격화된 여야 갈등과 정치 리스크의 중심에서 환율은 현재 한국 경제의 복잡한 상황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지표가 되고 있다.

이 혼란의 중심에 선 인물은 최상목 경제부총리다. 지난해 12월 27일 국무총리 탄핵 가결 이후 대통령 직무대행 역할까지 맡은 그는 정치와 경제 모두에서 무거운 책임을 짊어지게 됐다.

정치적으로는 대통령 직무대행으로서 정치적 불확실성을 해소해야 하는 과제를, 경제부총리로서는 환율 안정, 외환시장 신뢰 회복, 자본유출 방지가 당면 과제다. 정치와 경제의 두 축에서 최상목 권한대행의 역할이 한국 경제의 1년을 결정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월 1일 경기 김포 해병대 2사단을 방문해 야상을 입고 있다. 군복을 입은 경제부총리의 모습이 그의 어깨에 진 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사진=대통령실사진기자단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월 1일 경기 김포 해병대 2사단을 방문해 야상을 입고 있다. 군복을 입은 경제부총리의 모습이 그의 어깨에 진 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사진=대통령실사진기자단
바로미터 환율대통령 탄핵안 가결 이후 주춤하던 환율이 다시 발작 증세를 보인 건, 지난해 12월 26일 정치적 긴장이 다시 고조된 상황부터다.

앞서 민주당은 이틀 전 의원총회를 통해 특검법 및 헌법재판관 임명동의안에 거부 의사를 시사한 한덕수 권한대행에 탄핵안 발의를 결정했으나 ‘12월 26일까지 헌법재판관 임명 여부를 밝히라’며 이날까지 탄핵안 발의를 보류했다.

그러나 한 권한대행이 이날 오후 본회의 직전 대국민 담화를 통해 “여야가 합의해 안을 제출할 때까지 헌법재판관 임명을 보류하겠다”고 밝히면서 1450원대 높은 수준에서 숨고르기 하던 원·달러 환율에 스파크가 튀었다.

개장 직후 빠르게 오른 환율은 오전 10시 20분쯤 1465원을 넘겼으며 한덕수 권한대행이 헌재 재판관 3명에 대한 임명 보류 입장을 밝힌 오후 담화 이후엔 1466원까지 치솟았다. 금융위기 당시였던 2009년 3월 이후 최고치를 넘어선 시점이었다. 시장에는 불안감이 감돌았다.

민주당은 즉시 탄핵안을 발의해 이를 본회의에 보고했다. 환율은 단숨에 1487원으로 급등하며 1500원대에 근접했다.

권한대행의 탄핵이 예정된 이튿날 환율은 거래 시작 15분 만에 1470원을 넘겼다. 이날 장중 고가는 1486.7원이었다. 정규장 마감 이후 한 권한대행의 탄핵이 가결된 오후 4시36분경 환율은 소폭 하락하는 듯했으나 정치 불안 지속에 재차 상승하며 1470.5원으로 마감했다.

12월 27일부터 한국의 운명을 짊어진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곧장 환율을 가리켰다. 그는 “계엄으로 촉발된 경제 변동성은 헌법재판관 임명 보류와 권한대행 탄핵소추 이후 급격히 확대됐다”며 “2024년 말 환율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역대 최고 수준인 1470원까지 상승했으며 주요 외신은 정치적 불확실성 지속, 대규모 자본유출과 신용등급 하락을 경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속도환율 급등 자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속도였다. 12월 3일 계엄 선포 직전 1402원이었던 환율은 하루 만에 1427원으로 급등했다. 12월 26일에는 단숨에 1487원을 기록하며 시장을 흔들었다. 단기 급등세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칠었고 외환시장 곳곳에 경고등이 켜졌다.

이는 기업과 개인 모두 준비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 속도로 경제 전반에 심각한 충격을 초래했다. 수출입 기업은 환차손과 환차익을 예상하기 어려웠고 금융시장은 불확실성 속에서 자본유출과 물가상승이라는 악순환에 직면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신년사에서 “원·달러 환율도 매우 높아져 원자재·부품을 수입하는 기업들의 어려움이 커졌다”며 “지금 우리는 정치적 혼란과 경제위기가 복합된 거대한 위기의 파고에 직면해 있다”고 경고했다.

환율 급등세의 극단적인 원인은 크게 두 가지였다. 미는 힘(원화 약세)과 당기는 힘(달러 강세) 모두 컸다.

대외적으로는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인하 속도조절이 주요 요인이었다. 12월 19일 Fed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2025년 말 기준금리(중간값) 수준을 연 3.4%에서 0.5%포인트 높인 3.9%로 예상했다. 매파로 돌아선 Fed의 결정은 곧 ‘글로벌 강달러’를 부추겼다.

대내적으로는 정치적 불안정성이 외환시장 불안을 가중했다. 계엄 선포와 연이은 탄핵 사태는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한국 시장을 불안정한 투자처로 각인시켰고 이는 원화 약세를 부채질했다. 최상목과 이창용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왼쪽)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사진=연합뉴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왼쪽)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사진=연합뉴스
혼란 속에서 최상목 권한대행은 정치적 안정을 우선적으로 시사하며 해결의 실마리를 제시했다. 그는 12월 31일 담화에서 “정치적 불확실성을 털고 2025년 새해에는 사고 수습과 민생 안정을 위해 여야정이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며 헌법재판관 임명을 단행했다. 여야가 각각 추천한 3명 중 2명을 임명하며 묘수와 악수 사이에서 줄타기를 했다. 시장은 이를 정치적 혼란 완화의 신호로 받아들이며 환율은 소폭 하락했다.

그러나 경제적 시험대는 이제부터다. 글로벌 IB 7개사는 비상계엄 사태 이후 환율 전망치를 대폭 상향 조정했다. 노무라는 환율이 2분기 말 1500원에 오른 뒤 3분기 말까지 그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웰스파고는 3분기 말 1460원 상단을 예상했다. 글로벌 IB 7개사의 올해 1분기 말 환율 전망치 중간값은 1435원, 3분기 말은 1445원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더 오를 것으로 봤다.

‘1500원대 뉴노멀 환율’ 논란이 심화하는 가운데 최 권한대행의 정치적, 경제적 성과도 환율로 집약될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물론 혼자 하는 일은 아니다. 시장 안정과 관련해서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중요한 파트너다. 최 권한대행이 계엄에 반대했다는 것을 처음 세상에 알린 것도, 최근 그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강경한 의견을 전달한 것도 이 총재였으며 경제 컨트롤타워의 사실상 넘버2도 이 총재다. 두 사람은 이번 정부 출범 때부터 경제정책을 이끌어왔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 장면이 지난 12월 30일 최상목 권한대행이 제주항공 참사로 무안공항으로 달려간 사이 이창용 총재가 주재한 거시경제금융현안간담회였다.

이날 김병환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김범석 기재부 1차관이 모인 자리에서 이 총재는 “관계기관이 긴밀히 공조해 시장 상황을 24시간 예의주시하며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금융·외환시장을 최대한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 간담회는 일명 F4 회의로 금융경제당국 수장 4명이 모여 현안을 의논하는 자리다. 하지만 최상목 부총리가 권한대행을 맡게 되면서 당분간 이 총재가 총대를 메고 경제팀을 이끌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이 총재는 “시장에서 한 방향으로의 쏠림 현상이 과도하게 나타나는 경우 추가 시장안정 조치를 적기에 실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무기도 갖고 있다. 한국은행이 갖고 있는 외환보유고다. 금리정책과 함께 한국은행이 갖고 있는 실탄으로 적절하게 시장에 개입, 최소한의 외환보유고를 축내며 시장을 안정시키는 것은 오롯이 이 총재의 몫이다. 최상목 vs 트럼프다시 바통은 최상목 권한대행에게 넘어온다. 그의 역할은 환율의 급등세를 억제하는 것을 넘어 이와 연계된 산적한 경제 문제를 해결하고 국가 신뢰를 회복하는 데까지 확장된다.

환율 변동의 여파는 외환시장에만 머물지 않는다. 자본유출, 물가상승, 기업 부담 증가 등 여러 경제적 도미노를 불러온다. 특히 한·미 간 금리 역전으로 인해 외국인 자본유출이 심화되면서 한국 경제는 자본시장 안정성과 외환시장 신뢰를 동시에 지켜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여기에 금리인상으로 인해 늘어난 가계 이자 부담과 환율상승으로 인한 생필품 및 에너지 가격 상승은 가계 경제를 이중으로 압박하고 있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대기업은 환율상승으로 수출 경쟁력이 강화된다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일정한 수준을 넘어가면 원자재 조달 비용 증가로 수익성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중소기업들은 환율상승이 조달 비용 급등으로 이어지며 경영난이 심화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미·중 무역갈등 이후 글로벌 공급망의 블록화로 인해 한국 기업들이 미국 본토에 공장을 세우면서 환율상승이 수출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는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 모든 경제적 과제와 더불어 최 권한대행이 직면한 외교적 도전도 만만치 않다. 오는 1월 20일엔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을 한다. 관세를 무기로 글로벌 시장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강화하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와의 협상에서 한국 경제의 입지를 지키는 일은 그의 가장 큰 시험대 중 하나다.

그가 유능한 경제부총리라는 점은 탄핵 정국 속에서 불행 중 다행으로 평가받지만 대적해야 할 상대들은 그리 만만치 않다. 트럼프 행정부 2기는 특히 금융과 실물경제 양쪽에서 강력한 리더들로 채워졌다.

재무장관에 지명된 스콧 베센트는 소로스펀드매니지먼트 CIO 출신으로 글로벌 금융 전략을 주도하는 등 헤지펀드계 거물이다. ‘보편적 관세’를 앞세워 미국 우선주의 경제를 이끌 것으로 예상된다.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에 지명된 폴 앳킨스는 전직 SEC 위원이자 규제완화론자로 암호화폐 시장 규제 완화와 기업 친화적 정책을 주도할 전망이다.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으로 임명된 케빈 해셋은 감세정책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보조금 재편을 추진하며 재정 적자 축소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그는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경제정책 설계에 기여한 ‘경력자’로 미국기업연구소(AEI) 수석연구원으로 활동했다.

변정규 미즈호은행 동아시아자금부 서울실 본부장은 “미국은 월가 출신들이 주축이 된 경제팀이 모든 정책을 실무적으로 짜고 있다”며 “우리도 관치금융에서 벗어나 실무 중심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가늠자 환율이미 세계는 한국 경제의 내리막을 예고하고 있다.

국내외 주요 기관들이 한국 경제성장률을 하향 조정했고 지난해 12월 24일엔 글로벌 신용평가사 피치가 정책 결정의 효율성, 경제 성과, 재정건전성이 약화될 경우 신용등급 하락을 경고했다. 최상목 권한대행은 “대외신인도를 최우선으로 관리하는 한편 금융·외환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되지 않도록 관계부처·기관 간 협업도 강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환율은 단순한 경제지표가 아닌 한국 경제의 현재와 미래를 보여주는 나침반이다. 최상목 권한대행의 리더십은 환율 급등세를 억제하는 것을 넘어 경제 신뢰 회복과 대외 관계 안정화까지 시험받고 있다. 그의 대응이 성공한다면 한국 경제는 회복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패한다면 환율 1500원대가 뉴노멀이 되는 악순환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다.

학계에선 최 권한대행이 한·미 통화스와프 재개 등 대외 협력 방안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통화스와프란 두 나라가 서로의 돈(통화)을 미리 약속한 만큼 교환하고 나중에 다시 돌려주는 거래다. 한·미 간 통화스와프는 2021년 종료됐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정치적 안정, 외환보유고 확보, 한·미 통화스와프 재개는 필수 과제”라고 지적했다.

변정규 본부장은 “미국과의 통화스와프는 이전에 두 번 체결한 과거가 있었는데 두 번 다 환율이 빠르게 안정되는 결과를 가져왔다”며 “마지막 남은 카드인 한·미 간 통화스와프를 양자간 채널을 이용해 고려해 보면 어떨까 하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최상목 권한대행의 선택과 대응이 한국 경제의 방향을 결정할 중요한 시험대에 올랐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