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사진=뉴스1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사진=뉴스1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이 지난 23일 최대주주 영풍의 의결권을 기습적으로 배제한 고려아연의 임시주주총회에 대해 "대한민국의 국격을 추락시켰다"고 비판했다.

포럼은 31일 논평을 내고 "자본시장은 신뢰를 바탕으로 발전하고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이 필수 조건"이라며 "이를 무시하고 파행적으로 진행된 고려아연 임시주총은 그동안 정부, 국회 및 전 국민이 간절히 바랐던 '한국 증시의 선진시장 진입' 희망을 무참히 짓밟았다"고 지적했다.

앞서 고려아연 임시주총이 열리기 하루 전날인 22일 밤 고려아연의 100% 손자회사 선메탈코퍼레이션(SMC)은 돌연 영풍 지분 10.33%를 최씨 일가와 영풍정밀로부터 취득했다고 공시했다. 이에 따라 '고려아연→선메탈홀딩스(SMH)→선메탈코퍼레이션(SMC)→영풍→고려아연’이라는 새로운 순환출자 고리를 형성해 영풍이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 25.42%의 의결권 행사를 제한했다.
상법(제369조 제3항)은 두 회사가 서로의 지분을 10% 넘게 보유한 경우 상대방 기업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다. 영풍의 의결권 행사가 막히자 이번 주총은 최 회장 측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다.

의결권 지분을 과반 가까이 확보한 영풍과 MBK파트너스 측이 이사 14명을 선임시켜 이사회를 장악할 것이 확실시되자 신규 상호출자를 형성해 이들의 공격을 방어한 것이다.

포럼은 "이번 사태는 투자자 보호를 위해 조속한 상법 개정이 필요함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며 "주총이라는 주주권리의 핵심 제도가 무력화됐다"고 했다.
포럼은 "주주들의 의결권을 강탈해 주식회사의 존립을 허무는 행위, 특정 주주의 사익을 위해 회사의 자산과 회사의 법률행위 능력이라는 법인격을 동원한 것 자체, 그리고 주주들의 가처분 신청권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주총 전날로 지분 거래 타이밍을 잡은 것 모두 주주 이익을 심각하게 침해한다"고 꼬집었다.
박기덕 고려아연 사장이 1월 23일 오후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에서 열린 고려아연 임시 주주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고려아연
박기덕 고려아연 사장이 1월 23일 오후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에서 열린 고려아연 임시 주주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고려아연
아울러 포럼은 고려아연이 공정거래법상 상호출자 금지규정 적용을 회피하고자 100% 손자회사인 호주 SMC 명의로 영풍 주식 10%를 전격 취득한 것으로 판단되며, 이러한 고려아연 경영진의 지분 거래는 공정거래법을 반하는 행위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최근 LG, 두산, 현대차가 모회사 주주 이익을 침해하는 해외법인 현지 상장을 강행하는 것처럼 대기업을 중심으로 수많은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이 외국 자회사를 악용한 상호출자를 통해 패밀리의 지배력을 부당하게 확대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당국은 이번 사태를 꼼꼼히 조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포럼은 이번 고려아연 임시주총이 법률구제 수단의 한계를 노출시켰다고도 지적했다. 병원 응급실처럼 주총 직전 이벤트가 발생할 경우 상대방 심문없이도 바로 가처분을 내려줄 수 있는 응급 가처분제도, 주총 직후라도 하루이틀 만에 이를 바로 잡을 수 있는 신속 가처분제도의 필요성이 대두된다고 했다.

이번 고려아연 임시주총에서는 사내이사인 박기덕 대표이사 사장이 임시주총 의장을 맡았다. 포럼은 고려아연 임시주총 운영 절차에 대한 문제점도 짚었다.
포럼은 "최 회장 주장대로 이사회 독립성을 강화하고 소액주주 보호하는 주주친화정책을 적극 시행한다면 글로벌 스탠더드에 따라 주총 의장은 대표이사나 회장이 아닌, 독립이사인 이사회 의장이 맡아야 한다"고 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