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엔비디아를 필두로 한 글로벌 팹리스들의 약진 속에서 그동안 존재감이 미미했던 국내 팹리스 기업들도 새로운 기회를 포착하고 있다.
특히 AI 시대에는 팹리스의 장점이 더욱 부각된다. 시장이 요구하는 것은 더 이상 ‘무조건 고성능’이 아닌 ‘최적의 성능과 효율’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글로벌 팹리스 기업 엔비디아는 시가총액 3조 달러를 웃돌며 AI 반도체 시장 선두 자리를 지키고 있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시장의 강자 퀄컴, 통신칩 분야의 선두주자 브로드컴 등도 AI 반도체 시장에 뛰어들며 경쟁이 가열되는 모양새다.
특히 브로드컴은 최근 구글, 메타 등과 AI 반도체 개발 협력을 선언하며 새로운 강자로 부상 중이다. 브로드컴은 특정 작업에 최적화된 주문형 반도체(ASIC) 기술력을 바탕으로 2027년까지 100만개 이상의 AI 칩을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데이터센터에 공급할 계획이다.
반면 국내 팹리스 산업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글로벌 팹리스 시장에서 한국 기업들의 점유율은 1%에 불과했다. 미국(68%), 대만(21%), 중국(9%)과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대기업 중심의 메모리 반도체에 편중된 산업 구조가 발목을 잡았다는 평가다.

반도체 업계는 이를 계기로 고가 그래픽처리장치(GPU)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지고 다양한 AI 반도체가 시장에 진입할 기회가 열릴 것으로 전망한다.
국내 팹리스들의 새로운 도약도 시작됐다. 대표적으로 파두는 메타, SK하이닉스, 웨스턴디지털 등 세계 유수 반도체 기업들을 고객사로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고성능·저전력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컨트롤러를 내세워 글로벌 데이터센터향 매출을 확대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고객사인 웨스턴디지털의 SSD 제품이 엔비디아 서버 솔루션 인증을 획득하며 글로벌 AI 생태계 진입에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리벨리온은 이스라엘, 미국, 사우디아라비아 등에서 양산 매출을 올리며 시장성을 입증했다. 현재 삼성전자와 함께 LLM 추론용 AI 반도체 ‘리’의 양산을 준비 중이다.
AI 반도체 스타트업 딥엑스는 1세대 NPU 제품인 ‘DX-M1’을 통해 물리 보안 시스템, 로봇, 산업용 솔루션 등 다양한 응용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미국 전자산업 전문지 EE타임스가 선정한 ‘2024 올해의 제품상’을 수상하며 기술력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
정부도 반도체 산업의 패러다임 변화에 발맞춘 팹리스 육성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올해 ‘AI 핵심 분야 및 유망 AI전환(AX) 스타트업 육성 사업’을 통해 팹리스 기업 30개사를 선발해 지원할 계획이다. 선정된 기업은 기술사업화 자금과 함께 AI 컴퓨팅 인프라 등을 지원받게 된다.
특히 LG전자, 퀄컴코리아 등 대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온디바이스 AI, 버티컬 AI 등 특화 분야 발굴도 추진할 방침이다.
한국팹리스산업협회에 따르면 현재 국내 팹리스 기업은 약 100여곳에 달한다.
업계관계자는 “시장 변화의 물결을 타고 세계 시장 변방에 머물던 한국의 팹리스 산업이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정유진 기자 jinj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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