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지역 차단’ 우회와 전송권 침해[지식재산권 산책]](https://img.hankyung.com/photo/202503/AD.39852283.1.jpg)
이를 ‘지역 차단(Geo-blocking)’이라고 한다. 그런데 VPN(Virtual Private Network·가상사설망) 서비스 등을 이용한다면 이와 같은 ‘지역 차단’을 무력화해 해당 저작물에 접근하는 것이 가능하다.
우선 이와 같은 저작물 접근행위는 적법할까? 저작권법은 누구든지 정당한 권한 없이 고의 또는 과실로 ‘기술적 보호조치’를 제거·변경하거나 우회하는 등의 방법으로 무력화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그리고 ‘기술적 보호조치’란 저작물 등에 대한 접근을 효과적으로 방지하거나 억제하기 위해 그 권리자나 권리자의 동의를 받은 자가 적용하는 기술적 조치 등을 의미한다. 따라서 저작권자가 특정 저작물에 ‘지역 차단’을 설정했는데 이를 우회해 해당 저작물에 접근하는 경우에는 이용자도 저작권법 위반으로 의율될 가능성이 있다.
한편 특정 저작물에 ‘지역 제한’을 설정했는데 해당 제한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 중 일부가 VPN 등을 통해 해당 저작물에 접근할 수 있는 경우, 이 경우에도 저작권자의 전송권이 침해됐다고 볼 수 있을까?
저작권법상 ‘전송’은 저작물을 공중에 이용 제공하는 것을 의미하고 ‘공중’은 불특정 다수인(특정 다수인을 포함)을 의미하는데 해당 지역 거주자 일부가 VPN을 통해 ‘지역 차단’을 우회할 수 있는 경우에도 ‘공중에 이용 제공됐다’라고 평가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이 문제는 네덜란드에서 ‘안네의 일기’ 저작물에 대한 ‘지역 차단’과 관련된 저작권 침해 소송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제기됐다. ‘안네의 일기’는 네덜란드에서는 2036년까지 저작권이 보호되는데 이에 ‘안네의 일기’를 인터넷으로 제공하는 웹사이트 운영자는 네덜란드에서는 ‘안네의 일기’가 웹사이트를 통해 접근될 수 없도록 ‘지역 차단’ 조처를 했다.
그런데 네덜란드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VPN을 통해 ‘안네의 일기’에 접근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저작권자가 해당 웹사이트 운영자를 상대로 공중 전달권(우리 저작권법상 ‘전송권’)이 침해됐다고 주장하면서 소를 제기했다.
이 사건에서 저작권자는 ‘지역 차단’이 되어 있더라도 VPN 등을 통해 불특정 다수의 잠재적인 사람들이 저작물에 접근할 수 있다면 이는 ‘공중 전달’이므로 공중 전달권 침해라고 주장했다. 또 ‘공중에 전달’한 것인지 여부는 웹사이트 운영자의 주관적인 의지나 ‘지역 차단’ 조치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해당 저작물에 접근할 수 있는 공중의 범위 등을 감안하여 객관적으로 결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네덜란드 대법원은 2024년 유럽연합(EU) 사법재판소에 EU 저작권 지침상 ‘공중 전달’ 조항 해석에 관한 질의를 했다. 해당 질의는 VPN 등을 사용해야만 ‘지역 차단’을 우회해 해당 저작물이 게시된 웹사이트에 접근이 가능한 경우에도 해당 지역의 공중에 대한 전달이 있었다고 볼 수 있는가, 이는 VPN 서비스 제공자의 개입이 필요한 것인데 그런데도 ‘공중 전달’을 한 자는 웹사이트 운영자라고 봐야 하는가 등의 내용으로 구성했다. EU 사법재판소가 위 질문에 답하면 네덜란드 대법원은 그 답변을 기준으로 판결해야 한다.
‘지역 차단’을 우회할 수단이 있다는 이유로 해당 지역에서 공중 전달 행위가 있었다고 본다면 ‘지역 차단’을 설정한 웹사이트 운영자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가 문제 된다. ‘지역 차단’의 우회에는 VPN 서비스 제공자도 관여되어 있는데 VPN 서비스 제공자는 어떤 책임을 지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또한 ‘지역 차단’을 설정했음에도 저작권 침해 책임을 면할 수 없다면 사실상 인터넷에서의 저작물 공개가 허용되지 않는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다. 이는 네덜란드 대법원도 우려한 부분이다. 향후 EU 사법재판소의 판단이 주목된다.
김우균 법무법인(유) 세종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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