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이 많든 적든 상대에게서 내가 원하는 걸 잘 얻어내는,
혹은 상대가 필요로 하는 걸 줄 수 있는 사람이 좋은 협상가다”
![협상이 ‘무서운’ 당신에게…현명한 협상 비법은 [김한솔의 경영전략]](https://img.hankyung.com/photo/202503/AD.39860590.1.jpg)
드라마 속 윤주노 팀장(이제훈 분)이 감정적으로 흥분해 미팅 상황에서 실수를 한 팀원에게 “협상에 감정 섞지 마세요. M&A는 총칼 없는 전쟁입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을 보면 정말 협상은 무서운 싸움 같기도 하다. 무섭지만 비즈니스를 위해선 피할 수 없는 협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드라마 속 장면에서 힌트를 얻어 보자.
◆협상의 ‘상호성’
퇴근 후 저녁 시간 가전제품 매장에 들른 윤주노 팀장은 노련한 협상가답게 ‘제값’에 물건을 사지 않는다. 세탁기와 식기세척기의 판매가가 126만원이라는 걸 듣고는 값을 100만원으로 깎으려는 것도 모자라 전자레인지까지 필요하다고 말한다. 판매 사원이 “맞춰줄 수 없다”고 하자 “근처에 다른 매장이 있냐”고 물으며 나가려고 한다. 손님을 놓칠까 다급해하는 상대에게 ‘지금 내가 원하는 조건을 맞춰주지 않으면 절대 여기 다시 올 수 없다’는 말로 한 방 더 날린다. 결국 윤주노 팀장은 ‘매장 오픈하고 처음’인 가격으로 원하는 3가지 제품을 다 살 수 있었다.
협상가는 본인이 원하는 것만을 얻어내는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되는가. 표면적으로 보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엄밀히 따지면 그의 행동엔 법적으로나 도의적으로나 어떤 문제도 없다. 오히려 협상의 결과가 모두에게 ‘좋은’ 일이 됐다. 그가 물건값을 지불하고 나간 뒤 매장 직원 두 명이 ‘하이파이브’를 하며 기뻐하기 때문이다. ‘전에 없는 가격’으로 물건을 팔고도 이들은 왜 기뻐하는 걸까.
이 질문에 답을 하려면 협상의 속성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협상엔 주도권을 가진 ‘갑’과 그보다 힘이 부족한 ‘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많은 ‘을’의 입에서 협상하기 힘들다는 하소연이 많이 나온다. 여기서 중요한 건 ‘힘’이 있고 없고가 아니다. ‘상대방’이 있다는 게 핵심이다. 다시 말해 아무리 힘이 센 ‘갑’이라도 ‘을’을 ‘만나고 있다’는 건 ‘갑’이 원하는 걸 ‘을’이 갖고 있다는 뜻이다. 그게 협상이다. 힘이 많든 적든 상대에게서 내가 원하는 걸 잘 얻어내는, 혹은 상대가 필요로 하는 걸 줄 수 있는 사람이 좋은 협상가다. 상호관계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협상의 ‘상호성’을 이해하고 나서 앞의 장면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구매자인 윤주노 팀장은 마감 시점에 임박해 매장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들이 ‘90만원만 실적을 더 올리면’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얘기를 들었다. 결국 윤주노는 상대방이 필요로 하는 것, 다시 말해 ‘마감 실적’을 채워줄 수 있는 카드를 갖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좋은 협상가는 이를 ‘잘’ 활용해 모두가 만족하는 결과를 만들어낸다. 구매자는 필요한 물건을 싸게 사고 판매자에게도 이득이 되게끔 이끄는 것이 바로 협상의 상호성이다.
협상에 대한 인식이 조금은 달라졌는가. 상대에게 무엇을 줬든 ‘값’을 후려친 걸 생각하면 여전히 무섭게 느껴지는가. 앞 장면에서 하나 설명을 빠트린 게 있다. ‘원하는 가격이 너무 낮다’고 하는 판매 사원에게 윤주노가 “그렇죠, 그 정도면 거의 직원 할인가 수준일 테니까요”라고 말한다. 무슨 말일까. 상대를 곤란하게 하며 불가능한 걸 요구한 게 아니라는 의미다. 내가 원하는 것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상대가 자신의 ‘영향력’ 범위 안에서 해줄 수 있는 걸 얻어내는 건 무섭다기보다 현명하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좋은 협상을 위해선 상대가 필요로 하는 것과 함께 그가 갖고 있는 게 무엇인지 알고 있어야 한다.
◆좋은 협상가에게 필요한 것
협상에 대한 인식이 조금이라도 바뀌었다면 한 단계 발전된 고민을 해보자. 무섭지 않고 현명한 협상을 하려면 뭐가 또 필요할까. 이것 역시 드라마 장면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8조5299억원 규모의 건설사 매각이 마무리될 즈음 인수 기업이 “다 받으실 건 아니죠”라며 조금이라도 비용을 낮춰 달라고 요청한다. 윤주노 팀장은 299억원은 받지 않을 테니 대신 ‘묘지 이장’을 해달라고 말한다. 인수 기업의 향후 성공적 운영에 큰 영향을 미칠 재건축 사업 시행의 마지막 퍼즐이었던 ‘할머니’를 위한 지원 사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돈을 깎기는커녕 생각지 못한 데 299억원을 써야 하는 상황인데 이 제안을 인수 기업의 대표가 받아들였다. 그 이유가 뭘까. 8조원 이상 규모의 계약에 300억원 정도는 0.5%도 채 안 되는 작은 돈이라서?
여기에 현명한 협상을 위한 키워드가 있다. 바로 ‘상대가 얻게 되는 것’을 설명하기다. 일반적인 협상가는 이 딜이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하며 ‘내 것’을 지키느라 열을 올린다. 주는 건 최소한으로 하고 가능한 한 많이 얻으려 애쓴다. 그러다 보니 서로 ‘지키는 싸움’만 이어진다. 하지만 좋은 협상가는 상대가 지불한 것보다 더 많은 걸 얻게 해준다.
M&A를 ‘회사 사고파는 것’으로만 생각했다면 ‘할아버지 묘 이장 비용’은 매각하는 기업이 ‘빠르게 처리’해 버릴 수도 있었다. 앞서 쓴 것처럼 8조원이 넘는 큰 규모 계약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해서라면 그 정도의 돈은 충분히 쓸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좋은 협상가’인 윤주노 팀장은 오히려 299억원을 상대가 ‘내도록’ 했다. 대신 그 대가로 상대에게 ‘기업 이미지’를 만들었다.
M&A를 통해 기존에 하지 않았던 새로운 비즈니스를 해야 하는 상대에겐 대중에 각인될 첫 이미지가 무엇보다 중요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에 재건축을 통한 수익, 즉 ‘돈만’ 밝히는 기업이 아닌 ‘사람을 위한 주거 공간을 만드는 회사’로 자리매김하도록 해준 것이다. 그것도 단돈 299억원으로.
협상, 특히 비즈니스 협상에서 돈은 중요하다. 어쩌면 그게 ‘전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동일한 금액의 돈이라도 그게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 그 가치는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다. 상대가 나에게 지불하는 돈의 값어치를 높여주는 것, 그게 진짜 좋은 협상이다.
이제 협상이 조금은 다르게 느껴지는가. 원하는 게 다른 사람들이 만나 안건을 주고받아야 하는 협상이 물론 마냥 아름답진 않다. 상대가 어떤 요구를 할지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갖고 있는 게 상대에게 ‘필요한 것’이라는 걸 믿는다면 너무 무서워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상대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내가 가지고 있을 때보다 상대 손에 있을 때 훨씬 더 큰 가치를 발휘할 수 있음을 생각하자. 협상을 제안했다는 건 상대는 내가 가진 게 필요해서일 테니까.
김한솔 HSG휴먼솔루션그룹 조직갈등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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