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싱가포르계 행동주의 펀드 플래시라이트캐피털파트너스(FCP)는 3월 26일 열리는 KT&G 정기주주총회를 앞두고 이 같은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KT&G는 이번 주총에서 대표이사 사장 선임 시 집중투표제를 배제하는 내용의 정관변경 추진을 예고한 바 있다. 그러자 FCP는 이를 “방경만 사장의 황제 연임을 위한 명백한 꼼수”라고 지적하며 “주총에서 해당 안건을 통과시켜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상현 FCP 대표는 “KT&G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선 투명성과 주주가치 제고가 필수적”이라며 “집중투표제 정관변경은 그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주총 시즌을 앞두고 행동주의 펀드들의 공세가 거세지는 가운데 KT&G와 FCP의 갈등도 재점화하고 있다.
지난 2022년 KT&G 주식을 약 0.5%(현재 지분율 약 0.4%)를 매수한 FCP는 이후 매년 주총 때마다 경영권 개입을 시도하며 KT&G와 날 선 대립각을 세워왔다.
기업지배구조 개선이나 배당 확대 등 주주친화적인 안건들을 제시하며 일부 주주의 지지를 얻기도 했다.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FCP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이다.
지나치게 KT&G 경영에 개입해 회사의 성장동력을 저해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으며 매년 사실관계와 무관한 내용들과 자극적인 키워드 등을 활용해 주가를 띄운 뒤 이를 되파는 단기 차익실현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대다수 소액주주들도 FCP에 등을 돌렸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호실적에도 계속되는 발목잡기FCP는 올해 초부터 여러 메시지를 던지며 KT&G를 흔들어왔다. FCP는 올 1월 KT&G를 상대로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했다. KT&G 전직 이사회가 17년간 산하 재단, 사내복지근로기금 등에 자사주 1085만 주를 무상 또는 저가로 기부해 회사에 1조원에 이르는 손해를 끼쳤다고 이들은 주장했다.
3월 5일에는 방경만 대표이사 사장의 취임 1주년 성과에 대한 리포트를 발행하며 낙제점을 주기도 했다. 주가와 재무·주식시장 이해도, 독립적 경영마인드, 사업 비전 제시, 투명성 등 5가지 항목에서 방 사장의 경영능력 점수로 F를 매기는 등 끊임없이 KT&G에 대한 잡음을 만들어왔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방 사장 취임 첫해인 지난해 KT&G 연결기준 매출은 전년 대비 0.8% 증가한 5조9095억원으로 역대 최대 기록을 경신했다. 영업이익은 1.5% 늘어난 1조1848억원으로 4년 만에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동반성장했다. 실적 향상에 힘입어 KT&G의 총주주수익률은 29.2%에 달했고 지난해 주가는 최고가인 12만6400원을 기록했다.
그럼에도 FCP의 공격은 이어지고 있다. 3월 26일에는 예년과 마찬가지로 주총장에 모습을 드러내며 목소리를 낸다. 이번에 FCP가 문제를 삼은 것은 KT&G 대표이사 사장 선임에 대한 정관변경 안건이다.
KT&G는 사장·이사 선임 방식 관련 정관에 ‘집중투표의 방법에 의해 이사를 선임하는 경우 대표이사 사장과 그 외의 이사를 별개의 조로 구분한다’라는 조항을 신설하고자 한다. 대표이사 선임에 대해 전체 주주의 찬반 의견을 정확하게 묻고 이를 표결에 공정하게 반영하고자 하는 취지에서다.
KT&G에 따르면 복수 후보에게 복수 표를 행사하는 통합집중투표를 통해 대표이사를 선임할 경우 득표순으로 선임된다. 50% 이상의 찬성을 얻지 못한 사장이 선임될 경우가 발생할 수 있는데 사장 후보에 대한 전체 주주의 찬반 의사를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고, 향후 경영안정성을 저해하는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KT&G는 “국내외 유력 기관투자가와 주요 주주들은 통합집중투표를 통해 대표이사를 선임했던 지난해 주총에 대해 여러 경로로 우려를 전달해왔다”며 “이에 1주 1의결권 원칙에 따라 전체 주주의 찬반 여부를 정확히 반영하고자 정관 개정을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KT&G의 주요 대주주인 국민연금과 기업은행에 대해서도 “대주주이자 국가기관인 두 기관이 이번 안건에 명확한 근거를 밝히지 않고 투표한다면 대한민국의 기업 거버넌스에 미래는 없을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했다.
이에 대해 KT&G 관계자는 “분리 투표를 반대하는 것은 FCP만의 주장일 뿐 대다수의 주주가 경영안정화를 요구했다”고 반박했다.
소액주주들도 등 돌려투자업계의 시각도 비슷하다. 대다수의 소액주주들도 KT&G의 편에 섰으며 FCP 측의 주장이 주총에서 관철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그동안에도 FCP는 지난 2022년 KT&G의 주식을 매수한 이후 매년 주총에서 표대결을 유도했다. 그러나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예컨대 2023년 주총에서는 주당 1만원 배당안, 자사주 소각 정관변경안, 이사회 후보 추천, KGC인삼공사 분리 상장 등 모든 안건이 부결되며 완패했다.
특히 투자업계에서는 FCP가 올해 단 한 건의 주주제안도 제출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이는 곧 소액주주들이 이들에게 등을 돌렸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라는 설명이다.
상법상 자본금 1000억원 이상 되는 상장회사는 6개월 이상 보유 지분이 0.5% 이상이면 주주제안을 할 수 있다. FCP는 당초 0.5%가량의 KT&G 지분을 보유해왔다. 그러나 작년 주총에서 다양한 안건들을 제안하며 KT&G 주가가 오르자 일부 지분을 팔며 차익실현에 나선 바 있다.
이에 따라 현재 보유 지분은 약 0.4%로 추정된다. FCP가 소액 주주들을 포섭해 0.5%의 지분을 확보하면 주주제안을 건넬 수 있었으나 그렇지 못했다는 점에서 소액주주들도 등을 돌렸음을 알 수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FCP는 그간 기업의 장기 성장보다는 단기적인 주가 부양을 목표로 한 움직임이 강했다”며 “수많은 잡음을 만들어 KT&G 주가가 오르면 이를 팔아 수익을 남기면서 소액주주들이 떠나간 것”이라고 진단했다.
FCP가 자신들의 목소리가 주총에서 반영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황제 연임 반대’라는 메시지를 던진 이유도 명확해 보인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주주가치 제고 명목으로 주가를 최대한 끌어올린 뒤 KT&G 주식을 매도해 차익을 실현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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