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식의 와인 랩소디 <41>
사진은 지난해 6월 진행된 이태리 토스카나 '마라미에로, 단테 몬테풀치아노 다브루쪼(수입사 와이넬)' 버티컬 테이스팅 장면. 이날 행사에는 1998, 2003,2008, 2013 등 모두 4개 빈티지가 선보였다.
사진은 지난해 6월 진행된 이태리 토스카나 '마라미에로, 단테 몬테풀치아노 다브루쪼(수입사 와이넬)' 버티컬 테이스팅 장면. 이날 행사에는 1998, 2003,2008, 2013 등 모두 4개 빈티지가 선보였다.
변화와 혁신의 아이콘 ‘무통 로칠드’는 프랑스 보르도 5대 샤토 와인 중 하나다. 이우환 화백의 ‘점을 형상화한 자주색 오크통’ 그림이 2013 빈티지 라벨 작품으로 선정되면서 이 와인의 국내 인지도는 더욱 높아졌다.

최근 서울 소재 한 수입사가 진행한 할인 행사에서 샤토 무통 로칠드 2021 빈티지 가격이 병당 110만원에 나왔다. 그러나 자연조건이 좋았던 2019 빈티지 가격은 병당 190만원으로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빈티지’는 포도를 수확한 당해 연도를 기준으로 정하는데 이처럼 가격 차이가 크게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답은 각 연도에 따라 주원료인 포도의 품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작황 좋은 해에 생산된 와인 맛이 더 좋으니 찾는 사람들이 많고 자연스럽게 가격이 상승한다.
농산물이 다 그렇듯 포도 역시 일조량과 강수량, 냉해 피해 여부 등 자연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당해의 기후에 따라 당도와 산도, 타닌감이 드라마틱하게 달라지기도 한다. 장기 보관이 가능한 고급 와인일수록 더 심하게 나타난다.

그래서 세계 와인 시장에서는 평론가 혹은 평가기관에서 각 지역별·연도별 작황이나 기후 상태 등을 반영한 ‘빈티지 차트’를 매년 발표하고 있다. 이는 생산자들의 가격 결정이나 소비자들의 와인 구매 기준을 돕기 위해서다.

실제 보르도 지역을 살펴보면 2020, 2019, 2018, 2016, 2015, 2010년을 최고 빈티지로 꼽고 있다. 반면 2017, 2013, 2012, 2011년은 망한 빈티지란 뜻의 ‘망빈’으로 알려져 있다.
와인 맛은 좋은 빈티지와 함께 적당히 숙성되었을 때가 가장 좋다. 와인은 일단 병에 담긴 후 시간이 지나면서 맛과 향이 서서히 변한다. 이는 무기물질 성분과 효모·알코올은 물론 신맛, 단맛, 떫은맛 등이 뒤섞여 미묘한 변화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 이르러 제 맛을 한껏 뽐내고 나서는 서서히 퇴화하는 사이클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해마다 맛과 향이 제각각인 동일 등급 와인의 빈티지 평가는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버티컬 테이스팅’을 통해 가능하다. 버티컬 테이스팅이란 동일한 샤토(도메인 또는 와이너리)에서 생산된 같은 등급의 와인을 포도 수확연도별로 각각 시음하는 것을 말한다.

이 방식을 통해 숙성 과정은 물론 각 와인에 새겨진 시간(빈티지)과 자연환경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프랑스 등 구세계 와인처럼 기상 조건이 불안정한 지역 와인에서는 좀 더 심각한 빈티지별 변화를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의견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미국이나 호주, 칠레 등 신세계 와인의 경우 포도 생산 조건이 비교적 일정하다는 것. 워낙 기후가 좋고 고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빈티지 영향을 덜 받는 만큼 품질이나 가격 차이도 거의 없는 편이다.
한편 버티컬 외에도 와인 테이스팅은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진행할 수 있다. 특히 동일한 포도 품종, 동일한 빈티지 와인에 대해서도 세계 각국 생산지역별 특징을 비교해 볼 수 있다. 주로 와인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데 이 방식을 호라이즌탈 테이스팅이라고 한다.

인간의 오감을 느끼는 데 어디 전문가가 따로 있으랴. 아무리 초보자라도 관심을 갖고 테이스팅을 진행하다 보면 1~2년 전 갓 출시된 어린 빈티지 와인과 세월의 흔적이 담긴 오래된 빈티지 와인의 차이를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약간의 호기심과 조금만 성의를 보인다면 와인 맛의 차이점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와인이 주는 기쁨 중 하나인 ‘새로운 발견’에 도전해 보시길 권한다.

김동식 와인칼럼니스트
juju4333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