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회 구도 11 대 4 재편
의결권 제한에도 영풍·MBK 측 3명 진입
영풍·MBK 소송 예고 등 분쟁 장기화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사진=연합뉴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사진=연합뉴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이 28일 정기 주주총회 표 대결에서 영풍·MBK파트너스 연합의 이사회 장악 시도를 막아냈다.

고려아연은 이날 서울 용산구 몬드리안 호텔에서 제51기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이사 수 상한 설정 관련 정관 변경안 등 7개 안건을 처리했다.

이날 주총 표결은 고려아연 지분 25.42%를 보유한 영풍의 의결권이 제한된 가운데 진행됐다.
이날 오전 주총 개회 직전 고려아연의 호주 자회사인 선메탈코퍼레이션(SMC)이 장외매수를 통해 영풍의 보통주 1350주를 케이젯정밀(옛 영풍정밀)로부터 취득해 지분율을 10.03%로 끌어올렸다. 전날(27일) 영풍이 주식 배당을 통해 선메탈홀딩스(SMH)의 영풍 지분율을 10% 밑으로 떨어뜨려 상호주 관계를 끊었다고 주장하자 재반격에 나서 상호주 관계를 다시 복원한 것이다.
3월 28일 서울 용산구 몬드리안 호텔에서 고려아연 정기 주주총회가 열린 모습. 사진=고려아연
3월 28일 서울 용산구 몬드리안 호텔에서 고려아연 정기 주주총회가 열린 모습. 사진=고려아연
영풍 의결권 25% 또 봉쇄…영풍·MBK "정기주총 결과에 즉시항고·효력정지가처분"

영풍 측 법률대리인은 "SMH로부터 어떠한 통보나 관련 증빙 서류도 받지 못했다"며 "주식을 언제, 어떤 경위로 취득했는지 명확히 밝혀 달라. 영풍 측은 SMH의 영풍 주식 취득 소식을 통보받지 못했기 때문에 상호주 적용에 따른 의결권 제한은 부당하다"고 항의했다.

고려아연 측 법률대리인인 고창현 변호사는 "오전 8시 54분에 잔고 증명서를 발급했고, 영풍 측에 관련 내용을 전달했다. 관련 거래 내역서, 잔고 증명서를 주총 검사인에게 제출하겠다"고 말했다.
고려아연 지분은 영풍·MBK 연합이 40.97%, 최 회장 측이 우호 지분을 합해 34.35%로 영풍·MBK 연합이 높다. 하지만 이날 영풍의 의결권이 제한되면서 영풍·MBK 측 지분이 기존 25.4%에서 15.55%로 축소돼 최 회장 측에 유리한 구도 속에 표 대결이 진행됐다.

이사 수를 최대 19인으로 상한 설정하는 안건은 출석 주식 수 대비 70% 이상의 지지를 받으며 통과됐다.

집중투표제로 표이 진행된 이사 선임 표 대결에서는 최 회장 측 추천 후보 5명과 영풍·MBK 측 추천 후보 3명 등 총 8명이 이사로 선임됐다.

최 회장 측 후보로는 이달 이사 임기가 만료되는 박기덕 고려아연 사장, 권순범 법무법인 솔 대표변호사, 김보영 한양대 교수 등 3명이 재선임됐고, 제임스 앤드루 머피 올리버 와이먼 선임 고문, 정다미 명지대 경영대학장 등 2명이 신규 선임됐다.
영풍·MBK 측 이사 후보로는 강성두 영풍 사장,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 권광석 우리금융캐피탈 고문 등 3명이 신규 선임됐다.

이에 따라 현재 이사회 멤버인 장형진 영풍 고문과 함께 총 4명의 영풍·MBK 측 이사가 이사회에서 활동하며 경영에 관여할 수 있게 됐다.
이로써 주총 직전까지 최 회장 측 5명, 영풍·MBK 측 1명으로 '5대 1'이던 고려아연 이사회 구조는 '11대 4'로 재편됐다.

영풍·MBK 측은 이날 영풍에 대한 의결권 제한이 위법하다며 법적 조치에 나설 것임을 시사하고, 지속적으로 신규 이사를 이사회에 진입시켜 이사회 장악을 시도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영풍·MBK 측은 순환출자를 활용한 고려아연 측의 공세를 예방하기 위해 지난 8일 영풍이 보유한 고려아연 주식 526만2450주(지분 25.4%)를 신규 유한회사인 와이피씨에 현물 출자해 추후 주총에서 영풍의 의결권 제한은 어려울 전망이다.
강성두 영풍 사장과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 사진=최혁 한국경제신문 기자
강성두 영풍 사장과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 사진=최혁 한국경제신문 기자
영풍·MBK 이사회 입성했지만…'홈플러스 사태' 비판 여론 부담

다만 이날 이사 수 상한이 19명으로 설정되고, 이사 선출 시에는 집중투표제가 적용되기 때문에 영풍·MBK의 고려아연 경영권 인수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날 주총장에는 고려아연 경영권 인수를 주도한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은 불참했다. 홈플러스 대주주인 MBK파트너스는 최근 홈플러스 기업회생 신청으로 여론의 비판에 직면해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홈플러스 사태'와 관련해 MBK파트너스 주요 임원 및 거래에 대한 강도 높은 조사를 예고하고, 연일 날선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이 원장은 최근 홈플러스 '카드 대금 기초 유동화증권'(ABSTB)에 대한 변제 의지가 사실상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하며 "MBK파트너스는 자기 뼈가 아니라 남의 뼈를 깎는 그런 행위를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대기업 회장들이 가진 경제적 이익에 못지않은 이익을 누리면서도 손실은 사회화하고 이익은 사유화하는 방식에 불신을 갖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고려아연 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정기 주주총회가 열린 3월 28일 오전 서울 용산구 몬드리안 호텔에서 피켓팅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고려아연
고려아연 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정기 주주총회가 열린 3월 28일 오전 서울 용산구 몬드리안 호텔에서 피켓팅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고려아연
고려아연 노조 "MBK 모럴해저드 부각…제2 홈플러스 사태 우려"


이날 주총장에는 울산에서 상경한 고려아연 노조와 홈플러스 노조가 나란히 "MBK는 기업사냥 중단하고 홈플러스 사태 책임져라", "고려아연을 제2의 홈플러스로 만들 것인가" 등의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에 나서 눈길을 끌었다.

문병국 고려아연 노조위원장은 "최근 언론 보도에서 홈플러스 대표이사인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이 슈퍼카를 10대 이상 갖고 있으면서도 홈플러스 노동자들에 대해서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 등 모럴해저드가 심각하다는 점이 부각되고 있다"며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와 다른 기업들을 인수합병하면서 직원들의 고용 안정을 약속한 뒤 그 약속을 저버린 적이 많고, 이러한 행태가 고려아연에서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문 위원장은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사내복지기금에 자신이 보유한 고려아연 주식 3만8000여주를 증여했다"며 "MBK파트너스가 고려아연을 경영한다고 가정할 경우 고려아연 근로자들을 대하는 것도 홈플러스 노동자들을 대한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제2 홈플러스 사태가' 재연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최 회장은 지난 3월 보유 주식 38만256주의 10% 수준인 주식 3만8000주(0.18%)를 고려아연 사내근로복지기금에 증여했다. 주당 78만9000원으로 총 299억8200만원 규모다.

이로써 최 회장의 보유 주식 수는 34만2256주로 줄어들어 고려아연 지분율도 1.84%에서 1.65%로 하락했다.

문 위원장은 "고려아연은 국가경제와 안보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안티모니 등 핵심광물 생산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거의 유일한 기업"이라며 "이제는 정부가 나서서 지켜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