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박상인 교수 연구팀
"재생에너지 기반 산업단지로 수출 경쟁력 강화해야"

[한경ESG] 이슈
박상인 서울대 교수. 사진=한국경제신문
박상인 서울대 교수. 사진=한국경제신문
한국 제조업이 탄소 국경세와 중국의 제조업 추격이라는 ‘이중 위기’에 직면한 가운데, 수출 경쟁력 확보를 위한 해법으로 동남권에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산업단지’를 조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서울대 시장과정부연구센터 박상인 교수 연구팀은 31일 발표한 ‘RE100 산업단지 조성과 녹색산업정책’ 보고서를 통해 부산·울산·경남을 아우르는 동남권에 재생에너지 기반 산업단지를 조성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온실가스 감축과 경제 성장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전략적 녹색산업정책으로, 한국의 수출 경쟁력을 유지·강화할 핵심 대안으로 평가된다.

보고서는 2026년 시행을 앞둔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미국의 청정경제법(CCA) 및 해외오염관세법(FPFA) 등 주요국의 탄소 관세가 한국 제조업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이들 제도는 제품 생산 과정뿐 아니라 전력 사용에 따른 간접 탄소 배출까지 규제 대상에 포함돼 있다.
연구팀은 이러한 무역 질서의 변화가 이미 경쟁력 약화를 겪고 있는 한국 제조업의 글로벌 시장 내 입지를 더욱 위협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도체, 이차전지, 자동차 등 주요 전략 산업은 2010년대까지만 해도 높은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을 기반으로 세계 시장을 주도했지만, 2020년대 들어 경쟁국과의 격차가 빠르게 좁혀지고 있다. 반도체 산업은 대만 TSMC와의 기술 격차가 벌어지고 있으며, 이차전지와 미래차 산업은 중국의 공격적인 투자와 빠른 시장 확대에 직면해 있다.

中 6년간 1109조원 전력망 투자

중국은 최근 6년간 총 1109조원을 전력망에 투자하며 재생에너지 설비를 대규모로 확충하고 있다. 연구팀은 “전력원의 친환경성이 수출 경쟁력의 핵심 요소가 되고 있다”며 “글로벌 공급망 내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간접 배출 감축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보고서는 반도체, 이차전지, 자동차 산업을 중심으로 한 ‘동남권 RE100 산업단지’ 조성을 제안했다. 해당 산업은 한국 제조업 부가가치의 약 30%를 차지하며, 기술 경쟁력과 글로벌 시장 대응력이 요구되는 분야다.

동남권은 1970년대 중화학공업 중심지로 성장했으나 최근에는 중국 제조업의 추격과 세계 경기 둔화 등으로 산업 공동화 위기에 놓여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동남권 제조업 부가가치는 2030년까지 2015년 대비 22.94% 감소하고, 수출액은 약 52조8000억원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박 교수는 “동남권의 산업 공동화는 단순한 지역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제 전체를 위협할 수 있다”며 “탄소 규제라는 외부 압력과 제조 경쟁 심화라는 이중 위기를 극복하려면 RE100 산업 클러스터와 같은 전략적 대응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는 산업 경쟁력 제고와 지역경제 회생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RE100 산업단지는 단순한 산업 집적지가 아니라,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공급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전력망 설계를 포함한 지속가능한 생산 기반 구축이 핵심이다. 연구팀은 이러한 산업단지를 통해 전략 산업에 안정적인 재생에너지를 공급함으로써 수출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반면, 보고서는 현재 추진 중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대해 “재생에너지 계획이 부족하고, LNG 등 화력발전에 의존해 장기적으로 경쟁력 확보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수도권의 발전 설비와 송전망은 이미 포화 상태이고, 대규모 재생에너지를 확보하더라도 송전망 수용 한계로 인해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분석이다.

이승균 기자 cs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