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사진=김범준 한국경제신문 기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사진=김범준 한국경제신문 기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정부의 상법 개정안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에 대해 "대통령이 있었으면 행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원장은 2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주주가치 보호나 자본시장 선진화는 대통령이 직접 추진하신 중요 정책"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 원장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최근 '초불확실성 시대에 상법까지 개정해야 하냐' 그런 말씀을 하셨다"며 "일리가 있는 말씀이지만 진정한 울림이 있으려면 과거 SK이노베이션 합병 문제 등에 대해 과연 시장에서 받은 충격이나 주주들의 아픈 마음을 귀 기울여 들은 적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시장은 재계가 자본시장법과 상법 모든 걸 반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제2의 LG에너지솔루션과 같은 일이 벌어질 거란 걱정을 한다"며 최근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3조6000억원 규모 유상증자 사례도 언급했다.

이 원장은 "자본시장 핵심 기능도 신뢰를 잃어 가장 건전한 자금 조달 방식인 유상증자가 의사결정의 배후나 진정성을 의심 받았다"고 말했다.

상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에 따른 향후 거취와 관련한 질문에는 "(사의 표명과 관련해) 금융위원장에게 어제 통화해 제 입장을 말했다"고 밝혔다.
앞서 이 원장은 상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에 '직을 걸고서라도' 반대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전날 국무회의에서 상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에 이 원장은 김병환 금융위원장에 사의를 표명했으나 김 위원장이 만류한 상태라고 전했다.

한 대행의 거부권 행사에 대해서 이 원장은 "총리께서도 헌법적 권한을 행사한 것이기 때문에 헌법 질서 존중 차원에서는 그 결정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며 "자본시장법 개정을 다시 추진해야 한다는 원칙에도 동의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거부권 행사에 아쉬움은 여전히 드러냈다.
이 원장은 "(윤석열) 대통령이 계셨으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을 거라고 저는 확신한다"며 "기본적으로 우리는 보수 정부고, 시장에서의 공정 경쟁은 보수의 핵심적 가치라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작년 하반기까지만 상법 개정안이 통과돼도 대통령께서 거부권을 행사하기는 어렵다는 게 법무부와 저희의 입장이었다"며 "주주 보호 원칙을 담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정부안으로 추진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조금 다른 모양의 법이 통과된다고 거부권까지 행사할 수 있느냐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향후 자본시장법과 상법 개정안이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민주당에 간곡히 부탁드리고 싶은 부분은 상법 개정안을 지금 바로 똑같은 내용으로 다시 통과시키기보다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정무위를 거쳐 법사위에서 다 모이게 되는 4~5월까지만 기다려달라"고 말했다.
이어 "상법개정안 시행령의 범위와 대상을 조금 한정하는 방식 등 자본시장법 개정안에 마련된 구조를 상법에 마련하면 정부가 거부권을 행사하기 어렵다"며 상법이나 자본시장법 개정 논의가 아예 좌초되지 않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