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식의 와인 랩소디 <42>


며칠 전 와인모임 지인이 들뜬 목소리로 전화했다. 지금 창고형 대형 할인점에서 쇼핑 중인데 봄철에 마시기 좋은 와인을 몇 병 구입하고 싶다고. 필자는 망설임 없이 ‘샤블리 와인’을 추천했다.

최근 기온이 올라가면서 개나리, 진달래에 이어 목련과 벚꽃까지 한꺼번에 꽃망울을 터뜨렸다. 눈부시게 화사한 계절, 겨우내 움츠렸던 몸과 마음을 샤블리 와인 한잔으로 달래 보면 좋을 듯하다.
샤블리는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의 작은 마을 이름이다. 가장 북쪽에 위치한 이곳에서는 샤르도네 품종 100%의 화이트 와인만 생산한다. 와인 라벨의 공식 명칭이기도 한 샤블리는 봄맞이용 와인으로 인기가 높다. 바삭하고 깔끔한 맛이 싱그러운 계절 분위기를 듬뿍 담고 있기 때문이다.

샤블리를 이해하려면 먼저 토양부터 알아야 한다. 이 지역은 1억5000만 년 전에는 얕은 바다였다. 짠물이 빠지고 육지로 변하면서 조개와 굴 껍데기 등이 다량 함유된 석회질층 토양(키메르지안)이 되었다.

그 덕분에 이 지역에서 자란 포도 속에는 미네랄 성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다. 실제 안주 없이 샤블리 와인을 한 모금 마셔보면 신선한 바다 향기를 단박에 잡을 수 있다. 상큼한 느낌이 요즘 날씨와도 잘 어울린다.
샤블리 지역 전체 포도밭 면적은 5700ha. 부르고뉴 전체 포도밭의 20% 정도를 차지한다. AOC(원산지 통제 명칭) 기준으로 살펴보면 크게 4개 등급으로 나뉜다.

먼저 하위 등급인 ‘프티 샤블리’와 ‘샤블리’는 가볍고 상쾌한 느낌의 와인이다. 대부분 오크 숙성도 하지 않는다. 상위 등급에 비하면 신맛도 그리 강한 편이 아니어서 오히려 초보자들이 마시기에는 편할 수 있다.

그에 반해 1등급인 ‘프리미에 크뤼 샤블리’의 경우 첫 모금에서 상큼하면서도 부드러운 질감을 잡을 수 있다. 좀 더 집중하면 이국적인 과일과 청사과 향도 다가온다. 그와 함께 포도 자체의 복합미가 섬세하고 순수한 맛이 특징이다.

샤블리 지역을 관통하는 스렌강을 기준으로 우안 7개 마을에 분포된 ‘샤블리 그랑 크뤼’는 진한 느낌과 복합미 넘치는 최고 와인이다. 국내 수입사들이 추천하는 샤블리 와인 3종류를 소개한다.
도멘 세르뱅, 샤블리 그랑 크뤼 레 프뢰즈(2014)’
도멘 세르뱅, 샤블리 그랑 크뤼 레 프뢰즈(2014)’
먼저 ‘도멘 세르뱅, 샤블리 그랑 크뤼 레 프뢰즈(2014)’는 샤블리에서 가장 오래된 도멘이다. 1654년부터 와인을 생산했으니 그 역사가 400년에 육박한다. 사과와 레몬, 살구, 하얀 꽃의 생생한 산미가 특징. 13개월 동안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와 프렌치 오크통 숙성을 각각 50%씩 진행했다. 알코올 도수는 12.5도, 수입사는 씨에스알와인이다.
도멘 베렛 '샤블리(2021)'
도멘 베렛 '샤블리(2021)'
다음으로 ‘도멘 베레, 샤블리(2021)’는 라임과 레몬의 신선하고 새콤한 시트러스 향이 특징. 산미감도 다소 높은 편이다.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12개월간 숙성했다. 유기농 와인 인증도 가지고 있다. 동원와인플러스에서 수입.
‘도멘 롱 드파키 샤블리(2021)
‘도멘 롱 드파키 샤블리(2021)
끝으로 ‘도멘 롱 드파키 샤블리(2021)’. 절인 레몬과 섬세한 흰 꽃 향기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수입사 금양의 설명이다. 이 도메인은 그랑 크뤼 5개, 프리미에 크뤼 4개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다. 1970년 알베르 비쇼가 인수했으며 시음 적기는 3~5년으로 다소 짧은 편이다.
맛과 향을 글로 표현하는 일은 무척 어렵다. 주관이 개입되고 결과가 일률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와인 칼럼니스트들은 자신의 표현에 만족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러나 ‘샤블리 와인의 맛은 바삭하고 깔끔하다’는 표현에는 불만이 없다. 비교적 적확하기 때문이다. 눈부시게 푸른 날, 샤블리 와인을 아무런 의심 없이 한잔 마셔 보시길.
김동식 와인칼럼니스트
juju4333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