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8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오징어 게임 시즌3' 팬 이벤트에서 황동혁 감독을 비롯한 대표 배우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연합뉴스
6월 28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오징어 게임 시즌3' 팬 이벤트에서 황동혁 감독을 비롯한 대표 배우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연합뉴스
35억8530만의 시간. 하루로 따지면 1억4938만7500일, 연간으로 계산하면 40만9280년에 달한다. 이 시간만으로도 충분히 상상하기도 힘들고 세는 것조차 어려운 엄청난 양에 해당한다. 그런데 여기에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더해지게 될까? 전 세계 사람들이 가진 최근의 공통된 궁금증이자 관심사가 아닐까 싶다.

지난 6월 27일 공개된 ‘오징어 게임’ 시즌3가 더해갈 시간에 대한 얘기다. 이 작품의 시즌1은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의 역대 누적 시청 시간 1위(22억520만 시간)를 달성했다. 이어 시즌2는 3위(13억8010만 시간)를 기록했다. K콘텐츠의 새로운 역사, 나아가 글로벌 콘텐츠 역사에 신기록을 세운 ‘오징어 게임’의 영광이 마지막 시즌3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최종 누적 시청 시간은 시간이 꽤 흘러야 알 수 있겠지만 이미 놀라운 기록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시즌3는 공개 사흘 만에 시청 시간 3억7000만을 달성했다. 새로운 기록도 세웠다. 넷플릭스 톱10 조사 대상에 해당하는 미국, 영국, 일본 등 93개국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이전 시즌에선 달성하지 못한 성적일 뿐만 아니라 넷플릭스 최초의 기록에 해당한다. 93개국의 사람들이 한국인 감독과 스텝이 만들고, 한국인 배우가 출연하며, 한국말로 전개되는 드라마를 같은 시기에 동시다발적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고 신기하게 느껴진다. 그렇게 차트 ‘올킬(All Kill)’을 이뤄낸 ‘오징어 게임’은 글로벌 콘텐츠 시장에서 펼쳐진 무한경쟁의 게임에서 최정상에 오른 승자가 되었다. 약점 극복한 K콘텐츠 시즌제의 성공

2021년 첫 여정을 시작한 ‘오징어 게임’이 글로벌 역사에 길이 남을 흥행을 이뤄내리라 예측하기 어려웠다. 2020년 영화 ‘기생충’의 오스카 수상 이후 K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지긴 했지만 장벽은 여전히 존재했다. 드라마가 아시아 등 일부 지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흥행하는 일은 쉽지 않다. 드라마는 영화보다 호흡이 길어 언어와 문화의 차이를 극복하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징어 게임’은 그 모든 장벽을 부수고 글로벌 열풍을 일으켰다. ‘게임’이라는 매력적인 소재로 자본주의 사회가 가진 구조적 모순과 인간성 상실을 날카롭게 풍자했다. 이를 통해 국적과 인종을 불문하고 큰 공감을 이끌어냈다. 딱지치기부터 시작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줄다리기, 달고나 뽑기 등 지극히 한국적인 게임으로 오히려 신선한 즐거움을 선사했다는 호평도 받았다. 덕분에 비영어권 작품 최초로 에미상까지 수상하며 K드라마 역사상 최고의 영예를 안았다.

그리고 마침내 4년 만에 피날레를 장식하게 된 시즌3의 의미는 남다르다. 한국 드라마 가운데 시즌제로 글로벌 시장에서 크게 성공한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오징어 게임’에 대한 의구심도 여전히 존재했다. 시즌1이 아무리 잘됐다 하더라도 과연 끝까지 이야기를 힘 있게 이어갈 수 있을지, 이를 통해 K콘텐츠의 약점이었던 시즌제를 극복한 성공 사례가 될 수 있을지 스스로 증명해 보여야 했다. 나아가 시즌3는 ‘오징어 게임’이 K콘텐츠 대표작으로서 전 세계인들의 뇌리에 어떻게 남을지를 결정짓는 마지막 시즌이라는 점에서 무게감이 더욱 컸다.

공개 직후 나온 시 3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기도 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뼛속까지 깎아내리는 잔혹함으로 돌아왔다”고 찬사를 보낸 반면, 뉴욕타임스는 “어느 때보다 1차원적이고 예측 가능하다”라고 혹평을 하기도 했다. 물론 캐릭터별 매력도, 정교한 설정, 완성도 측면에선 아쉬운 점이 다소 남긴 한다. 그럼에도 93개국 1위 기록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시즌3는 강력한 이야기 자체의 힘으로 전 세계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데 성공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 비결은 시즌제의 핵심 요소인 세계관에 있다. 세계관은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분명하게 표현하고 그 안에서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구현할 수 있는 거대한 밑그림과 같다. 하지만 한국 드라마는 오랜 시간 명확하고 매력적인 세계관을 그리기보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시청률에 연연하거나 회차를 채우기에 급급한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오징어 게임’은 시즌1에서부터 시즌3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인간을 극한으로 내모는 냉정한 경쟁 사회와 시스템 자체를 세계관으로 삼고 이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졌다. 게임판은 세계관의 상징이자 현실의 축소판으로 기능했다.

그리고 이 게임판 안에서 인간의 욕망은 한껏 극대화됐다. 이 욕망은 456억원이라는 거액으로 표현되어 다소 비현실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보다 많은 돈으로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은 현대인들의 기본적인 욕망과 맞닿아 있다. 작품에서 욕망과 인간성은 반복해서 충돌하게 되는데 시즌을 거듭할수록 감독은 이 내적 갈등을 실험하는 강도를 점점 높여갔다. 심지어 시즌3에 이르러선 숨바꼭질 게임을 통해 참가자들끼리 서로를 죽여야만 자신이 살아남도록 한다. 또한 관계성도 점점 좁혀갔다. 시즌1에선 친구와의 경쟁 정도였다면 시즌2와 3에선 가장 가까운 혈연관계의 참가자들을 일부 만든다. 그리고 각종 게임을 통해 이 혈연관계마저 시험에 들게 한다. 이처럼 과도한 설정들이 일부 들어가 있다보니 혹평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전 세계 곳곳에서 충분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생각해 보면 현실과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결국 현실 사회, 시스템의 부조리를 고스란히 반영한 세계관이 시즌을 거듭하며 이어지고 심화되어 그려졌다고 할 수 있다.

결말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지만 여기엔 최후의 메시지인 ‘인간다움’에 대한 고민이 들어가 있다. 호기롭게 다시 게임판에 등장했지만 좌절하고 흔들리는 나약한 인간 기훈(이정재 분). 그 역시 그렇게 한 명의 보통 사람에 불과하지만 결말에선 이 보통 사람이 마지막으로 인간다움을 실현하게 함으로써 새로운 희망이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오징어 게임’이라는 개별 작품, 나아가 K콘텐츠 대표작으로서 남길 수 있는 나름의 최선이자 궁극의 세계관, 그리고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새롭고 찬란한 한류의 게임 속으로
‘오징어 게임’의 대대적인 흥행으로 한류 앞엔 이전에 없던 새로운 길이 열리고 있다. 넷플릭스를 포함한 글로벌 플랫폼은 K콘텐츠의 놀라운 저력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낙수효과도 일어나고 있다. 넷플릭스에서 2022~2025년 공개되는 K콘텐츠 5편 중 한 편은 신인 작가 또는 신인 감독의 작품이다. 글로벌 진출을 꿈꾸는 신인 창작자들에게도 길이 열리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오징어 게임’의 시즌3 공개 직전엔 이례적인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애니메이션 한 편이 6월 20일 공개 이후 미국, 프랑스, 싱가포르 등 40여 국가에서 1위에 오른 것이다. 이 작품은 글로벌 팬덤을 거느린 K팝 아이돌이 악령을 퇴치한다는 내용의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다. 저승사자 복장에 갓을 쓰고 칼군무를 추는 K팝 아이돌의 모습이 반갑고도 신기하게 느껴진다. 이 애니메이션은 비록 미국의 소니픽처스애니메이션에서 만든 미국 작품에 해당하지만 한류를 소재로 한 만큼 K컬처에 대한 세계인들의 뜨거운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시즌3로 ‘오징어 게임’의 시간은 마침내 끝이 났다. 미국판 제작 등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있지만 어쨌든 K콘텐츠 대표작 자체로서는 화려하게 마침표를 찍었다. 그리고 이젠 이토록 영광스러운 성공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류는 새로운 게임을 시작할 시간이다. 40만9280년을 훌쩍 뛰어넘어 전 세계 사람들의 100만 년, 1000만 년의 시간을 K콘텐츠가 수놓게 되길 기대한다.

김희경 인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영화평론가 kimhk@inje.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