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적 친화와 정치적 중립 사이에서 균형 잡기는 과제
[박영실의 이미지 브랜딩]
그동안 전 세계 기술 무대에서 늘 검은색 가죽점퍼를 고수하던 그가 이날은 중국 전통의상인 ‘당복’을 입고 연단에 섰다.
‘가죽점퍼를 입은 남자(the guy in the leather jacket)’로 불리며 자신만의 시그니처 패션을 수십 년간 유지해 온 그였기에 이 변화는 단순한 스타일의 전환으로 보기 어렵다. 당복을 선택한 데에는 문화적 존중과 상징적 시그널이 담겨 있다.
이번 칼럼은 이 같은 변화가 단지 외모의 변화가 아니라 글로벌 기술 패권 시대에 젠슨 황이 구사하는 전략적 이미지 브랜딩의 일환임을 분석하고자 한다.
전통을 입다…가죽점퍼에서 당복으로
젠슨 황의 의상은 늘 메시지를 동반한다. 평소 그는 블랙 가죽점퍼와 블랙 진, 그리고 검은 티셔츠로 구성된 ‘올 블랙 테크 유니폼’을 고수해왔다. 뉴욕타임스는 이를 ‘세상을 바꾸는 기업인의 시그널’로 분석했다.
그의 가죽점퍼는 톰 포드의 프리미엄 제품으로 1000만원이 넘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상징성과 일관성 덕분에 널리 회자된다. 하지만 이번 베이징 연단에서 그는 가죽점퍼를 벗고 전통적인 중국 복장인 당복을 선택했다.
이는 단순한 현지화가 아니다. 중국은 엔비디아가 인공지능(AI) 칩을 수출하고자 하는 최대의 전략 시장 중 하나다. 미국의 수출 규제에도 불구하고 젠슨 황은 중국을 향한 구애의 메시지를 명확히 전달하고자 했고 복장은 그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구체화한 수단이었다. 짙은 회색빛 당복은 전통성과 품격, 조화를 상징한다.
가죽점퍼가 ‘혁신과 창의성’을 뜻했다면 당복은 ‘존중과 협력’을 상징한다. 그가 연설 도중 중국어 인사말을 덧붙인 점도 이 의상의 메시지를 더욱 강화했다. 당복 차림의 젠슨 황은 기존 이미지와 대조적이면서도 설득력을 지녔다.
그의 옷차림은 연단에서의 차분하고 정중한 태도와 맞물려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메시지 중심의 브랜딩이라는 인상을 준다. 그는 의상으로 대립이 아닌 포용을, 경쟁이 아닌 상생을 말하고 있었다.
이는 GTC 무대에서의 강인한 기술 리더와는 다른 이미지지만 결국 두 이미지는 하나의 전략 안에 공존한다. 그는 시장과 무대에 따라 복장을 조정함으로써 다양한 정체성을 유연하게 소화해낸다.
무대 위의 퍼포머, 거리 위의 인간적 리더
베이징 연단 위에서 당복을 입고 차분히 연설하던 젠슨 황은 무대 밖에선 다시 익숙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박람회 외부에서 그는 평소의 가죽점퍼를 입고 대중과 손을 흔들며 소통했다. 같은 행사 내에서도 그는 무대 위와 아래에서 다른 복장과 분위기를 보여줬다.
이처럼 상황에 따른 이미지 변환은 단순한 스타일 연출을 넘는 정교한 퍼포먼스 전략이다. 2024년 GTC 무대에서는 본연의 스타일로 블랙 가죽점퍼에 청바지 차림으로 등장했고 특유의 유머로 “여긴 콘서트장이 아니라 개발자 무대다”라고 시작하며 기술 리더다운 여유를 보인 바 있다.
그가 이처럼 자유롭게 이미지 전환을 할 수 있는 이유는 각 스타일이 그의 정체성과 태도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그의 행동은 늘 자연스러움을 기반으로 하되 구조화된 연출을 포함한다.
춘절 행사에서는 민속 의상을 입고 손수건을 돌리며 중국식 전통춤에 참여하는 모습이 공개됐는데 이는 파격적이면서도 진정성을 갖춘 행보였다. 그는 ‘CEO’라는 직책에 갇히지 않고 현장의 문화와 맥락에 적극적으로 동화되는 ‘문화형 리더’의 모습을 보여준다.
말보다 강한 메시지, 연결을 지향하는 소통법
젠슨 황의 커뮤니케이션 전략은 단지 언어의 문제가 아니다. 그는 비언어적 요소, 즉 복장·제스처·표정 등을 통해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데 능하다. 베이징 연단에서의 중국어 인사, 대중과의 셀카 요청에 응하는 여유 있는 태도, SNS에 공유되는 빨간 봉투 전달 장면 등은 모두 ‘감정적 연결’을 지향하는 커뮤니케이션의 일환이다.
그는 정보 전달보다는 정서적 유대에 초점을 맞춘다. 그의 발언에서 자주 등장하는 키워드는 ‘협력’, ‘파트너십’, ‘함께 성장’이다. 이는 기술 중심 메시지에서 인간 중심 메시지로 확장된 사례다.
중국과의 협력에서조차도 그는 기술적 우위보다 “중국 친구들과 AI 시대를 함께 열겠다”는 감성적인 언어를 활용한다. 이는 단기적인 수출 전략을 넘어 장기적인 브랜드 신뢰 구축을 위한 정서적 설계로 볼 수 있다.
그는 통역 없이도 전 세계에 전달되는 메시지를 의식적으로 설계한다. 그의 소통법은 연설의 내용뿐 아니라 연출 방식, 무대에서의 표정과 제스처까지 포괄하며 강연 그 자체가 하나의 ‘브랜디드 퍼포먼스’로 구성된다.
중국을 향한 미소, 미국의 시선 사이…젠슨 황의 외줄 타기
젠슨 황의 이미지 브랜딩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설계된 언어다. 가죽점퍼는 그가 창조적이고 불굴의 테크 리더임을 상징하고 당복과 민속 복장은 문화 감수성과 포용의 태도를 드러낸다. 그러나 이 모든 전략에는 하나의 과제가 따라붙는다.
바로 ‘진정성의 지속’이다. 지나치게 연출된 이미지 전략은 오히려 불신을 초래할 수 있다. 특히 미·중 기술 경쟁이 첨예한 상황에서 중국에만 과도하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일 경우 미국 정부나 투자자들로부터 정치적 의도를 의심받을 위험도 존재한다.
‘가죽을 벗었다’는 상징은 감동일 수 있지만 자칫하면 일관성 없는 행보로 읽힐 수도 있다. 앞으로 젠슨 황에게 필요한 것은 이미지의 무게를 전략으로만 설명하지 않는 것이다. 전략과 진심, 두 요소가 유기적으로 맞물릴 때 그의 리더십은 진정한 영향력을 갖게 된다.
문화적 융합과 글로벌 외교가 요구되는 시대에 그는 이제 단지 기술 CEO가 아니라 세계와 연결된 AI 황제로서 그 무게를 감당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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