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주가 5000 시대? 그 발목을 잡는 자들은[EDITOR's LETTER]
주식시장에서는 가끔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중 하나가 실적 전망치 발표와 실제 발표한 날의 주가 움직임입니다. “시장 예상에 못 미치는 실적이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 주가가 떨어집니다. 하지만 예상대로 시장 전망치를 밑도는 실적을 발표하고 나면 주가가 반등하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이는 불확실성에 대한 시장의 혐오 때문입니다.

예상치보다 낮을 것이란 전망은 ‘불확실성’, 실제 발표한 저조한 실적은 ‘확실성’의 영역에 있다는 말입니다.

비즈니스도 비슷합니다. 몇 해 전 한 기업인은 대화 도중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앞으로 중국, 베트남 등에서는 사업을 안 할 겁니다.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는 나라에서 사업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았습니다.” 중국에 사업을 빼앗기다시피 하고 철수한 직후였습니다. 중국 정부는 처음에는 외자유치를 위해 다양한 편의제공을 약속하지만 사업이 자리를 잡고 나면 얼굴을 바꿔버립니다. 온갖 시비를 걸어 영업을 방해한다는 얘기였습니다. 그는 이후 미국으로 사업의 축을 옮겼습니다.

이 불확실성이 중국만의 문제일까. 많은 조사에서 시장참여자들은 한국 주식시장의 신뢰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합니다. 불확실성에 대한 지적입니다. 느닷없이 정부가 공매도를 금지하고 주식 양도세 규정을 몇 년이 멀다하고 바꾸는 등 정책 불확실성은 큰 리스크입니다. 기업들을 정치로 끌어들이고 검찰이 이를 수사해 오너들을 감옥에 보내는 것도 낯설지 않은 풍경입니다. 더 오래전에는 정권이 기업을 해체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기업들도 피해자만은 아닙니다. 인적분할이나 자회사 상장, 느닷없는 유상증자를 통해 소액주주들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일도 많았습니다. 자사주의 마법이라는 미명하에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썼고 배당에도 인색했습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순환출자, 이사회의 거수기화 등도 이에 해당합니다. 수십 년간 한국의 이상한 자본주의는 지속됐습니다.

이런 자본주의에도 명과 암이 있습니다. 경제성장 과정에서는 효율이 중요했기에 사회적으로 이를 용인했습니다. 경제성장의 과실을 전 국민들이 골고루 누렸기에 “주식시장은 원래 그래!”라며 사회적으로 방치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식투자 인구 1000만 명을 넘고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자 이 같은 불확실성은 시장을 옥죄는 요소로 변했습니다. 주가상승률이 경제성장률을 따라가지 못했던 지난 40년을 설명할 수 있는 키워드가 ‘불확실성’이라는 데 사회적 합의가 모아지기 시작한 배경입니다.

불확실성이 주가를 아래로 잡아당기고 있다는 것은 올해 세계시장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등 자본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는 국가의 주가는 올해 사상 최고치를 대부분 경신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 돌파를 못 했고 중국은 전고점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한국에서는 이 불확실성을 걷어내겠다는 정부의 등장만으로 주가가 3000선을 가뿐히 뛰어넘었습니다. JP모간, 노무라 등 글로벌 증권사들도 코스피 4000, 5000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복병도 출몰하기 시작했습니다. 최근 정부가 세제개편안을 내면서 대주주 주식 양도세 면제 요건을 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낮추겠다고 밝혔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도 부자 증세를 말합니다. 시장은 곧장 반응했습니다. 주가는 조정을 받았습니다. “진짜 주식시장을 부양하려는 거 맞나”란 의문이 일었습니다.

부자 증세라는 작은 명분에 주식시장 정상화라는 정책적 목표를 희생시키려는 의도인지, 아니면 주가가 좀 오르니 이 정도는 해도 되겠다는 자만감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외친 주가 5000을 위한 정책의 일관성에 의문을 던지게 만든 것은 분명합니다. 정책은 일관성이 생명입니다. 부자들과 기업들 세금 몇 푼 더 걷겠다고 시장에 찬물을 끼얹는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면 더 심각한 문제입니다.

과거 타다 택시를 불법화했을 때 생각납니다. ‘택시운전사는 서민’이라는 구시대적 규정에 집착해 신사업의 싹을 잘라버린 사건입니다.

지금도 비슷합니다. 시장이 활기를 찾기 시작하는 찰나에 느닷없이 ‘부자 증세’를 들고나온 것입니다.

정부의 기조 자체를 불신으로 몰고 가는 것은 아마추어리즘이나, 과도한 이념적 편향의 결과이며, 이재명 정부의 실용주의와는 전혀 관계없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주가 상승의 가장 중요한 걸림돌은 어쩌면 대통령 주변에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가시질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