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관세협상은 타결됐지만…]
핵심 카드 ‘조선’이 열어준 관세 돌파구…자동차는 15% 부담 우려 [관세협상 타결됐지만②]
유예시한 막판에 이룬 합의. 이제 따져야 할 건 경제·산업에 미칠 영향이다.

한국은 미국에 3500억 달러(약 487조원) 규모의 투자와 1000억 달러 규모의 에너지 수입을 약속했고, 미국은 한국 수출품에 대한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인하하기로 했다. 수출이 GDP의 44%를 차지하는 한국 경제에서 이번 협상은 외교적 성과를 넘어 산업 전반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산업별 기상도를 분석했다.
핵심 카드 ‘조선’이 열어준 관세 돌파구…자동차는 15% 부담 우려 [관세협상 타결됐지만②]
조선
‘마스가(MASGA)’가 열어준 관세 돌파구
한·미 관세 협상의 결정적 돌파구는 조선업이었다. 정부가 제안한 3500억 달러(약 486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 패키지 중 1500억 달러가 조선업 전용 펀드로 조성되면서 한국 조선업이 핵심 협상 카드로 부상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협상 직후 “트럼프 대통령이 조선업 투자를 빨리 해달라고 직접 요청했다”며 “조선업이 협상을 빠르게 종결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조선업에 대한 중국의 추격이 굉장히 급속한 상황에서 미국하고 동맹함으로써 굉장히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미국에서 나오고 있는 신조 수요를 한국 조선업이 함께 가져갈 수 있는 기회가 창출됐다”며 산업 경쟁력 강화 측면에서도 긍정적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투자 패키지에서 핵심이 된 것은 ‘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로 명명된 한·미 조선 협력 프로젝트다. 정부는 미국의 쇠락한 조선업을 부활시키는 파트너로 한국 조선업이 최적임을 강조했고 트럼프 대통령도 이를 적극 수용했다. 미국은 중국의 해군력 확장에 크게 우려하며 전투함 확보에 나서고 있다.

한국 기업이 미국 내 조선소를 인수해 직접 운영하거나 미국 주요 조선사와의 합작 형태로 진출할 수 있는 실질적 역량을 갖춘 유일한 국가라는 점에서 수혜의 상당 부분이 국내 조선업체에 집중될 것이라는 평가다. 대표적으로 필리조선소를 인수해 운영 중인 한화오션이 직접적 수혜 기업으로 꼽힌다. 자동차
우려 줄고, 숙제 남았다
한·미 관세 협상이 타결되면서 자동차 업계는 ‘최악은 피했다’는 분위기 속에서 안도하고 있다. 7월 31일 현대차·기아는 공식 입장문을 통해 “관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각적 방안을 추진하는 동시에 품질 및 브랜드 경쟁력 강화와 기술혁신 등을 통해 내실을 더욱 다져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번 협상에서 자동차 품목에 대한 관세율은 기존 25%에서 15%로 인하됐다. 이는 앞서 일본, 유럽연합(EU)과 체결된 조건과 동일한 수준으로 업계는 “대미 수출에서 역차별 우려가 해소됐다”는 입장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는 “미국은 한국 자동차 수출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핵심 시장”이라며 “이번 협상으로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이 사라졌고 일본·EU와 대등한 경쟁 여건이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이어 “기술개발, 생산성 향상, 수출시장 다변화 등을 통해 전기차 등 미래차 전환을 가속화할 기회로 삼겠다”고 덧붙였다.

시장 반응은 완전한 낙관보다는 유보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명목상 동등하기는 하지만, 미국에 자동차를 무관세로 수출해 온 한국이 2.5%의 관세를 적용받던 일본, 유럽연합(EU)과 같은 관세율을 부담해야 하게 됐다는 지적이다.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는 “현대차와 기아는 각각 50만 대 내외의 수출 물량이 관세 노출 대상”이라며 “관세율 1% 부과 시 양사 이익 감소는 각각 약 1500억 원 수준”으로 추정했다. 이번 관세 인하로 부정적 영향은 완화되었지만 원가 절감, 현지공장 가동 확대, 인센티브 조정 등 내부 비용조절이 병행되어야 수익성 하락을 상쇄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자동차산업협회는 “관세가 빠른 시일 내에 현장에 적용될 수 있도록 행정적 지원이 필요하다”며 국내 생산기반을 유지할 수 있도록 세액공제 신설 등 정책적 뒷받침을 요청했다. 반도체
‘최혜국 대우’에도 남은 불확실성
반도체 업계는 일단 ‘최악은 피했다’는 분위기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7월 31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한국 반도체가) 다른 나라보다 불리한 대우를 받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는 미국이 일본·EU와 같은 수준의 최혜국 대우를 약속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미국은 앞서 EU산 반도체에 0% 관세율 유지를 약속했고 일본에는 ‘가장 낮은 관세율 적용’을 보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협상에서 한국 역시 동일한 조건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구체적인 적용 기준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삼성전자는 이날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협상 타결로 일부 불확실성이 해소됐다고 판단한다”면서도 “8월 중순 예정된 무역확장법 232조 반도체 품목조사 결과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반도체에 추가 품목 관세 부과 가능성이 여전히 열려 있음을 의미한다.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는 “한국의 반도체 수출 중 미국 비중은 약 8% 수준”이라며 “관세가 실제 부과될 경우 메모리 반도체 제품 중심으로 15% 내외의 가격 인상이 불가피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경우 미국향 제품의 수익성 하락이 예상된다.

업계는 미국의 전략적 목표인 AI 산업 육성에서 한국 반도체가 필수 불가결한 공급자라는 점에 기대를 걸고 있다. 반도체는 대체재가 많지 않고 고율 관세를 적용할 경우 미국 수입업체의 부담이 확대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단, 현재 진행 중인 품목 관세 검토가 메모리 등 중간재를 넘어 스마트폰, 노트북, 가전 등 완제품까지 확대될 경우 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더욱 클 수 있다는 우려가 남아 있다. 각자도생 나선 제약, 환율은 ‘아직’이 밖에 철강, 제약, 에너지 등은 ‘중립’ 기상도로 평가된다.
철강의 경우 미국 상무부가 한국산 철강에 대해 기존 50% 고율 관세를 유지하겠다고 밝히며 이번 한·미 관세 협상에서는 직접적 변화가 없었다. 일본과 EU에 대한 협상에서도 철강은 예외로 분류된 바 있어 한국 철강 업계도 기존 조건이 유지되는 선에서 방어적 수혜에 그친 셈이다.

제약 업종은 15% 관세 부과 가능성이 남아 있지만 품목별 세부안이 아직 확정되지 않아 주가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다만 CDMO, 바이오시밀러, 희귀의약품 등 국내 주력 생산 품목이 관세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기업들은 미국 내 생산기지 확보나 DP 충진 공정 이전 등 관세 회피 전략을 선제적으로 추진 중이다. 실제 셀트리온은 미국에 위치한 바이오의약품 생산 공장 인수 입찰에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돼 미국 내 생산거점 확보를 앞두고 있다고 7월 29일 밝혔다.

에너지 업종은 이번 협상에 100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LNG 및 에너지 수입 확대가 포함됐다. 2024년 LNG 수입물량이 300억 달러 규모로 미국산 비중은 10% 내외란 점에서 커 보이지만 장기 계약 비중이 높은 LNG 시장의 특성상 대미 수입 확대가 국내 산업 가격구조에 미치는 단기적 충격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는 “일반적인 LNG 계약은 20년 내외인 점을 감안하면 연간 50억 달러 규모 수입 가정 시 수입 국가 내 비중 조정 정도에 그칠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 경우 산업에 미치는 영향도 제한적이란 분석이다.

한편 시장이 우려한 ‘환율’ 관련 논의는 직접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강영규 기재부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상협상에서 환율과 관련한 직접적인 논의는 없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환율에 대해서는 양국 재무 당국 간 별도로 협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협상 타결이 알려진 이날(30일) 오후 3시 30분 기준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전날보다 3.9원 오른 1387.0원을 나타냈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