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청년층이 소비 줄이기에 몰두하고 있다. ‘현재를 중시하며 소비를 즐기는 요즘 애들’이라는 말은 옛말이 되었다. 특정 국가에서 일시적으로 유행하는 현상도 아니다. 이는 전세계 청년층이 현재를 ‘세계적 불황’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에서는 ‘노 바이(No Buy) 2025 챌린지’가 유행 중이다. 생필품 외의 소비를 하지 않고 가지고 있는 제품이 다 떨어질 때까지 절대로 새 상품을 구매하지 않는 챌린지다. 노 바이 챌린지는 이전에도 유행한 적 있지만 목표 기간을 1년으로 한다는 점에서 이전보다 훨씬 길어졌다.
미국 여론조사 업체 토커리서치가 2024년 1월 미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Z세대(1997~2012년 출생)의 저축률이 다른 세대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Z세대의 21%는 매달 1~10%를 저축하고 25%는 월급의 11~20%를, 12%는 21~30%를 저축한다고 답했다. 월급 전체를 저축한다고 밝힌 응답자도 5%에 달했다. 베이비붐 세대의 32%, X세대의 33%가 돈을 전혀 모으고 있지 않다고 응답한 것과 대비된다.
중국에서는 ‘보복저축’과 ‘다쯔(파트너)저축’이 작년부터 유행이다. 현재 중국 청년들은 폭발적인 경제 발전으로 부모 세대보다 훨씬 더 풍요로운 환경에서 자란 세대다. ‘웨광쭈(月光族·월급을 하나도 남김 없이 다 쓰는 부류)’, ‘후이진쭈(揮金族·돈을 뿌리고 다니는 부류)’라고 불릴 정도였다. 이들은 코로나19 이후 억눌렸던 소비의 반작용으로 ‘보복 소비’를 주도했지만 2년 만에 언제 그랬냐는 듯 보복저축을 실천하고 있다. 중국 SNS에서는 한 달 지출을 300위안(5만8300원)으로 줄이거나 하루 식사 비용으로 10위안(1940원)을 초과하지 않는 방법이 공유되고 있다. 또 뜻이 맞는 친구들 여러 명이 모여 저축 목표를 설정하는 다쯔저축 친목 그룹도 유행이다.
우리나라에는 ‘무지출 챌린지’, ‘현금 챌린지’가 있다. 무지출 챌린지란 생활비를 줄이기 위해 지출을 아예 하지 않는 도전이다. 특히 자취생들에게 인기를 얻어 배달 음식 대신 도시락, 카페 음료 대신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방식이다.
KPR디지털커뮤니케이션연구소가 소비경향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2022년 상반기 대비 2024년 상반기 ‘무지출’과 ‘무소비’ 관련 언급량이 85% 증가했으며 ‘플렉스’와 ‘욜로’ 관련 언급량은 12%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가 발표한 ‘2025년 새해 소비 트렌드 전망’에서도 응답자의 80.7%가 ‘꼭 필요한 것만 사고 불필요한 물건 구매는 최대한 자제한다’고 답했다. ‘보여주기 위한 소비보다 나를 위한 실용 소비를 선호한다’는 응답도 89.7%에 달해 절약 중심의 트렌드가 이어질 전망이다.
현금 챌린지는 무분별한 카드 지출을 줄이기 위해 최소한의 필요 금액을 현금으로 인출해 사용하는 챌린지다. 지출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어 불필요한 소비를 막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현금이 안 되는 매장을 만나면 오히려 좋다’는 후기도 있다.
미국 “주거비·트럼프 스트레스”미국 Z세대에게 주택 구매는 점점 불가능한 과제가 되고 있다. 미 부동산중개인협회(NAR)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전체 주택 구매자 중 Z세대 비율은 단 3%에 불과했다. 밀레니얼 세대가 가장 큰 비중(38%)을 차지한 것과 대조적이다. 또 하버드대 주택연구센터 조사 결과 Z세대만 유일하게 임대인 가구 비율이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NAR 보고서에 따르면 6월 미국 내 기존 주택 판매 중간 가격은 43만5300달러(6억854만원)로 1999년 데이터 집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24개월 연속 상승세를 지속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집을 마련하는 것이 곧 성공의 지표라는 인식이 있는 미국에서 청년들은 더 이상 ‘일한 만큼의 보상’을 기대할 수도 없게 되었다고 보도했다.
미국 보험사이트 인슈어리파이 여론조사 결과 Z세대의 약 50%가 주거비를 가장 큰 스트레스 요인으로 꼽았으며 23%는 재정 상황 때문에 미래를 불확실하게 느낀다고 답했다.
또 미국 언론들은 챌린지 확산 이유로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스트레스를 꼽았다. 미국에서 판매되는 의류와 신발은 대부분이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에서 수입되는데 이들 국가 모두에 30% 이상의 관세가 부과됐다. 7월 소비자물가지수에 따르면 신발 가격은 전월 대비 1.4%, 의류 가격은 0.1% 각각 상승했다.
포브스는 “과거에도 몇 번 나타난 챌린지였지만 최근 확산되는 비율에는 미치지 못한다”며 “미국의 인플레이션과 정치적 불확실성에 대한 대응일 것”이라고 보도했다.
중국 “학위 인플레이션·취업난”중국 역시 청년 실업률이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7월 도시지역 16∼24세(학생 제외) 실업률은 17.8%로 지난 6월(14.5%)보다 3.3%p 올라갔다. 올여름 사상 최대인 약 1220만 명의 대학 졸업자가 쏟아져 나오는 영향이라고 홍콩 일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짚었다.
학위 인플레이션으로 취업난이 심해졌다는 분석이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베이징대와 같은 명문대를 졸업하더라도 생계를 이어갈 만한 수준의 일자리도 구하기 어려워졌다. 고소득 민간 기업들이 신입 채용 기준을 석사 학위 소지자로 상향해 대학 졸업생들은 취업을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는 추세가 확산됐다. 중국에서 석사 학위는 더 이상 전문가 양성 과정이 아닌 취업을 위한 기본 조건이 됐다는 얘기다. 2019년 48%였던 베이징대 졸업생의 대학원 진학률은 2024년 66%로 증가했다. 2013년 54%였던 칭화대 졸업생 대학원 진학률도 2022년 66%로 높아졌다.
전문가들은 실업률이 심각하게 치솟아 청년들의 일자리가 부족해지면서 중국 젊은층이 저축에 집착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루시 싱가포르국립대 교수는 중국의 보복저축 문화에 대해 “미래 경제에 대한 확신이 낮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돈을 내고 모의 사무실에 출근하는, 이른바 ‘가짜 직장’ 서비스까지 등장했다. 하루 30위안(약 4200원)을 내고 ‘출근 분위기’를 제공하는 모의 사무실을 찾는 청년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 “취업난·연금 고갈 인식”
대학내일20대연구소의 ‘Z세대 트렌드 2025’ 보고서에 따르면 국가 경제 상황에 대한 인식을 물었을 때 전체 응답자(19~54세)의 경우 ‘나쁨’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72.2%인 것에 비해 Z세대는 64.2%로 8%p 낮게 나타났다. 한편 ‘좋지도 나쁘지도 않음’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전체 19.4%에 비해 Z세대 25.8%로 높게 나타났다.
향후 경제 전망에 대해 묻는 질문에서도 Z세대는 나빠질 것이라는 응답이 48.7%로 전 세대 중 가장 낮았고 비슷할 것이라는 응답은 10.0%로 가장 높았다.
Z세대의 국가 경제 인식은 대체로 모호한 모습을 보였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는 “호황의 경험이 없는 Z세대는 좋고 나쁨을 비교하는 일이 어렵기 때문에 현재를 불황이라고 인지하는 비율이 낮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다른 세대보다 불황이라고 인지하는 비율은 낮지만 더 이상 플렉스·욜로 하지 않는 모순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취업난이 계속되는 가운데 연금 고갈에 대한 불안감까지 더해져 저축 문화를 부추겼다는 분석이다. 국민연금연구원이 7월에 발표한 ‘국민연금 인식에 대한 키워드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대학 커뮤니티에서 연금 관련 게시글은 지난 2018년 117건에서 2023년 996건으로 8.5배 급증했으며 같은 기간 개방형 커뮤니티에서도 143건에서 613건으로 4.3배 늘어났다.
조수아 인턴기자 joshu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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