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당선 축하 파티가 열렸다. 부통령 당선인 JD 밴스와 마크 저커버그, 샘 올트먼, 하원의장 마이크 존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 등 실리콘밸리와 워싱턴의 거물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장소는 피터 틸 팔란티어 창업자의 자택이었다.

뉴욕타임스(NYT)는 틸을 “지난 20년간 가장 영향력 있는 우파 지식인”이라고 평가한다. 막대한 자금력과 전략적 네트워크, 독특한 사상적 기반을 결합한 그는 단순한 기업가나 투자자가 아니다. 지금 그는 벤처투자자와 기술 기업가를 넘어 공화당의 ‘킹메이커’로 불리고 있다.


페이팔에서 스페이스X까지: 틸과 머스크의 동맹사
2000년 페이팔 본사에서 당시 피터 틸 페이팔(왼쪽) CEO와 공동창업자 일론 머스크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2000년 페이팔 본사에서 당시 피터 틸 페이팔(왼쪽) CEO와 공동창업자 일론 머스크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틸은 ‘페이팔 마피아’를 상징하는 인물이자 실리콘밸리와 워싱턴을 잇는 가장 영향력 있는 연결 고리다. 길 듀란 전 캘리포니아 주지사 언론비서는 “머스크와 삭스에게 틸은 ‘큰형’ 같은 존재”라며 “그는 페이팔 마피아의 대부”라고 말했다.

독일에서 태어나 미국과 남아공에서 자란 틸은 스탠퍼드대에서 철학·법학을 공부하며 학생 신문 ‘스탠퍼드 리뷰’를 창간했다. 1998년 온라인 결제 서비스 기업 ‘컨피니티’를 세웠고 일론 머스크의 온라인 은행 X닷컴과 합병해 페이팔을 개발한다.

2002년 페이팔이 이베이에 15억 달러에 매각되면서 틸은 단숨에 억만장자 반열에 올랐다. 그는 이후 헤지펀드 ‘클라리움’과 벤처캐피털 ‘파운더스펀드’를 세우며 실리콘밸리의 핵심 인물로 자리 잡았다.

이 성공은 동료들에게도 이어졌다. 2007년 포춘은 페이팔 출신 창업자들을 ‘페이팔 마피아’라 명명하며 실리콘밸리 신화의 주인공으로 조명했다. 머스크, 데이비드 삭스는 가장 두드러진 인물로 꼽힌다.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와 함께 워싱턴 무대까지 영향력을 넓혀갔다.

틸과 머스크의 인연은 온탕과 냉탕을 오갔다. 합병 직후 CEO 자리를 둘러싼 경영권 다툼에서 머스크는 밀려났고 두 사람은 멀어졌다. 그러나 2008년 스페이스X가 잇따른 발사 실패로 존폐 위기에 몰리자 틸은 스페이스X에 2000만 달러를 투자한다. 이 투자는 스페이스X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틸은 머스크의 다른 도전에도 자금을 댔다. 파운더스펀드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기업 뉴럴링크와 터널 굴착 회사 보어링컴퍼니에 투자했다. 틸은 머스크 기업들의 기술 도전을 가능하게 한 후견인이었다.
틸의 동지 데이비드 삭스, 백악관 AI 차르가 되다
암호화폐 법안 서명식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암호화폐 차르 데이비드 삭스가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암호화폐 법안 서명식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암호화폐 차르 데이비드 삭스가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AI·암호화폐 차르’로 불리는 데이비드 삭스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AI·가상자산 정책특임보좌관이다. 그는 틸과 함께 1996년 논란의 저서 ‘다양성의 신화’를 집필하며 이념적 기반을 공유했다. 이 책에서 두 사람은 정치적 올바름과 다문화주의를 비판하며 대학이 진정한 학문 탐구 대신 정체성 정치와 좌파적 가치관에 치우쳐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소수자 배려 정책이 오히려 역차별을 낳고 교육의 본질을 훼손한다는 논지를 폈다.

이후 삭스는 페이팔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맡아 회사를 성장 궤도에 올린 핵심 인물로 활약했다. 2008년에는 기업용 소셜미디어 ‘야머’를 공동 창업해 2013년 마이크로소프트에 12억 달러에 매각했고 2017년에는 벤처캐피털 ‘크래프트벤처스’를 설립했다.

실리콘밸리에서 쌓은 이력과 네트워크를 발판으로 삭스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직후 백악관에 입성했다. 그는 AI·가상자산 정책을 총괄하는 ‘특임보좌관’에 임명돼 새로운 권력의 한 축을 맡게 됐다. 스티브 블랭크 스탠퍼드대 경영과학·공학 겸임교수는 “정부 규제를 피해 다니던 스타트업 창업자 풋내기들이 단 한 세대 만에 ‘정부 그 자체’가 됐다”고 표현했다.
철학이 이끈 투자, 페이스북
프랑스 철학자 르네 지라르 / 사진 =게티이미지
프랑스 철학자 르네 지라르 / 사진 =게티이미지
틸의 사상적 스승은 스탠퍼드대 시절 만난 프랑스 철학자 르네 지라르였다. 지라르는 인간의 욕망이 타인의 욕망을 따라가는 ‘모방 욕망(mimetic desire)’ 이론을 제시했다.

지라르의 모방 욕망 이론은 틸에게 ‘경쟁은 패자들의 것’이라는 창업 철학으로 이어졌다. 그는 모두가 몰리는 경쟁 시장 대신 독점적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고 믿었고 그 철학을 저서 ‘제로투원’에 집약했다.

이 철학이 가장 잘 드러난 사례가 바로 페이스북 투자다. 2004년 자금난에 시달리던 마크 저커버그에게 틸은 50만 달러를 투자한 첫 외부 투자자가 됐다. 그는 10% 지분과 이사회 의석을 확보했고 페이스북의 ‘가장 오래 재직한 외부 이사’가 되었다.

틸은 페이스북 투자 이유를 “소셜미디어가 욕망을 증폭·확산시키는 실험장”으로 보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2010년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페이스북은 입소문으로 퍼졌고 입소문에 관한 것이기도 해서 이중으로 모방적이다”라고 말했다. 저커버그는 한때 틸을 멘토로 여기며 따랐지만 메타 이사회와 틸의 갈등이 깊어지며 2022년 결별을 맞았다.

틸은 저커버그 외에도 수많은 멘티를 길러냈다. 샘 올트먼 역시 그중 한 명이다. 틸은 올트먼의 초기 창업에 투자했고 그는 훗날 Y콤비네이터 대표와 오픈AI의 CEO로 성장했다.

피터 틸, 공화당의 후원자를 넘어 ‘사상 기획자’로
JD 밴스 미국 부통령 / 사진=연합뉴스
JD 밴스 미국 부통령 / 사진=연합뉴스
틸은 공화당과 민주당을 오가며 거액을 기부해온 실리콘밸리의 대표적 정치 후원자다. 2014~2015년에는 민주당 소속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 후보 캠프에 7만 달러를 후원한 바 있다.

그러나 2016년 대선부터 틸의 자금은 공화당으로만 향한다. 당시 틸은 트럼프 캠페인에 125만 달러를 기부했다. 그는 공화당 전당대회 연단에 올라 “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와 로켓처럼 새로운 것을 만드는 사람들을 후원한다”며 트럼프 당시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2022년 상원 선거에서는 JD 밴스에게 1500만 달러를 지원하며 정치적 비상을 뒷받침했다.

틸과 밴스의 인연은 13년 전 예일대 로스쿨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연자로 나선 틸은 ‘기술 정체’를 한탄하며 엘리트들의 경쟁 집착을 비판했다. 밴스는 이 순간을 “대학원 시절 가장 중요한 순간”으로 회고한다.

실제로 졸업 후 밴스는 잠시 로펌 변호사로 일하다 틸의 벤처캐피털 ‘미스릴캐피털’로 이직해 투자자로 변신했다. 억만장자들과의 교류 경험은 훗날 회고록 ‘힐빌리의 노래’로 이어졌고 밴스를 전국구 인물로 만들었다. 이는 그가 훗날 부통령에 오르는 발판이 되었다.

한때 트럼프를 ‘히틀러’에 비유했던 밴스는 이후 강경한 공화당원으로 돌아섰다. 그 변신 뒤에는 틸의 영향이 있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워싱턴포스트는 “틸과의 수년간 대화가 낳은 결과”라고 전했다.

MAGA 이념과 틸의 사상은 겹치는 지점이 많다. 틸은 2009년 카토연구소 기고문 ‘자유지상주의자의 교육’에서 정부 축소, 규제완화, 암호화폐 전망을 제시하며 자유지상주의적 세계관을 드러냈다. 2011년 보수 성향 잡지 내셔널 리뷰에 발표한 ‘미래의 종말’에서는 미국의 엘리트와 국가 쇠퇴를 기술 정체와 인프라 붕괴 탓으로 돌리며 “더 큰 위험 감수, 더 많은 기술, 더 큰 야망”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트럼프 진영의 반엘리트·반체제 정서와 틸의 반관료주의·기술주의 철학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스탠퍼드 사이버정책센터의 베카 루이스 연구원은 이를 두고 “연방정부 프로그램 축소를 선취한 글”이라고 평가했다.


고송희 인턴기자 kosh112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