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박기 방지법’과 ‘알박기법’ 사이 [하영춘 칼럼]
대통령선거 때면 후보 캠프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조건 없이 일하겠다는 사람으로 인산인해다. 지지하는 후보의 당선을 위해 뛰겠다는 좋은 취지다. 하지만 상당수 사람들은 전리품에 관심이 더 많다. 당선에 공헌하면 보상받을 것이란 기대가 팽배하다. 후보와 일면식도 없으면서 캠프를 뻔질나게 들락거리는 전직 관료, 대학교수, 전직 언론인 등은 십중팔구 이런 경우다.

문제는 이들에게 줄 자리가 한정됐다는 점이다. 장차관 등 정부 부처는 일 잘하는 사람에게 맡겨야 한다. 폼 나고 힘 있는 자리는 당선인과 동고동락했던 사람들 몫이다. 적당히 놀고 먹는 자리가 딱인데 자리가 많지 않다. 공공기관이 만만하지만 현직 기관장들이 임기가 남았다며 꿈쩍도 하지 않는다. ‘지난 정부 낙하산은 나가라’고 대놓고 요구해도 못 들은 척 버틴다.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말을 빌리면 “양심불량이자 세금 도둑”이다.

성질 급한 장관들은 참지 못하고 나섰다가 곤욕을 치렀다. 이명박 정부의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전 정권에서 임명된 문화예술계 단체장들은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말했다가 소송까지 당했다. 문재인 정부의 김은경 환경부 장관은 산하 공공기관 임원들에게 사표 제출을 종용한 혐의로 실형을 살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의 존속기간은 3년이 채 안 된다. 느닷없이 정권이 무너지자 후반기 공공기관장 자리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다급해졌다.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331명의 공공기관장 중 53명은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에서 탄핵소추된 뒤 자리를 찾았다. 이 중 22명은 대통령 파면 이후 취임했다. 누가 봐도 ‘알박기’다.

여당으로선 심사가 뒤틀린다. 그래서 들고나온 것이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 개정안이다. 이른바 ‘알박기 방지법’이다. 김 원내대표는 직접 발의한 공운법 개정안에서 공공기관장은 그를 임명한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면 자동으로 물러나도록 했다. 한발 더 나아가 공공기관 임원들도 평가를 통해 해임이 가능하도록 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모든 공공기관 임원들을 임기와 관계없이 퇴진시킬 수 있게 된다. 줄잡아 800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찬성한다. 공공기관은 정부의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정부 재원으로 운영되는 기관이다. 그런 만큼 대통령 및 정부와 국정철학을 공유하고 실천하는 게 맞다. 공공기관장이 대통령과 명운을 같이하는 것도 합리적이다.

하지만 경계해야 할 점이 있다. 우선은 물갈이 기준이다. 공공기관은 그저 놀고 먹는 곳이 아니다. 국민연금이나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한국전력처럼 고도의 전문성이나 경영능력이 필요한 곳도 있다. 따라서 물갈이를 할 때는 성과를 객관적으로 따져야 한다. 업무능력이 탁월한 기관장은 전 정부에서 임명했다고 해도 재신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들을 대체할 사람들도 엄선해야 한다. 누가 봐도 자격미달인 사람을 대선에 공헌했다는 이유만으로 공공기관에 앉히는 것은 또 다른 ‘알박기’일 수 있다.

이와 함께 공공기관이 아닌 곳은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 금융협회 등 각종 협회와 뚜렷한 주인이 없는 은행계 금융그룹, KT, 포스코 등 말이다. 이곳은 엄연한 민간협회나 민간기업인 만큼 낙하산 인사를 시도해선 곤란하다. 오히려 정부 실세를 들먹거리며 자리를 탐하는 사람을 내치는 게 맞다. 공공기관 임원 상당수를 물갈이하고 공공기관 비슷한 민간기업 자리까지 탐할 경우 ‘알박기 방지법’은 ‘알박기법’의 다른 말일 수 있다.

하영춘 한경비즈니스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