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지럽고 복잡한 판일수록 기회를 찾아 실현하는 유능한 경영자가 필요하다. 남들이 못하니 그 대가는 더욱 크다”

혼돈 속 기회, 해외투자에서 돈 버는 전략 [박찬희의 경영전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고압적 관세 협상에 이어 미국에 대한 현지 투자를 요구하더니 난데없이 공장 지으러 간 사람들이 꽁꽁 묶여 추방하는 일이 벌어졌다. 당하는 입장에서 황당하지만 이런 현실에서 기회를 찾는 것이 전략의 지혜다. 선진국 거대기업의 현지 투자가 개발도상국을 종속시켜 독자적 발전을 가로막는 식민지 전략이라고 비판하던 시절과 너무나 달라진 그림인데 사실 국제무역과 금융, 직접투자는 지혜로운 자는 이득을 얻고 물정 모르면 당하는 냉정한 게임이다. 제국주의 식민지 전략이든 이에 대한 저항이든 배울 점을 찾아 실천해야 이긴다.
◆더 넓은 세상, 기회가 깔려 있다
고대 중국에서는 거래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무형의 가치를 상(商)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했다. 각각의 다른 사정을 알면 싼 곳에서 사서 비싸게 파는 교환거래의 이득을 얻을 수 있다. 더 넓은 범위에서 거래가 이뤄지면 생산활동의 규모가 커지고 전문화된다. 편하고 안전한 연결 거점을 만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번성하고 창고, 운송, 금융이 발달한다. 종교와 유흥도 더해진다. 보관증과 어음을 다루던 상인이 큰돈을 모아 거래와 생산을 이끌기도 한다. 이렇게 거래의 중심지가 형성되고 경쟁하면서 시장과 산업의 기반이 잡히고 이를 활용한 권력이 패권을 쥐게 된다.

유능한 상인은 누구보다 빠르게 사업기회를 찾아서 남들과 다른 방법으로 돈을 번다. 한걸음 앞선 정보로 얻는 이득은 물론 효과적 금융을 통해(국제시장에선 더 복잡하고 변동이 큰) 이자와 환율의 이득을 얻는다. 보관과 운송에 관련된 사업들도 단순한 운임(fare) 거래가 아니라 계약물량에 대한 선물거래, 운송수단과 기자재 거래 및 금융, 나아가 항만 개발과 운영, 배후지 개발로 이어진다. 하나하나가 어마어마한 사업들이고 앞장서 시장을 개척하면 이들 사업에 대한 주도권을 가질 수 있다. 곳곳에 돈이 깔려 있는 셈이다.

시장과 산업을 부흥시켜 힘을 키우려는 권력을 만나면 기회는 더 커진다. 물론 그 권력도 유능한 상인을 찾는데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역 패권이 경쟁하는 중세적 질서에서 권력과 상인은 한 몸으로 움직인 경우가 많다. 동북아 건국설화에는 실크로드나 바다를 무대로 하는 무장 무역집단의 흔적이 보인다. 장보고와 청해진도 비슷하다. 근대 이후 정치 권력과 시장의 주인공이 분리된 상황에서 이런 협력은 더욱 절실한데 미국의 투자요구와 이를 대하는 우리 정부와 기업의 전략도 다르지 않다.

더 넓은 세상을 상대로 사업을 하려면 단순한 무역 거래를 넘어 다양한 수단이 필요하다. 핵심 자재나 부품을 팔면서 기술자가 가서 지도하는 경우가 있고 중요한 거점에 직접 회사를 새로 만들 수도 있다. 현지의 사업 파트너가 마땅치 않거나 계약만으로 협력을 보장할 수 없어 동업(합작투자)을 할 수도 있다. 동남아시아와 일본, 한반도를 거쳐 대륙으로 이어진 무기와 도자기의 교역, 신라방과 같은 해안 교역거점의 역할에서 볼 수 있다. 대항해 시대의 교역로와 도시의 발전, 회사 제도의 발전도 마찬가지다.

이런 국제무역과 투자, 시장과 산업의 정책을 생각하지 않고 무역은 물건 떼어 마진 붙여 팔고 외환 수수료나 내는 일로 아는 경우가 많다. 해외투자는 법인 만들어 현지 거래 하는 것으로 공부하고 무역과 기술이전, 해외투자를 ‘각기 다른 대안’이라며 논문까지 쓰니 이런 아둔한 경영학은 법으로 금지해야 마땅하다.
◆해외투자, 공급망의 비밀
해외투자를 현지에 자본금 송금해서 현지법인 운영하고 이익배당 얻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월급 받아 저축해서 사업해 배당금 챙긴다는 생각과 다를 바 없다. 하다못해 사장 월급도 생각 못하는 셈이다. 미국에 자동차 공장을 짓고 판매와 정비를 위한 네트워크를 운영하는 과정을 생각해 보자.

먼저 초기자본을 만들어서 투자를 끌어들이고 대출을 일으킨다. 국책사업에는 정부 기구의 자금지원과 신용보증을 얻을 수 있고 해외사업에 참여를 원하는 기업들의 투자도 받을 수 있다. 개발도상국의 원자재 공급선을 활용하면 해외원조 자금도 활용할 수 있다. 현지법인의 틀이 갖춰지면 현지금융을 조달하는데 공장 설립과 운영을 위한 부품과 기자재 거래, 현지 운전자금에 주로 쓰인다. 역외에 투자펀드를 만들어 자금을 조성해서 미국에 투자하면 지분 투자자들의 입출금이 자유롭고 부채로 조달한 자금도 미국법인의 자본금으로 잡히니 현지금융에 유리하다.

공장터를 잡고 장비를 설치하는 과정에도 사업기회가 있다. 본사는 생산시스템의 기획과 설계, 시공관리를 통해 돈을 번다. 물론 관련 전문기업과 현지 시공사를 주도할 수 있어야 가능하다. 현지의 공급망에만 의존할 수 없다면 협력업체와 함께 진출해야 하는데 해외사업에 익숙하지 않고 현지금융 역량이 부족한 경우 경영지원이 필요하다. 최근의 비자 문제는 시작에 불과한데 지원서비스 자체가 하나의 사업이 될 수도 있다.

현지법인은 생산 라인을 위해 기계·장비와 원자재, 부품를 매입하는데 본사는 직접 수출 혹은 중개거래로 돈을 벌 수 있다. 거래대금을 받지 않고 현물출자로 삼아 자본을 확충하는 방법도 있다. 미국에 상대적으로 좋은 교역조건을 확보한 나라를 거점으로 삼을 수도 있는데 개도국에 대한 원조자금을 활용하고 신용여건이 불리한 사업 파트너에게 자금을 대여해서 실익을 얻을 수도 있다. 확대된 사업규모와 범위로 본사와 해외법인을 포함한 기업 전체의 시너지가 발생하고 정보력과 금융역량이 커지는 이득이 있다.

판매와 정비를 위해서는 현지의 딜러와 정비공장을 끌어들이고 부품과 기자재를 공급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완성차와 부품에 대한 인증, 보험 조건 협의, 운송 계약 등 현지 사정에 밀착한 자잘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힘들지만 사실은 현지에 ‘내가 잘되야 돈을 버는’ 가장 확실한 우군을 얻는 과정이다. 이들을 통해 시장 구석구석의 살아 있는 정보를 얻고 정치적 힘을 빌릴 수 있다.

참고로 반도체의 경우 대미 투자협력은 현지 빅테크 기업들과 데이터와 기술을 협력해서 산업패권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기회이고 바이오 사업은 특허와 인증을 손에 쥔 지배적 사업자들의 판에 진입할 계기로 만들 수 있다.
◆이해대립과 정치게임, 유능하면 기회
‘투자유치를 위한 법인세 감면’, 산업면 보도에 자주 나오는 말인데 세금 계산해서 투자 협력을 하는 경영자는 없다. 해외사업으로 돈을 버는 방법이 앞에서 본 것처럼 다양한 데다 법인세는 이익이 나야 낸다.

되는 사업에는 세계의 돈이 모이고 같이 뭐라도 해보자는 파트너들이 줄을 선다. 하지만 투자든 대출이든 남의 돈을 쓰려면 확실한 사업모델을 보이고 실천할 수 있는 믿음을 얻어야 한다. 위험을 견뎌낼 능력과 함께. 그래서 아무리 유능한 사업가라도 모든 기회를 다 잡을 수 없다. 어디까지 직접 맡아서 실행하고 어디서부터 협력할지 정하고 함께하는 파트너들을 주도할 전략이 필요하다.

사업의 구석구석에 촘촘하게 박힌 이해갈등이 정치로 이어지면 사업의 주도권은 고사하고 인질 신세가 되어 끌려 다닐 수도 있다. 미래가치 판단, 눈에 안 보이는 외부효과 등 사업 가치만 따져도 어려운데 지역과 국가의 이익을 내건 주장이 국민 정서와 표의 현실에 맞물리면 그야말로 정치판이 된다.

어지럽고 복잡한 판일수록 기회를 찾아 실현하는 유능한 경영자가 필요하다. 남들이 못하니 그 대가는 더욱 크다. 정치라면 짜증 나는 회장님, 이런 판을 헤쳐갈 용맹한 장수가 부담스러운 아드님은 망하기 전에 주식 팔고 편히 쉬시라.

박찬희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