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세대 선택 기준, ‘얼마나 감정적 연결이 잘되는가’
오프라인 팝업 열고, 트렌드 반영 제품 내놓는 까닭

매출 상위 브랜드, 2030세대의 취향 브랜드로 이어지지 않아
MZ세대, ‘안전한 선택’보다 ‘나만의 선택’ 중요

[커버스토리: 2030세대 최애 브랜드]
사진=무신사
사진=무신사
어떤 물건을 사는가도 중요하지만, 어디서 사는가도 중요하다. 2030세대가 취향을 드러내는 방식은 다양하다. 그중 하나가 유통 채널이다. 어떤 백화점을 갈 것인지, 어떤 편의점을 찾을지는 단순한 동선의 문제가 아니다. 이들이 고르는 장소에도 나름의 정체성이 있다. 평범한 소비 경로가 아닌 자기 표현이 이루어지는 무대인 셈이다.

2030세대의 선택은 예상대로였다. 명품을 살 때 가고 싶은 백화점으로 신세계를 꼽았다. 대기업 패션몰 대신 ‘무신사’에서 옷을 사겠다는 응답은 압도적이다. 올리브영에서 화장품을 사고 쿠팡과 네이버 대신 다이소에서 생필품을 사겠다는 것도 당연한 결과다. 이들은 또 샤넬보다 디올을 좋아하며 아디다스와 뉴발라스 중 하나를 고르라면 뉴발란스를 꼽았다.
그래픽=박명규 디자이너
그래픽=박명규 디자이너
신세계 강남점·더현대 서울, MZ 취향에 영향2030세대가 가장 선호하는 백화점으로는 신세계(55.2%)가 1위를 차지했다. 과반이 넘는 응답자는 입사가 확정되거나 첫 월급을 받은 뒤 신세계백화점에서 명품을 사겠다고 답했다. 백화점을 명품과 연결시킨 결과는 신세계의 압도적 득표였다.

조사 결과는 업계 매출 순위와 다르다. 올 상반기 기준 백화점 3사의 백화점 사업부문 매출은 롯데(1조5615억원), 신세계(1조2875억원), 현대(1조1791억원) 순이다. 그러나 조사 1위는 신세계, 2위는 현대가 차지했다. 롯데백화점에서 명품을 사겠다고 응답한 이들은 16.4%에 불과했다. 대표 점포에 대한 ‘경험의 차이’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신세계 강남점과 더현대 서울은 본점을 제치고 백화점의 상징이 됐다. 이곳에서의 경험은 다른 매장들을 오래된 매장이라는 인식을 만들었다.

롯데의 부진은 이어지고 있다. 백화점뿐 아니라 ‘대형마트 항목’에서도 낮은 점수를 받았다. 친구들과 1박 2일 여행을 준비할 때 어떤 마트에 갈 것이냐는 질문에 ‘이마트에서 장을 보겠다’는 응답자는 70.9%에 달했으며 홈플러스(17.2%)가 2위에 올랐다. 롯데마트를 선택한 2030세대는 11.9%에 그쳤다. 대형마트의 전반적 부진 속에 젊은 세대의 관심을 되찾아오는 것이 롯데마트 경영진에게 주어진 복잡한 숙제다.

편의점은 GS25가 선택받았다. 근처에 생겼으면 하는 편의점으로 GS25를 뽑은 응답자가 54.8%로 가장 많았으며 2위인 CU(40.4%)도 높은 응답을 기록했다. 세븐일레븐은 두 편의점에 밀렸다.

GS25는 ‘젠지 놀이터’라는 인식이 자리 잡으며 1위를 차지했다. GS25는 최근 일본 최대 잡화점 돈키호테와 협업해 편의점 최초로 팝업스토어를 열었고 업계 최초로 일본 뽑기 ‘이치방쿠지(一番くじ)’를 도입하기도 했다. 이치방쿠지는 ‘꽝 없는 뽑기’라는 뜻으로 일본에서 2003년 시작됐다. 한국에서는 ‘가챠’라는 명칭으로 알려져 있는 기계다. 회당 약 1만~1만5000원 정도의 가격에 참여할 수 있으며 원하는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의 굿즈 상품을 뽑을 수 있고 밥솥·컴퓨터 등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제품의 미니어처도 가챠 제품으로 유명하다.

패션 대기업은 온라인 영향력이 크게 줄며 2030세대와 멀어지고 있다. 젊은층은 소개팅이나 기념일 같은 중요한 날을 앞두고 옷을 준비할 때 가장 먼저 무신사(46%)를 떠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무신사 매출 가운데 2030세대 비중은 과반 이상이며 전체 고객 가운데 2030세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70%에 달한다.

지그재그(14.8%)와 에이블리(12.5%)도 무신사 뒤를 이어 상위 3위권에 안착했다. 이들 3개 플랫폼 공통점은 맞춤형 큐레이션을 통한 개인화 서비스 제공 등으로 충성도 높은 팬덤을 확보했다. 또 트렌드에 빠르게 대응하고 직관적인 UI(사용자 인터페이스) 등을 사용하는 것도 인기 요인이다. 편리한 반품 서비스도 한몫한다. 구매한 제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몇 번의 클릭만으로 반품이 가능하다.

반면 LF몰(7%), 신세계V(6.7%), 더한섬닷컴(2.9%) 등 기존 대기업들의 자체앱은 한 자릿수 응답이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이 전개하는 SSF샵이 그나마 10% 응답을 확보하며 겨우 두 자릿수를 확보했다.
그래픽=박명규 디자이너
그래픽=박명규 디자이너
화장품은 올리브영, 생활용품은 다이소다이소가 ‘온라인의 편의성’을 이겼다는 점도 흥미롭다. 생활 잡화를 구매하기 위해 어떤 곳을 이용하냐는 질문에 다이소는 56%의 응답이 모였다. 나머지 선택지가 모두 온라인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다이소의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다이소의 강점은 평균 330㎡(약 100평) 이상의 매장 면적과 전국 1520여 개 매장의 접근성이다. 최대 5000원을 넘지 않는 가격과 다양한 제품군을 확보한 점도 주효하다.

다이소에 밀린 쿠팡(26.4%)과 네이버(15.1%)는 2위와 3위를 차지했다. 가성비 플랫폼으로 알려진 테무·알리(2.5%)의 실제 사용은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알리, 테무의 영향력이 작년에 비해 크게 줄어든 것은 제품의 질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업데이트 이후 ‘쉰내 나는 인스타’(젊은층이 즐겨 사용하는 인스타그램을 따라하고 싶었지만 노년층만 사용하는 SNS가 됐다는 조롱)라는 비판을 받는 카카오톡은 여전히 ‘선물하기’의 강자(74.8%)로 뽑혔다. 2030세대의 취향을 알아보기 위해 ‘센스 있어 보이기 위해 선택할 플랫폼’이라는 전제를 달았지만 카카오톡의 편의성을 이길 수 있는 곳은 나타나지 않았다. 2위인 무신사·29CM(10.1%)와 격차는 여전히 컸다. 네이버 선물하기(9.4%), SSG닷컴·W컨셉(5.7%) 등이 뒤를 이었다. 편의성과 상품의 다양성 면에서 선발주자의 혜택을 톡톡히 누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올리브영은 2030세대의 뷰티 놀이터다. 화장품 등 일상 속 ‘작은 보상’을 위해 찾고 싶은 매장으로 올리브영을 택한 응답자는 64%로 나타났다. 올리브영은 K뷰티 신상을 빠르게 선점하고 인기 캐릭터와의 협업 등을 적극적으로 전개하며 2030세대를 흡수했다. 또 SNS에서 화제가 되는 뷰티 브랜드 입점을 추진하며 2030세대의 ‘FOMO’(혼자 유행에 뒤처질 것 같은 불안감) 심리를 자극한 것도 성공 요인이다. 동시에 올리브영은 주기적인 할인 행사로 가성비와 가심비를 동시에 충족했다. 분기별로 진행하는 ‘올영세일’은 2030세대가 관심을 가지는 이벤트 중 하나로 꼽힌다.

다만 500~5000원의 저가 화장품을 판매하는 다이소가 36%의 선택을 받았다는 점은 특징적이다. 저렴한 화장품을 선호하는 10대들이 아닌 2030세대 설문에서 이 같은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화장품 판매 채널에서 올리브영의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한 것이라는 평가도 과하지 않다.

배달앱에서는 쿠팡이츠의 약진이 돋보였다. 2019~2020년 배달의 민족은 독과점 사업자로 통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배민과 요기요의 기업결합을 승인하면서 이들 회사의 점유율 합계(2019년 거래액 기준)가 99.2%에 달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쿠팡이츠가 지난해부터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쿠팡이츠는 유료 멤버십 회원을 대상으로 배달비 0원 프로모션 등을 펼치고 있다. 실제 올해 2분기 쿠팡이츠 부문이 포함된 쿠팡의 성장사업 매출은 1조6719억원으로 역대 최대 분기 매출을 달성했다.

그 결과 이번 조사에서 배달의민족을 선택하겠다는 응답은 67.4%, 쿠팡이츠는 32.6%로 집계됐다. 쿠팡이츠의 영향력이 더 확대될 경우 2030세대의 응답 비율이 향후 50%까지 늘어날 확률도 높다. 마케팅뿐 아니라 배민이 가진 ‘독점적’ 이미지도 약점으로 작용했다.
사진=이랜드
사진=이랜드
샤넬 대신 디올…나이키 이긴 뉴발란스자신의 ‘미적 스타일’을 반영한다고 생각하는 명품으로는 ‘디올’(27.3%)이 1위를 기록하며 ‘샤넬’(25.5%)을 앞섰다. 샤넬은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디자인과 브랜드 고유의 세계관이 있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명품’으로 통했다. ‘예술 애호가’였던 샤넬 창업자 가브리엘 샤넬이 발레부터 음악, 연극, 미술, 문학 등 분야에 상관없이 다양한 영역에 금전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는 점도 샤넬의 헤리티지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2030세대에는 샤넬의 전략이 통하지 않고 있다. 과도한 가격 정책, 사라진 희소성 등이 큰 패착이다. 실제 샤넬은 한국에서 매년 2~4차례씩 가격 인상을 이어오고 있다. 가품이 많다는 점도 샤넬 이미지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세관 당국에 적발된 가품 수입 규모의 90%는 중국산으로 드러났고 브랜드별로는 샤넬이 가장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그 자리는 디올이 대체하고 있다. 디올은 한국에서 해마다 1조원에 가까운 매출을 올리고 있다. 상대적으로 트렌디하면서도 세련된 제품 라인업이 2030세대의 취향을 저격했다. 에르메스(23.4%), 루이비통(15.4%) 등이 그 뒤를 이었다.

눈에 띄는 점은 명품에 대한 취향이 다른 카테고리보다 더 다양하고 세분화된다는 점이다. 다양한 기타 응답이 나왔다. 셀린느, 프라다, 보테가베네타, 구찌, 생로랑, 버버리, 미우미우 등은 선택지에 없었지만 설문 참여자가 직접 입력한 브랜드들이다. 동시에 명품을 좋아하지 않는 이들도 많았다. 기타 응답 가운데 25.6%가 ‘없음’을 적었다.

운동화 선호도 조사 1위는 여전히 나이키가 차지했지만 그 응답(45.9%)은 절반을 넘지 못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결과다. 가볍게 뛰거나 산책할 때 어떤 운동화를 신을 것이냐는 질문에 뉴발란스는 22.4%의 응답을 받아 아디다스(15.9%)를 넘어섰다. 뉴발란스의 인기에는 한국에서 유통과 제품 관리를 담당하는 이랜드의 역할이 컸다. 최근 1조원의 매출을 넘어선 뉴발란스는 이랜드가 국내 운영을 맡은 첫해(2008년)만 해도 250억원의 매출에 그쳤다. 이랜드는 뉴발란스의 스포츠 헤리티지를 바탕으로 국내 고객 취향을 반영한 제품을 선보였고 소비자직접거래(D2C) 중심 직영 운영을 통해 서비스 품질을 관리한 게 주효했다. 젊은 세대가 모이는 중심지 곳곳에 집중적으로 매장을 내며 소비자들을 끌어모았다. 물론 스티브 잡스가 프레젠테이션 때 뉴발란스를 신고 나온 것이 폭발적 판매의 도화선이 됐지만.
사진=CJ올리브영
사진=CJ올리브영
매출 상위 브랜드, MZ 선택 받는다는 보장 없어2030세대는 ‘얼마나 감정적 연결이 잘되는가’를 브랜드 선택 기준으로 삼는다. 브랜드를 통해 취향을 표현하고 라이프스타일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활용한다. 소비자와의 ‘정서적 거리’가 가까울수록 충성도는 올라간다. 브랜드가 오프라인 팝업스토어를 열어 고객과의 접점을 늘리고 트렌드를 반영한 제품을 적극적으로 선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매출 상위 브랜드가 반드시 2030세대의 취향 브랜드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한주영 교수는 “매출 상위 브랜드들은 강력한 인지도와 신뢰도를 보유해 ‘안전한 선택’이 될 수 있지만 ‘누구나 알고 누구나 쓰는 브랜드’로 인식되기도 한다”며 “그러나 ‘안전한 선택’은 2030세대의 선택 기준이 아니다. 나의 감성과 취향이 투영된 ‘나만의 선택’이라는 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리딩 브랜드들은 대중적인 광고, 많은 매장 등을 통해 시장 인프라 권력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2030세대는 자신을 더 잘 표현해주는 특정 브랜드에 동질감을 느끼고 충성심을 가진다”며 “나를 보다 차별적으로 드러내고 싶은 ‘모험적 선택’을 병행하는 경우가 이들이 가진 소비 태도”라고 덧붙였다.

2030세대는 단순히 소비자가 아니라 브랜드의 문화코드에 공감하고 함께 참여하며 만드는 경험을 중요하게 여기는 특징이 있다. 2030세대가 선호하는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좋은 제품’을 넘어 끊임없는 가치 제공, 경험, 새로움이 필요하다. 이들은 제품보다 철학을 사고 싶어 하는 세대이기 때문에 ‘브랜드의 존재 이유’를 명확하고 일관되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