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물건 분석 난이도 낮은 '아파트' 쏠림 심화
경매시장이 달아오르고 있다. 아파트 시장이 다시 ‘불장’에 돌입한 영향이다. 최근 경매 물건이 늘면서 그만큼 기회도 넓어졌다. 수십 명이 경쟁해 낙찰가격이 감정가의 100%가 넘는 아파트도 연이어 등장하고 있다.
물론 이 같은 관심은 서울 아파트 일부에만 쏠리고 있다. 통상 ‘저렴한 물건’을 찾던 경매 투자자들의 심리가 꺾인 탓에 오피스텔, 다세대·연립, 상가 같은 비(非)아파트 물건은 여전히 유찰을 거듭하고 있다. 6·27 대책 등으로 대출 규제가 대폭 강화된 데다 유명 경매학원의 투자사기 의혹 등으로 투자자들의 불신이 커졌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현금 부자들이 복잡한 물건 분석 없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아파트 경매에만 응찰이 집중되면서 경매 강의 시장도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강사들 간 경쟁이 심화하면서 수강생을 끌기 위한 ‘미끼상품’에 주의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100% 낙찰가율 노크하는 서울 아파트
경매 낙찰가율은 최저입찰가(감정가) 대비 매각가격을 의미하는 것으로 낙찰가율이 100%라면 감정가대로 낙찰됐다는 뜻이다. 부동산 감정가는 감정 당시의 시세대로 평가받는 사례가 많다. 법원 물건 감정은 통상 매각기일보다 반년 정도 앞서기 때문에 부동산 상승기에는 감정평가액이 당장의 시세보다 저렴해진다.
서울에서도 낙찰가율이 높은 지역은 강남권과 소위 ‘한강벨트’에 속한다. 지지옥션에 따르면 올해 9월 낙찰가율 10위권 물건이 위치한 자치구는 강남구, 송파구, 성동구, 용산구, 동작구, 광진구 등 5개에 불과했다. 모두 강남과 한강변이다.
1위는 압구정 미성아파트, 2위는 송파구 잠실동 리센츠 아파트(전용면적 84㎡), 3위는 성동구 하왕십리동 텐즈힐(전용면적 84㎡)이 차지했다. 용산구에서는 이촌동 현대한강(전용면적 59㎡), 동작구에서는 상도동 상도효성해링턴플레이스(전용면적 84㎡)가 가장 높은 낙찰가율을 기록했다. 리센츠 아파트는 감정가 24억9000만원으로 33억6999만원에 낙찰됐다. 27명이 경쟁한 끝에 감정가보다 9억원 가까이 높은 가격에 주인을 찾았다.
이주현 지지옥션 연구원은 “강남권과 마용성(마포·용산·성동)에 집중되던 경매 수요가 인근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다”며 “집값 시세와 마찬가지로 불과 한두 달 사이 경매시장에 불이 붙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달리 같은 시기 경기, 인천 아파트 낙찰가율은 각각 86.9%, 78.6%를 기록했다. 아직은 뚜렷한 상승추세가 보이지 않는 상태이다. 이 연구원은 “서울 쏠림 현상이 강하게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거주 의무 없는 경매, 대출 안 나와도 응찰
다만 대출 규제는 그대로 적용된다. 6·27 대책에 따라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시 6개월 내 전입 의무가 생기며 주담대 한도도 최대 6억원으로 제한된다. 9·7 대책에 따라 다주택자는 물론 주택 매매·임대사업자에게는 주택담보대출이 나오지 않는다. 즉 일반 매매와 마찬가지로 고가 아파트 경매 역시 수십억대 아파트를 구매할 수 있는 ‘현금 부자’만이 접근할 수 있는 시장인 것이다.
반면 빌라, 다가구, 상가, 오피스텔 같은 비아파트 물건은 대출 등 부동산 규제의 여파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 전세사기, 경기 불황으로 인한 폐업 등으로 대출한도가 예전같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에서도 이들 물건의 수는 늘고 있지만 낙찰률과 낙찰가율은 하락세이다.
그중 빌라 시장은 양극화가 심하다. 일반적인 다세대, 연립과 달리 ‘미래 아파트’가 될 만한 재개발 물건의 인기는 높다. 올해 내내 서울 빌라의 낙찰률은 20%대를 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낙찰가율도 9월 들어서는 올 3월 이후 반년 만에 70%대로 낮아졌다.
이 같은 평균치와 달리 상위권 경매 물건은 아파트보다 외려 더 높은 낙찰가율을 기록하고 있다. 9월 낙찰가율 1위 물건은 마포구 합정동 소재 연립이었는데 매각가율이 189.4%에 달했다. 감정가의 두 배인 셈이다. 감정가는 2억6300만원으로 일반적인 구축 다세대 수준이었으나 응찰자 52명이 몰리면서 결국 4억9800만원에 매각됐다.
이 연립이 위치한 합정동 369 일대는 소규모 정비사업이 추진돼 2022년 서울시 3차 모아타운 후보지로 선정됐다. 마포 한강변에 위치한 데다 복합화력발전소였던 당인리 발전소가 지하화되면서 모아타운 사업지와 인접한 지상 공간에 공원과 문화시설이 조성되고 있다.
9월 낙찰가율 2위는 용산구 후암동 소재 다세대였는데 후암동 특별계획구역에 속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 역시 낡은 빌라이지만 낙찰가율은 163%를 기록했다. 감정가는 4억500만원, 매각가는 6억6000만원이다. ‘무피 투자’ 유혹 여전…학원가 과열경쟁 ‘주의보’
이처럼 일부 물건의 인기에도 불구하고 경매 강의 시장은 찬바람을 맞고 있다. 2022년까지 부동산 활황기에 우후죽순 생겼던 학원들도 상당수 문을 닫았다. 그래도 부동산 자체에 대한 관심이 지속되며 유지되던 수강생 수가 급감한 탓이다.
투자자 입장에선 경매를 공부해도 부동산 규제와 금리 문제로 실제 응찰에 나서기 꺼려졌다. 그나마 인기 있는 아파트 경매나 재개발 다세대 경매는 다가구나 상가, 공장, 토지와 달리 물건 분석 등의 난이도가 높지 않아 자금력을 갖춘 수요자에게는 투자 접근성이 높다.
거기다 때마침 터진 경매사기 의혹 문제로 시장은 더욱 차게 식었다. 경매사기 의혹이란 G경매학원에서 수강생들에게 투자가치가 없는 물건을 높은 가격에 매입하게 한 뒤 컨설팅 비용 등을 챙겼다는 것이다.
2020년 이 학원 관계자들이 “인천 영종도 옆 무인도를 매입해 개발하면 10배 수익을 볼 수 있다”며 수강생에게 총 94억원을 투자하도록 했던 ‘물치도 사건’이 유명하다. 해당 부지에 대한 개발사업은 진행되지 않았고 경매학원 측이 부지를 담보로 받았던 대출을 갚지 못하게 되면서 결국 토지가 경매에 넘어갔다.
정상렬 천자봉플러스 대표는 “최근에도 성공한 투자 사례가 없지 않다”며 “그러나 한때 우후죽순 생긴 경매 강의를 듣고 부동산에 잘못 투자했다가 물린 사례가 다수 있으며 그로 인해 경매에 마음을 닫아버린 투자자도 많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는 “강사들 간 경쟁이 심하다 보니 우선 무료 강의를 통해 고액 강의 또는 컨설팅 결제를 유도하거나 투자자들이 솔깃할 수 있는 일명 ‘무피 투자’를 가르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어 수강생들의 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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