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은진 농인 수어통역사
손짓 하나로 세상의 벽을 허무는 직업 ‘수어통역사’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농인과 청인(聽人·비장애인) 간의 가교 역할을 한다. 약 5,000개의 수어 단어를 통해 농인들에게 세상의 소리를 전하는 그들은 급변하는 새로운 언어와 표현법을 손과 표정으로 익혀야 한다.황은진 수어통역사는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어 강사·통역사로 활동해 왔다. TV에서 뉴스를 전하고 때로는 강단에서 보여 지는 그녀의 손짓은 언어 전달을 넘어 예술에 가까운 몸짓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녀는 통역 현장 뿐만 아니라 'KASLI한국수어통역사협회' 이사를 맡고 있다. KASLI한국수어통역사협회는 농통역사와 청통역사가 함께 회원으로 활동하며, WASLI세계수어통역사협회의 국가회원이기도 하다.
황 통역사를 만나 수어를 통해 세상을 연결하는 ‘수어통역사의 세계‘를 들어봤다.
*황은진 수어통역사의 인터뷰는 고경희 KASLI 한국수어통역사협회 협회장이 도움을 주셨습니다.
“예전에는 ‘농아인’이라는 말을 많이 썼습니다. 하지만 ‘아(啞)’에는 ‘말을 못한다’는 부정적인 의미가 담겨 있죠. 사실 농인마다 말할 수 있는 정도가 다 다르기 때문에 지금은 ‘농인(聾人)’이라는 표현이 맞습니다. 저도 농인입니다.”
언제부터 농인으로 살아오셨나요.
“부모님 두 분 모두 농인이세요. 태어나서 두 돌쯤 되었을 때 제가 소리에 반응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부모님께서 병원에 데리고 가 알게 됐죠. 저희 가족은 동생 포함해 모두 농인이에요. 어릴 적엔 놀림도 많이 받았지만 요즘엔 SNS에 ‘농인 가족이 부럽다’는 글도 종종 올라오더군요. 저는 농인 가족으로 태어난 게 행복해요. 자연스럽게 수어를 제1 언어로 배울 수 있었으니까요.”
그럼 자연스럽게 집에서 수어를 익혔겠군요.
“그렇죠. 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쓰면서 자연스럽게 배웠는데, 제대로 된 수어는 학교(영락농인교회)에 들어가 배웠죠. 농인들이 집에서 쓰는 수어는 약간 달라요. ‘홈사인(Home Sign)’이라고 해서 집 안에서만 쓰는 고유의 수어가 있거든요. 줄임말처럼요. 나중에 사회에 나와 보니 다른 표현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표준 수어를 익히게 됐어요.”
수어에도 방언이 있나요.
“재미있게도 사투리가 있어요.(웃음) 예전에 전라도 농인들과 식당에 간 적이 있었는데, 수어로 ‘코딱지’를 표현하면서 먹겠냐고 하더라고요. 식당까지 와서 왜 코딱지를 먹으라고 할까 생각하며 안 먹겠다고 했죠. 근데 알고 보니 전라도에선 코를 만지는 수어가 콩나물이었던 거예요. 처음 알게 됐죠.(웃음) 우리가 알고 있는 사투리처럼 경상도, 전라도, 제주도의 수어 방식이 조금씩 달라요. 젊은 농인 친구들이 쓰는 신조어도 있는데, 저희 같은 사람들은 못 알아듣죠.(웃음)”
그럼 영어·일본어 수어처럼 외국 농인들이 하는 수어도 다르겠네요.
“수어가 만국공통어로 알고 있는 분들도 있는데, 사실은 다 다르답니다. 사실 농인들은 제스처에 능하기 때문에 언어가 달라도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하죠. 특히 농인들이 해외에서 청인들과 대화를 시도할 때도 손짓·발짓을 잘 써 오히려 더 쉽게 소통하는 경우가 많아요. 참고로 전 한국 수어뿐 아니라 미국·중국 등 국제 수어도 조금씩 사용할 수 있어요.”
학교생활은 어떠셨나요.
“부모님은 농학교 출신인데, 당시 부모님이 다니던 농학교의 선생님들은 수어를 완벽히 하지 못하던 시절이었어요. 그래서 저와 동생은 그런 환경에서 자라게 하고 싶지 않아 일반(청인) 학교에 다녔어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입 모양을 보며 말 읽기 훈련을 했고, 수업 중 선생님이 말하면 친구가 필담으로 도와주는 식으로 학교생활을 했어요.”
“지금은 수어통역사나 속기를 지원해 주는 학교가 늘어나고 있어요. 7년 전 사회복지대학원에 진학했을 때 처음으로 통역 서비스를 받아봤는데, 그때의 감격을 아직도 잊을 수 없어요.(웃음)”
대학 전공도 궁금하네요.
“원래 꿈이 농학교 교사라 지원했는데, 대학 입시에 떨어지면서 치기공과로 바꿔 진학했죠. 대학 때 수어동아리에서 수어를 가르쳤던 게 수어강사의 첫 시작이었어요. 졸업 후엔 낮에는 치기공사로, 저녁에는 수어 강사로 일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혼 후 아이를 키우면서 치기공사 일을 계속하기는 어려웠어요. 그래서 수어 강사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고, 이후 번역·통역 업무까지 함께 하며 지금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수어 강사로는 약 20년, 농인 수어통역사로는 약 17년째 활동하고 있습니다.”
수어와 관련된 여러 일을 하셨는데, 예전과 비교해 근무 환경이나 처우는 나아졌나요.
“예전보다 훨씬 나아졌죠. 예전에는 근무 환경이 매우 열악했고, 수어 통역이나 교육을 하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어요. 하지만 조금씩 개선되고 있습니다. 특히 수어통역사 센터에 소속된 농인 통역사들의 처우가 점점 좋아지고 있고, 안정적인 근무 환경을 갖추려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수어 강사들도 처우가 개선되는 추세예요. 물론 아직 모든 부분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희망적입니다.”
수어통역사를 하려면 자격증을 취득해야 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자격증 취득 과정은 어렵지 않았나요.
“전 2007년에 농통역사 자격증을, 2016년 제도가 생긴 이후에는 한국수어교원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사실 농인들이 자격증 시험에 더 유리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렇진 않아요. 오히려 더 어려워요. 시험은 문장을 보고 수어로 통역하기, 농식수화영상을 보고 제시된 질문에 답하기, 청인문장식 수화를 보고 제시된 질문에 답하기 등의 실기, 필기시험까지 포함돼 있습니다. 이 중에서 농인에게 가장 큰 장벽은 필기예요. 한국어가 제1 언어가 아니기 때문에 농인들에겐 외국어를 배우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그래도 다행인 건, 최근에는 영상 기반 시험 방식이 일부 도입되면서 농인 응시자가 겪는 불이익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는 점입니다.”
수어를 할 때 표정이 특히 인상적이네요. 수어에서 표정은 어떤 의미인가요.
“표정과 같은 ‘비수지기호(非手指記號·손이 아닌 얼굴, 머리, 몸 등 비수지 부위를 활용한 표정이나 동작)’는 음성언어의 억양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같은 ‘아프다’라는 표현이라도 표정이 무심하면 그냥 가볍게 아픈 것으로 느껴지고, 얼굴을 찡그리며 몸을 크게 표현하면 심한 통증으로 받아들여져요. 음성언어에서는 목소리 톤과 강세, 속도 같은 요소로 감정을 전달하는데, 수어에서는 그것이 표정과 몸짓으로 드러나는 거죠. 그래서 수어에서는 손 모양이나 각도 못지않게 표정이 매우 중요한 요소예요.”
“어느 날 한 어르신(농인)이 물어볼 게 있다며 절 찾아 오셨어요. 은행에서 날라 온 통지서를 가지고 오셨는데,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셨죠. 글을 모르는 분이었는데, 은행에서 날라 왔다는 말에 덜컥 겁을 먹었던 모양이에요. 근데 알고 보니 ‘휴먼예금조회’라는 안내문이었죠. 어르신께 설명 드리니 그제야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웃으며 돌아가셨어요.(웃음)”
청인과 농인 수어통역사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청인 수어가 다소 평면적이라면, 농인 수어는 공간과 방향, 표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때문에 훨씬 입체적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전 농인 수어를 ‘3D’라고 표현해요. 같은 내용이라도 농인이 통역하면 표정의 변화가 더 생생하고 풍부하게 전달되거든요. 코로나19 시기 정부 브리핑을 예로 들면, 한국에서는 청인 통역사가 수어 번역을 했지만 미국·캐나다 등 선진국에서는 농인 통역사가 직접 옆에 서서 통역을 했어요. 이 둘의 차이점은 뉴스를 접하는 농인들이 가장 큽니다. 청인 통역사가 수어를 했을 때 알아듣지 못하는 내용이 농인 통역사의 수어로는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죠. 정보를 듣는 농인의 입장에서는 그것보다 중요한 게 없죠.”
정부, 국회 브리핑이나 TV 뉴스에 나오는 수어통역사는 농인통역사인가요.
“대부분 청인 통역사예요. 2년 전 정부 브리핑을 위해 농인 통역사가 선발된 적이 있었는데, 시범적 참여 이후 보이질 않아요.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너무 아쉽죠. 해외에서는 브리퍼 옆에서 농인 통역사가 바로 농인의 감정과 표정까지 포함해 통역을 해주고 있는데, 우리도 해외 선진국처럼 바뀌는 날이 오길 바라고 있어요.”
어릴 적부터 수어를 접해서 대부분의 농인들은 ‘수어통역사’가 되는 게 꿈이 아닐까 싶은데 어떤가요.
“꼭 그렇진 않아요. 마치 한국어를 잘한다고 해서 누구나 한국어 강사가 되고 싶어 하는 건 아닌 것 처럼요.(웃음) 농인들도 각자 자기 전문 분야나 기술이 있어요. 농인이니까 무조건 농통역사를 꿈꾸진 않아요.”
장애의 핸디캡이 있지만 다른 면에선 청인들보다 월등한 부분도 있을 것 같아요.
“눈치가 굉장히 빨라요. 소리에 의존하지 않다 보니까 시야가 넓어지고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거든요. 실제 농인들이 운전을 하면 교통사고율이 청인보다 낮다고 해요. 주변을 눈으로 계속 살피니까 그만큼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다는 거 아닐까요. 시각적인 집중력과 관찰력이 워낙 뛰어나다보니 틀린 그림 찾기를 굉장히 잘해요.(웃음)”
농인 수어통역사에게는 어떤 능력이 가장 필요할까요.
“가장 중요한 건 농인과 청인, 두 문화를 모두 잘 이해하는 것입니다. 수어통역사는 단순히 단어를 옮기는 사람이 아니라, 양쪽의 사고와 표현 방식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기 때문이죠. 전문 지식도 중요해요. 예를 들어, 병원에서 청인이 ‘간경화’라고 말하면, 농인에게는 그 단어만 보여줘서는 이해가 어려울 수 있어요. 이럴 땐 '간이 딱딱해져서 제 기능을 못 하는 병'이라고 풀어 설명해 줘야 농인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죠. 이처럼 상황과 청자의 수준에 맞게 표현을 바꿔 전달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전문분야의 공부는 필수예요.”
“그럼요. 요즘 아이들이 쓰는 신조어를 알아듣기 위해서라도 계속 공부를 해야 돼요. 그래서 전 단어 노트를 만들어 새로운 단어나 표현을 발견할 때마다 기록해 두고 있어요.”
말씀하신대로 의료나 법률 등 전문 분야별 수어통역사가 필요해 보이네요. 국내에서는 전문통역사, 또는 양성기관이 있나요.
“한국은 아직 전문 분야별 수어통역사가 따로 있진 않아요. 양성기관이나 과정도 전무한 상태고요. 반면, 미국은 법원 전담, 형사 전담, 의료 전담 등 분야별 전문가로 분류돼 활동 중이에요. 우리도 병원 전문 수어통역사와 같은 전문인력을 양성할 수 있는 날이 오겠죠.(웃음)”
수어에는 단어가 얼마나 있나요.
“국내 수어사전에는 지금 약 5,000개 정도의 단어가 등재돼 있어요. 그중 단일어만 따지면 더 적죠. 그래서 통역할 때는 단어 그대로 옮기기보다, 조합해서 새로운 표현을 만들어내야 하니까 어려워요. 반면에 수어 선진국들은 단어 수가 훨씬 많아요. 우리도 수어 단어 개발이 필요한데, 체계적으로 연구·개발하기 쉽지 않다는 게 문제입니다. 현재 의료 수어 연구만 해도 1년 단위로 입찰사업을 진행하다 보니, 올해는 A회사가 맡고 내년에는 B회사가 또 비슷한 연구를 반복하는 식이에요. 그러다 보니 축적이 잘 안 되고 개발이 더디죠. 물론, 단어 수가 많지 않은 건 한계지만, 그렇다고 농통역사들이 표현을 못 하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수많은 한국어 표현들을 결국 수어로 풀어내고 전달한다는 점은 정말 대단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해외와 비교해 한국의 수어통역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요.
“아시아에선 한국이 최고 수준이에요. 가장 큰 계기는 한국수화언어법 덕분이에요. 한국수화언어법은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제정된 수화언어법으로, 수화를 하나의 언어로 인정한 것이죠. 덕분에 아시아에서 수어 수준, 실력, 시스템 모두 가장 앞서 있는 편입니다. 다만 유럽이나 미주와 비교하면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아요. 시스템이나 전문 인력 양성, 제도적 뒷받침 측면에서는 해외 선진국에 비해 더 발전해야 할 부분이죠.“
이 분야 역시 AI(인공지능)의 진입이 관심도가 높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향후 수어통역사의 전망은 어떻게 보시나요.
“AI가 사람이 하는 수어를 따라올 수 있을까요? 둘의 가장 큰 차이는 비수지 기호의 활용 때문이에요. 키오스크 같은 단순한 안내에서는 AI가 충분히 활약할 수 있겠지만, 병원 통역이나 복잡한 상황에서는 감정, 방향, 공간 활용 등 비수지 기호가 필요합니다. AI는 로봇처럼 정해진 동작만 할 뿐, 사람처럼 뉘앙스와 감정을 살려 통역할 수 없거든요. 앞으로도 AI로봇보다 인간 통역사가 더 주목받는 시대가 되지 않을까요.(웃음)”
[사진=김기남 기자]
[방민우 대학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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