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공모·목적·매매행위 입증 안 돼”
검찰 별건 수사 관행도 이례적 비판

[법알못 판례 읽기]
SM엔터테인먼트 시세조종 공모 의혹을 받은 카카오 창업자 김범수 경영쇄신위원장이 10월 21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무죄가 선고된 뒤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문경덕 한국경제신문 기자
SM엔터테인먼트 시세조종 공모 의혹을 받은 카카오 창업자 김범수 경영쇄신위원장이 10월 21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무죄가 선고된 뒤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문경덕 한국경제신문 기자
서울남부지방법원 형사합의15부(부장판사 양환승)는 10월 21일 SM엔터테인먼트 시세조종 공모 혐의로 기소된 카카오 창업자 김범수 미래이니셔티브 센터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같은 혐의로 기소된 배재현 전 카카오 투자총괄대표, 홍은택 전 카카오 대표, 김성수 전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대표 등 8명도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시세조종 성립의 핵심 요건인 ①매매 행위 양상 ②시세조종 목적 ③공모 사실 등 세 가지를 모두 충족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특히 검찰이 공모의 결정적 증거로 제시한 이준호 전 카카오엔터테인먼트 투자전략부문장의 진술을 “별건 수사 압박 속에 나온 허위 진술”로 보며 검찰의 수사 관행을 강하게 비판했다.

하이브 vs 카카오, SM 경영권 쟁탈전의 전말

이번 사건은 2023년 2월 하이브와 카카오 간 SM엔터테인먼트 경영권 인수 경쟁 과정에서 발생했다.

하이브는 2023년 2월 10일 SM 주식에 대해 주당 12만원에 공개매수를 신청했고 청약 기간은 2월 28일까지였다. 카카오는 이미 2022년 11월 SM과 사업 협력 계약을 체결하고 신주 및 전환사채 인수 계약을 맺은 상태였다.

검찰은 카카오가 하이브의 공개매수를 무산시키기 위해 주가를 12만원 이상으로 유지하려 했다고 판단했다. 검찰에 따르면 카카오는 원아시아파트너스와 공모해 세 차례에 걸쳐 대규모 장내 매수를 진행했다.

2월 16~17일 원아시아파트너스 측 자금 약 1000억원으로 SM 주식 약 42만 주를 매수했고 2월 27일 약 90억원으로 7만5000주를 추가 매수했다. 공개매수 마감일인 2월 28일에는 카카오와 카카오엔터가 약 1690억원으로 59만5252주를 집중 매수했다.

검찰은 이러한 매수로 SM 주가가 2월 15일 12만2600원에서 2월 28일 종가 12만7900원으로 상승했으며 특히 2월 28일 카카오 투자 테이블에서 배 전 대표가 “하이브의 공개매수가 실패해야 카카오가 SM 경영권을 인수할 수 있다”며 주가 방어를 제안했고 김 창업자가 이를 최종 승인했다는 점을 핵심 증거로 제시했다.

카카오는 2023년 3월 SM엔터 지분 39.87%를 확보해 경영권을 인수했다. 그러나 같은 해 4월 검찰과 금융감독원이 카카오 본사 및 SM엔터를 압수수색하면서 수사가 시작됐다. 8월에는 금감원이 김 창업자 사무실을 압수수색했고 9월 법원은 김 창업자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11월에는 배 전 대표가 구속됐고 금감원이 김 창업자를 검찰에 송치했다. 김 창업자는 2024년 7월 구속됐다가 5개월 만에 석방돼 재판받다 이번에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시세조종성 주문 특성 없어

재판부는 카카오 측의 매매 행위가 시세조종의 전형적 특성을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카카오의 고가 매수 주문은 주가 하락 여부와 무관하게 지속됐고 일부는 21분가량의 긴 간격을 두고 제출됐다”며 “이는 물량을 매집할 때 통상적으로 나타나는 주문 형태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시세조종을 목적으로 한 매매라면 주가가 하락할 때 집중적으로 개입해 가격을 끌어올리는 패턴이 나타나야 하는데 카카오의 매수는 이러한 특성을 보이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검찰은 카카오가 고가 매수, 물량소진주문, 종가 관여 주문 등 전형적인 시세조종 수법을 사용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매수 주문의 시간 간격이 상당히 길었다는 점을 주목했다.

재판부는 “대규모 장내 매수로 인해 주가가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는 시세조종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며 “실제로 물량을 확보하려는 목적에서 이뤄진 정상적인 투자 행위와 구별되는 인위적 조작의 의도가 명확히 입증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영권 인수 필요성 불분명

재판부는 카카오가 반드시 SM 경영권을 인수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당시 카카오 측에 SM 경영권 인수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카카오 투자 테이블에서 은밀한 경영권 인수가 정해지거나 공개매수 저지 논의, 시세조종 공모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카카오는 이미 SM과 사업 협력 계약을 체결한 상태였고 경영권을 확보하지 못하더라도 기존 협력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선택지가 있었다는 것이다.

검찰은 카카오가 하이브의 공개매수를 저지하기 위해 주가를 12만원 이상으로 유지하려 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물량 확보 목적’ 진술이 합당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카카오가 시세조종을 통해 하이브가 제시한 공개매수 가격 이상으로 주가를 고정하려 했다면 실무자들이 이를 공모하는 내용이 통상적으로 드러나야 하지만 그런 정황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구체적 공모 증거 없어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공모 사실을 입증할 구체적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배 전 대표와 강호중 리더의 통화 기록, 투자 테이블 회의록, 내부 메시지 등을 모두 검토했지만 시세조종을 공모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

검찰이 제시한 사실상 유일한 공모 증거는 이준호 전 카카오엔터 투자전략부문장의 진술이었다. 검찰은 이 전 부문장이 배 전 대표와 강 리더의 통화에서 김 창업자가 “평화적으로 이제 가져오라”고 말했다는 진술을 시세조종 지시의 증거로 내세웠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진술의 신빙성을 전면 부정했다. 재판부는 “이 전 부문장의 진술이 없었다면 피고인들이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고 일부는 구속도 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별건을 강도 높게 수사하면서 다른 사건을 수사하는 방식은 진실을 왜곡할 수 있다”고 검찰의 수사 방식을 강하게 비판했다.

재판부는 이 진술이 이 전 부문장 관련 검찰의 ‘바람픽쳐스 고가 인수’ 별건 수사 압박 속에서 나온 허위 진술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시세조종 공모는 범죄의 핵심 요소로서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명확히 입증돼야 한다”며 “이번 사건에서는 그러한 수준의 증거가 제시되지 않았다”고 결론지었다.


[돋보기]
정치적 타깃 수사 논란 재점화

카카오는 이번 무죄 판결로 2년 8개월간 이어진 사법 리스크를 해소하게 됐다. 동시에 카카오가 ‘정치적 타깃 수사’를 받았다는 논란을 재점화시켰다. 재판부가 검찰의 핵심 증거를 모두 부정하고 수사 방식까지 비판하면서 애초에 기소 자체가 무리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카카오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2년 6개월간 검찰, 경찰,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등으로부터 30여 건의 수사 및 조사를 받았다. 특히 2023년 11월 윤석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카카오모빌리티를 “부도덕한 기업”이라고 발언한 직후 검찰의 카카오모빌리티 수사가 본격화됐다.

2023년 4월 SM 시세조종 의혹으로 카카오 본사가 압수수색이 된 이후 2024년에는 카카오톡 먹통 사태, 카카오페이 관련 의혹, 카카오엔터 경영 관련 수사 등이 연쇄적으로 이어졌다.

김범수 창업자는 2024년 7월 구속되면서 카카오의 경영 불확실성이 극대화됐다. 김 창업자의 1심 무죄 판결로 정치적 수사 의혹은 더욱 힘을 얻게 됐다. 검찰이 양형 기준 최고형인 징역 15년을 구형했지만 법원이 전면 무죄를 선고하면서 기소 판단 자체가 적절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조계에서도 “재판부가 검찰의 수사 방식까지 비판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법원이 별건 수사 관행을 정면으로 비판한 것은 검찰의 수사 과정에 문제가 많았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허란 한국경제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