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 뽑나요? 이력서에 웬 사진”…부착금지 법안 통과

▲한 취업준비생이 이력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부착금지 법안 시행으로 내년부터 이런 모습이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사진=이진호 기자


하반기 한 종합편성채널 방송 기자 직군에 지원했던 김 모 씨는 서류 전형에서 황당함을 겪었다. 이력서 작성란에 사진뿐 아니라 키와 몸무게까지 표시해야 했기 때문이다.


서류에서 탈락한 김 씨는 “기자 직군에 키와 몸무게가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 방송이라 외모를 평가하겠다는 것이 아닌지 씁쓸했다”고 말했다.


김 씨와 같은 사례가 내년부터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채용 시 이력서에 사진을 포함한 신체조건 등을 기록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이 지난 11월 28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했다.


국회 환노위는 이날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심의·의결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앞으로 기업은 구직자에게 사진 부착을 포함한 용모·키·체중 및 출신 지역 등 직무수행과는 무관한 정보를 요구하지 못한다. 위반 시 500만 원 이하 과태료가 부과된다.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은 “한국이 전 세계적으로도 외모를 지나치게 중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력서 사진을 잘 찍기 위해 외모 단장 비용이 십여 만 원이 넘어가고 있다”며 “사진부착금지는 이미 남녀고용평등법에 용모, 성별, 나이 차별 금지가 명문화되어 있어 현 법 정신에도 부합하다”라고 설명했다.


사진 없는 이력서…대기업은 시행 중


“모델 뽑나요? 이력서에 웬 사진”…부착금지 법안 통과

▲SK 서류 작성 페이지, SK는 서류전형에서 지원자의 사진도 요구하지 않는다. 사진=SK채용 홈페이지 캡처


대기업에서는 이미 사진 없는 이력서가 시행 중이다. SK는 2015년 상반기 채용부터 서류전형에서 학력, 전공, 학점 등 기본정보를 제외한 일련의 스펙을 배제했다. 지원자의 사진도 요구하지 않는다. SK 채용팀 관계자는 “지원자 평가에 사진은 필요한 요소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삼성, 현대자동차, LG, 롯데, 포스코, 효성, CJ 등도 서류 전형에서 사진을 요구하지 않는다. 외모를 중시하던 아시아나항공 역시 지난 2014년 객실승무원 이력서에서 사진란을 폐지했다. 당시 아시아나항공 측은 “사진 항목 삭제는 지원자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고, 외모보다 지원서 내용에 집중하기 위한 취지”라고 말했다.


대기업은 사진부착금지가 경제적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여전히 다수 기업에서는 이력서 사진 기입란을 유지하고 있다. 한 기업 인사담당자는 “대규모 진행되는 채용에서 사진이 없으면 지원자 구분이 어렵다”라고 말했다.


“모델 뽑나요? 이력서에 웬 사진”…부착금지 법안 통과

▲서울시 기간제 근로자 채용 이력서. 공공기관에서는 사진 등이 부착되지 않은 표준이력서 사용을 권고하지만, 시행 되지 않고 있다. 사진=서울시 채용 이력서 캡처


사진부착금지가 법으로 강제되지 않는 점도 한 몫 한다. 지난 2007년 고용노동부는 차별요소 등이 제외된 ‘표준이력서’ 사용을 권고했다. 표준이력서는 주민등록번호, 외모, 성별, 가족관계 등 개인의 경력에 상관없는 정보를 담지 않도록 구성됐다. 하지만 상당수 공공기관이 표준이력서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이런 채용 문화가 답습되자 서울시는 지난 11월 10일 산하기관 채용 시 사진부착금지 방안을 추진했다. 시 조례안에서 이력서 기재 금지사항을 규정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구직자 외모 관리…월평균 14만 원 투자


“모델 뽑나요? 이력서에 웬 사진”…부착금지 법안 통과

▲면접 메이크업을 배우고 있는 취업 준비생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구직자들은 매월 외모관리에만 평균 14만 원 사용한다고 밝혔다. 사진=한국경제DB


그동안 외모는 취업의 스펙 중 하나라는 인식이 강했다. 기업들이 이력서에 사진 부착을 필수로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력서 사진은 취업준비생에게 부담이었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올해 9월 구직자 711명을 대상으로 ‘취업 위한 외모관리를 하는지’ 여부를 조사한 결과, 48.5%가 ‘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구직자들은 매월 외모관리에만 평균 14만 원 사용한다고 답했으며, 이들이 지금까지 구직을 위한 외모관리에 평균 243만 원을 투자했다.


이진호 기자 jinho23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