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 평가 부탁드려요.’


취업 커뮤니티에 하루에도 수십개씩 올라오는 글 중 하나다. 서류 통과조차 힘든 취준생들은 ‘뭐가 문제인지’,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를 확인하기 위해 익명의 누군가에게 자신의 스펙을 공개한다.


게시글에는 ‘편입을 해라’, ‘전공을 바꿔라’ 등의 극단적인 조언부터 ‘형편없다’, ‘그 스펙으로는 취업이 어렵다’는 식의 부정적 평가가 이어지기도 한다. 왜 학생들은 자신의 스펙을 벌거벗으면서까지 검증되지 않은 누군가에게 평가 받고 싶어 하는 것일까.


Unsuccessful businesswoman..Negative feedback conceptual..Colleagues dislike that idea..not accepted concept.
Unsuccessful businesswoman..Negative feedback conceptual..Colleagues dislike that idea..not accepted concept.


우리가 익명의 누군가에게 스펙 평가를 받는 이유


취준생 A씨는 오랜 취업 준비에도 불과하고 2년 째 ‘합격 통보’를 받지 못했다. 오랜 취준 생활에 우울해하던 중 온라인 취업 커뮤니티의 ‘스펙 평가’를 알게 됐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자신의 스펙을 공개했다.


취업 준비를 이제 막 시작하는 B씨도 ‘스펙 평가’ 글을 올렸다. 친구들은 현직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하라고 했지만 아는 선배가 없어 고민하던 끝에 온라인 커뮤니티를 이용해보기로 한 것이다. 취업 준비를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몰라 막막했기 때문에 ‘카더라’ 통신이라도 일단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학생들이 커뮤니티 스펙 평가를 이용하는 이유는 ‘불안감’ 때문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취준 생활에 대한 불안감,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모르는 불안감은 출처 없는 조언조차 절실해지게 만든다.


온라인 커뮤니티 ‘스펙 평가’, 득일까 독일까

△취업 커뮤니티에 올라온 '스펙 평가' 게시글



게다가 온라인에서의 스펙 평가는 부담없는 접근이 가능하다. 익명의 온라인 공간에서는 나의 정보를 공개하고 평가를 받아도 글을 삭제해버리면 그만이다. 아는 사람에게는 공개하기 부끄러운 정보도 온라인에서는 부담 없이 언제든 공개할 수 있다.


교내 취업지원센터에서도 상담이 가능하지만, 학생들은 방문 자체에 부담을 느끼기도 한다. Y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인 박 씨는 “학교에서 상담을 받으려면 준비해야할 절차나 서류가 많다”라며 “온라인 커뮤니티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간편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S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준비 중인 송 씨는 “취업지원센터에서는 취업률 높이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대기업 보다는 중소기업을 추천한다”라며 “실제로 조언을 받으러 갔다가 자존심만 상해 돌아온 적이 많다”고 말했다.


과연 믿을 수 있는 조언인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오랜 취준 생할 끝에 취업에 성공한 김 씨는 “스펙 평가 때문에 취준 기간을 6개월 가량 허비했다”고 말했다.


그는 거듭되는 불합격에 이유라도 알고자 온라인 커뮤니티의 ‘스펙평가’, ‘취준사진평가’에 스펙과 사진을 올렸다. 당시 토익 점수는 960점이었지만 댓글에는 ‘토익은 만점이 아니면 의미없다’는 내용이 많았고, 증명 사진을 보고는 ‘인상이 너무 세보인다’는 지적을 받았다.


댓글이 신경 쓰인 김 씨는 결국 토익 학원을 3개월 더 수강했고, 성형외과를 찾아가 인상을 바꿀 수 있는 시술 상담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얼마 후 같은 토익 점수로 시술도 하지 않고 취업에 성공할 수 있었다. 김 씨는 “취업 후 생각해보니 부질없는 노력이었다”라며 “오롯이 시험 준비에 힘써도 모자를 시간을 허투루 쓴 것 같다”고 말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스펙 평가’, 득일까 독일까

△이력서 사진 평가에 달린 댓글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학생 대부분은 ‘온라인 스펙 평가의 조언을 100% 신뢰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댓글을 읽다보면 조금씩 몰입하게 되고 신경을 쓰게 된다고 말했다.


한 학생은 스펙평가에 대해 “점을 볼 때 속으로는 ‘미신이야’라고 생각하면서도 나쁜 말을 들으면 계속 신경쓰이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물론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현실적이고 직설적인 조언을 받아 취준 생활에 자극을 받고, 때론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모든 조언이 정확하거나 진실이라고 믿을 수는 없다. 순전히 같은 취준생의 입장에서 주관적인 평가를 내리는 것에 흔들리면 오히려 독이 되기도 한다.


Y대 박 씨는 “영어를 잘 하지 못해 영어 성적이 없다. 그런 스펙을 올리고 평가를 받았더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어성적 없이는 취업하기 어렵다’며 준비할 것을 조언했다. 하지만 지난 학기에 영어 성적 없이도 원하는 기업 인턴으로 합격해 회사 생활을 잘 하고 왔다”고 말했다.


S대 송 씨는 “오래 취업 준비를 한 학생들 중 일부는 현직자인 척 소위 ‘꼰대 스타일’로 평가를 한다. 취업 준비 초기에는 그런 글을 보면 상처 받고 두려움을 느꼈다”라며 “온라인에서는 모든 사람이 토익 950점 이상, 학점 4.0은 기본인 것처럼 말한다. 너무 부풀려진 이야기에 흔들리면 자신감을 잃을 수 있다”고 말했다.


취업 컨설팅 전문 기업 커리어탑팀의 최동원 대표는 “잘못된 조언으로 인생 전반의 커리어 패스가 꼬여 다시 취업을 준비한 사례나, 취업 후 퇴사해 다시 취업을 준비하는 사례 등이 있다”라며 “조언을 받아드릴 때는 사실과 근거에 기반한 조언인지 그저 답변자의 생각인지, 해당 분야의 통찰력이 있는 믿을 만한 멘토인지 확인할 것”을 강조했다.


박해나 기자 phn0905@hankyung.com

지연주·김민경·유현우·최정훈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