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층 작업실을 포함해 3층에도 값비싼 비단이 겹겹이 쌓여있다. 색색의 비단의 가격을 묻는 질문에 “어찌 저 비단을 돈으로 환산할 수가 있간디요.(웃음) 저 비단은 누가 팔라고 해도 못 팔아요.” 32년째 오롯이 한복을 만들어 온 ‘박술녀 한복’의 원장 박술녀 한복 디자이너의 말이다. 자신을 한복에 미쳐있다고 소개하는 박술녀 원장에게 <직업의 세계>를 들어봤다.



[직업의 세계] “한복 말고 뭣이 중헌디” 32년째 한복 만들어 온 박술녀 한복디자이너



‘한복 디자이너’를 소개해주세요.

한복 디자이너는 말 그대로 한복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옷이기 때문에 한복을 만드는 사람은 소명의식을 가져야 해요.



한복을 만든 지 얼마나 됐나요?

햇수로 32년 됐어요. 이십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한복만 만들었어요.



한복을 만들게 된 계기가 있나요?

우리 어릴 적엔 먹고 살기가 어려워 논에서 개구리를 잡아 팔기도 하고, 송충이를 팔기도 했어요. 어머니께서 항상 하시던 말씀이 개구리 잡는 기술이라도 있어야 먹고 산다고 하셨죠. 어릴 적부터 옷을 좋아하기도 했고, 한복에 관심도 있어 배우기 시작했어요.



어디서 배웠나요?

집이 충북 청주인데 한복을 배우려고 서울로 올라왔어요. 한복을 가르치는 학원에 갔더니 빨리 가르쳐주지도 않고, 선생님한테 잘 보여야 가르쳐주는 식이더라고요. 그게 싫어서 두 달 만에 학원을 나와 이리자 선생님을 찾아갔어요. 처음 한복을 배울 때부터 1세대이신 이리자 선생님께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선생님 댁으로 찾아갔는데 몇 번이나 거절 당하기도 했죠.



왜 거절을 하셨나요?

그때 내 나이가 이십대 중반이었으니까 한복을 배우기엔 많은 나이였죠. 보통 십대 때 한복을 배우니까요. 3년에 걸쳐 선생님 댁으로 찾아갔더니 끝내 제자로 받아주시더라고요. 그때부터 한복을 제대로 배우기 시작했죠.



한복 디자이너가 많았을 텐데, 이리자 선생님을 고집한 이유가 있나요?

당시 가장 활동을 많이 하셨던 분이었어요. 당시 최고 아나운서였던 변웅전 선생님께서 추석이면 이리자 선생님을 찾아가실 정도였으니까요. 이리자 선생님이 나온 잡지면 다들 사서 볼 정도였어요.



[직업의 세계] “한복 말고 뭣이 중헌디” 32년째 한복 만들어 온 박술녀 한복디자이너
현재 대표 한복 디자이너로 박술녀 선생님을 많이들 꼽는데,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요?

내가 2세대인데, 그 중에 아직까지 바느질을 하면서 활동하는 디자이너는 없을 듯해요. ‘왔다! 장보리’의 김순옥 작가님이 나를 좋아하는 이유도 아직까지 내가 바느질을 하기 때문이죠.



언제까지 한복을 만들고 싶나요?

90살까지 하지 않을까요. 사람은 착각 속에 사니까요.(웃음) 10년 전에 갑상선암 수술을 했는데 수술하고 이틀 만에 나와서 쇼를 진두지휘하기도 했죠.



현재 건강상태는 어떤가요?

수술 이후부턴 저녁 모임도 줄였어요. 3개월 전부턴 일 마치고 권투를 한 시간씩 해요. 아들과 직원이랑 같이 하는데 건강에도 좋고, 스트레스 풀기에도 좋아요. 나이 육십에 권투 아무나 하는 거 아닙니다.(웃음)



한복 구성에 대해 설명해 주신다면.

여성은 치마, 저고리, 두루마기로 나뉘고, 남성은 바지, 저고리, 조끼, 마고자, 귀주머니, 버선, 두루마기로 나뉘어요. 이걸 1습(한 세트)이라 부르죠. 원단 재질과 제작 공정에 따라 가격이 달라져요.



한복 한 벌의 제작 기간은 어느 정도인가요?

한 벌을 제작하면 적어도 15일 정도 걸려요.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더 걸릴 수도 있고요.



[직업의 세계] “한복 말고 뭣이 중헌디” 32년째 한복 만들어 온 박술녀 한복디자이너



한복의 주원단인 비단은 무엇인가요?

계절별로 한복을 만드는 비단이 다른데, 겨울에는 은실이나 색실로 수를 놓고 겹으로 두껍게 짠 고급 비단인 양단(洋緞)이나 무늬는 없지만 두껍고 윤기가 도는 공단(貢緞), 그리고 명주실로 짠 명주(明紬)로 만들어요. 봄, 가을 간절기 옷을 입을 땐 명주나 무명실로 짠 항라(亢羅), 소사(素紗), 진주사(眞珠紗)로 만들기도 하죠.



한복 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요?

인내와 끈기가 있어야 됩니다. 지금도 한복을 배우려면 적어도 7년은 배워야 해요. 우리 땐 10년은 배워야 했는데, 요즘 사람들은 잘 못 견디더라고요. 속치마를 하나 제대로 만들려면 5년은 족히 걸립니다. 왜냐하면 가장 기본적인 부분을 잘하지 못하면 그 다음단계에서 반드시 막히게 돼 있죠. 그래서 제자들에게 한복을 만들 땐 100년 입을 수 있는 한복을 만들라고 합니다. 그리고 타고난 손재주가 있어야지, 아무리 한복을 좋아해도 바느질을 못하면 훌륭한 한복쟁이가 될 수 없어요.



‘박술녀 한복’의 성공 비결은 무엇인가요?

한창 일 할 땐 식구들끼리 밥 먹을 시간도 없었어요. 오로지 한복만 만들었죠. 예전에 군자동에서 가게를 할 때 새벽 2~3시에 문 두드리는 손님도 열어줬어요. ‘얼마나 시간이 없었으면 이 새벽에 찾아올까’ 라는 생각에 열어주곤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무서워서라도 못 열어줄 것 같아요.(웃음)

작년부터 몸이 안 좋아져서 일요일에 문을 닫지만 지난 31년 동안 연중무휴 손님을 맞았죠. 대학에서 교수직 제안이 몇 번 들어온 적도 있지만 내 집을 찾아주는 손님이 더 소중해 거절했어요. 그만큼 한복에 미쳐 있어서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어요.



‘박술녀 한복’의 특징은 어때요?

거친 옷감도 곱게 보이도록 하는 게 바느질입니다. 옷이 거칠어 보이면 입는 사람의 품위가 살지 않거든요. ‘박술녀 한복’은 정말 제대로 만들려고 노력해요. 그런 노력을 알아주시는 고객들은 단골이 됩니다.



[직업의 세계] “한복 말고 뭣이 중헌디” 32년째 한복 만들어 온 박술녀 한복디자이너



지금까지 제작한 한복이 몇 벌 정도 되나요?

이제껏 만든 한복의 수를 가늠할 순 없고, 지하에 있는 한복의 수가 1만 여벌 정도 될 겁니다.



한복의 매력은 뭔가요?

다른 일을 30년 이상 하면 지겨워요. 근데 한복은 지겨울 틈이 없어요. 똑같은 색의 한복을 입혀도 사람마다 다 달라 보입니다. 그게 한복의 매력이죠.



한복을 세계화 하자는 사람들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요?

세계화를 하기 전에 한국 사람들이 먼저 한복을 사랑해야 합니다. 예전에 영국에서 한복으로 패션쇼를 할 때 기립박수를 받은 적이 있죠. 그래도 그 사람들이 한복을 사진 않아요. 한국의 옷인 한복은 한국 사람이 더 많이 찾아야 합니다.



한복 디자이너의 비전은 어떤가요?

한복을 만드는 직업은 꼭 필요한 직업입니다. 누구라도 열정을 가지고 한복을 만들면 한복 디자이너로 성공할 수 있어요.



한복이 가장 잘 어울리는 셀럽을 꼽는다면요?

예전에 한 명만 뽑았더니 섭섭해 하더라고요.(웃음) 남자로 치면 축구선수 박지성, 김승우, 오지호, 송중기, 그리고 여자는 김남주, 김희선, 염정아씨가 한복이 잘 어울려요. 외국 스타로는 브리티니 스피어스가 정말 잘 어울리더라고요.



앞으로의 계획은요.

늘 오늘처럼 건강하게 한복을 만들고 싶어요.


글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사진 김기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