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드립이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리라”

드립공장 ‘제목학원’ 이준원 원장


사진 한 장을 보며 생각에 잠긴 60만 명. 이들의 정체는 국내 유일 ‘제목학원’의 수강생이다.

선생님도, 수강료도 없는 제목학원은 나름의 창의성을 발휘해 주어진 사진에 제목을 다는

페이스북 페이지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수강생들이 사진을 두고 고민을 하게 된 건

제목학원의 원장, 이준원(34) 대표 때문이다.




“우리의 드립이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리라” 드립공장 ‘제목학원’ 이준원 원장


이준원

1983년생

중앙대 산업디자인 전공

2009 빅앤트 인터네셔널 광고디자이너

2011 일본 덴츠(Dentsu)계열 온라인광고대행사 엠포스 광고AE

2012 대홍기획 카피라이터

2013 커플레시피 앱 출시

2014 제목학원 상표권 등록




2013년 10월, 사진에 문구를 넣는 가벼운 농담에서 시작한 제목학원은 하루 방문자만 130만 명에 달할 정도로 ‘핫’한 페이스북 페이지다. 월평균 도달 수는 600~1000만. 인기에 힘입어 올해 초에는 앱을 출시했는데, 평균 뷰가 2000~3000만에 이른다.


“처음 페이지를 개설했을 때 의외의 반응에 놀랐어요. 오픈 초창기임에도 불구하고 사진 한 장에 많게는 댓글이 5000개 이상 달렸거든요. 이런 ‘놀이’에 니즈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죠”


사실 제목학원의 원형은 ‘열도의 제목학원’이라 불리는 일본의 ‘보케테’다. “국내는 생소하지만, 해외에서는 제목 짓기가 교육 콘텐츠로 활용될 정도로 보편적”이라는 것이 이 대표의 설명이다.


보케테와 다른 점이 있다면 드립으로 ‘경쟁’하는 체제를 도입했다는 것이다. 별점을 통해 주간랭킹, 누적랭킹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댓글을 달 때 ‘베댓(베스트 댓글)’이 되기 위해 열중하는 한국 유저들의 특성을 고려한 아이디어다. 덕분에 10대를 중심으로 한 수강생들의 드립 수준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새로운 콘텐츠 플랫폼의 등장은 콘텐츠를 만드는 매체, 기업의 눈길도 사로잡았다. 콘텐츠 제휴 제안에 따라 현재 <맥심><한국경제TV>등 다양한 매체가 제목학원의 플랫폼에 따라 유저들에게 사진 제목과 기사 제목을 맡기고 있다.



“우리의 드립이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리라” 드립공장 ‘제목학원’ 이준원 원장


카피라이터 출신 원장형의 드립력은?

이 대표의 전 직업인 ‘카피라이터’는 ‘제목학원 운영자’라는 타이틀과 딱 맞아 떨어진다. 산업디자인을 전공했지만 '디자인'보다 '기획'에 흥미를 느낀 이 대표는 광고에 특히 관심이 많았다. 광고 전공 교수님을 따라다니며 부지런히 공부한 그는 졸업 후 광고디자이너, 광고 AE, 카피라이터로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카피라이터 일을 하고 싶어 서울 시내에 있는 광고 회사를 모두 다니며 포트폴리오를 제출했어요. 왜 그런 이야기 있잖아요? 가고 싶은 회사에 직접 찾아가 뽑아달라고 말할 정도로 열정을 보여줘야 한다고. 그래서 직접 찾아가서 임원 책상에 제가 한 작업물을 올려놓고, 꾸준히 편지를 써서 보냈어요. 그 결과 해당 기업이 생긴 이후 유일무이한 특채가 됐죠”


그가 어렵게 입사한 회사에 사표를 낸 것은 정확히 1년 후였다. 업무가 많아 자신을 돌볼 시간이 부족한 것은 물론, 건강도 나빠지자 회의감이 들었던 것. 동시에 투잡으로 ‘커플레시피’라는 앱을 출시해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앱을 운영하다 보니 페이스북 페이지 운영 경험이 자연스럽게 쌓이더라고요. 그러다 당시 유행하던 “제목학원 우등생이세요?”라는 대사에 호기심이 동했고, 해외의 ‘제목 짓기’ 사례를 보니 국내에서도 해볼 만 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가 운영자인 자신에게 지어준 닉네임은 ‘원장형’이다. 형제가 많지 않은 10대들에게 형이 되어 감성적인 부분을 채워주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실제 그는 모든 드립 댓글에 빠짐없이 댓글을 달아주는데, 수강생들은 거리낌 없이 ‘형’을 불러대며 부지런히 드립을 올린다.


그러나 제아무리 다정한 원장형이라도 20만 ‘드립러’의 드립을 온 종일 보고 있으면 웃음에 면역력이 생길 터. 웬만한 드립은 그의 코털도 못 건드린다.


“‘최고의 드립’이라고 생각하는 기준이요? ‘현웃(현실에서 웃다의 준말)’터질 때요. 예를 들어 강아지 사진에는 당연히 ‘동물’이나 ‘강아지’와 관련된 단어가 나올 것으로 생각했는데 사람이나 캐릭터들을 적용해 전혀 다른 느낌의 단어가 나오면 ‘피식’ 웃을 때가 있어요. ‘당연히’라는 방향을 바꾸는 것이 제목학원의 미덕이죠”


‘짤’은 살짝 모자란 느낌의 사진을 고르는 것이 원칙. 수강생들의 제보도 많다. 사진 제보부터 댓글 입력, 드립 평가까지 수강생들이 알아서 해준 덕분에 이 대표는 지금까지 혼자 학원을 운영해왔다.


그러나 사업 규모가 커지고 매출이 안정세에 접어들며 이 대표는 올해 안에 팀을 꾸려 제대로 학원을 운영해 볼 계획이다.



“우리의 드립이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리라” 드립공장 ‘제목학원’ 이준원 원장

제목학원 앱. 현재 베타 버전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오는 7월 정식 오픈한다.


“두 번째 창업을 해보니 대학생들에게 창업을 권하고 싶어요. 단, 대학생 때요. 창업의 결과는 2~3년 정도 지나야 알 수 있기도 하고, 자신에게 도전해볼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거든요. 각자 삶의 가치에 따른 목표 지점이 있을 거예요. 그곳에 가기 위해서 가는 길은 많습니다. 목표지점까지 가는데 대기업이라는 큰 배가 안전할 수 있겠지만, ‘나만의 배’가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돌아갈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느리더라도 목적지에 정확히 닿을 수 있는 나만의 배를 만들어보세요.”



제목학원 우등생 작품 감상 TIME!


“우리의 드립이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리라” 드립공장 ‘제목학원’ 이준원 원장


“우리의 드립이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리라” 드립공장 ‘제목학원’ 이준원 원장


“우리의 드립이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리라” 드립공장 ‘제목학원’ 이준원 원장


“우리의 드립이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리라” 드립공장 ‘제목학원’ 이준원 원장


“우리의 드립이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리라” 드립공장 ‘제목학원’ 이준원 원장


“우리의 드립이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리라” 드립공장 ‘제목학원’ 이준원 원장


“우리의 드립이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리라” 드립공장 ‘제목학원’ 이준원 원장


“우리의 드립이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리라” 드립공장 ‘제목학원’ 이준원 원장


“우리의 드립이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리라” 드립공장 ‘제목학원’ 이준원 원장


“우리의 드립이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리라” 드립공장 ‘제목학원’ 이준원 원장





김은진 기자 (skysung89@hankyung.com)

사진 허태혁 기자·이준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