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의 하반기 공채 전형의 시작은 대개 9월부터다. ‘서류 전형’ 통과의 기쁨도 잠시, 10월이면 다시 ‘소림사 18동인’ 못지않은 혹독한 검증의 시간을 맞닥뜨리게 된다. 바로 ‘면접’이다. 뛰어난 스펙을 보고 채용한 사원들이 정작 만족할 만한 업무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면접을 채용 과정의 일순위로 삼는 기업이 늘고 있다.
3일 서울 논현동 건설회관에서 열린 '2008 건설인력 채용 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공개 모의 면접을 하고 있다./강은구기자 egkang@  2008.09.03
3일 서울 논현동 건설회관에서 열린 '2008 건설인력 채용 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공개 모의 면접을 하고 있다./강은구기자 egkang@ 2008.09.03
대기업을 비롯한 국내 기업들의 공채 전형은 ‘서류 전형→필기시험→면접→신체검사→채용’으로 진행되는 것이 보통이다. 첫 번째 단계인 서류 전형은 학점, 어학 점수, 대외활동 경험, 어학연수 등 정량적 평가요소가 중요하다. 이른바 스펙이다.

어학 점수가 낮은 사람보다는 높은 사람이, 학점이 낮은 사람보다는 높은 경우가 좋은 점수를 받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학력·스펙 인플레이션이나 거품 논란이 일면서 채용 전형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이를 주도하는 트렌드가 ‘면접 전형의 강화’다.

국내 대표적인 대기업이자 하반기 공채를 가장 먼저 시작하는 삼성그룹의 경우 서류 전형 합격과 관련한 스펙이 미리 정해져 있다. 학점은 평점 4.5점 만점에 3.0 이상이고, 직무에 따라 토익스피킹은 4~6급이 기준선이다.

원기찬 삼성전자 부사장(인사팀장)은 “공지된 스펙은 최소한의 통과 기준일 뿐 그 이상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해서 가산점이 부여되는 건 아니다”고 말한다. 즉 학점 3.0 이상이면 누구나 서류 전형을 통과할 수 있다는 뜻이지 3.0 이상에서 고득점 순으로 선발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한 대기업 인사담당자는 대학 채용설명회 자리에서 “Best People이 아닌 Right People을 찾는 것이 면접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고(高)스펙으로 무장한 인재보다 조직과의 커뮤니케이션, 일에 대한 열정과 자질, 업무에 대한 인지 등을 바탕으로 입사 후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인재를 선발하겠다는 뜻이다. 이는 학력 등 스펙 위주의 채용 이후 오히려 직무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기업 활동에 장애가 되는 일들이 잦아지면서 생긴 변화다.
[뽑히는 면접의 기술] 하반기 면접 트렌드, 구조화 면접 대비하고 회화 능력 키워야
스펙보다 면접이 대세!

공채 전형의 핵심으로 면접이 강조되면서 방식도 진화하고 있다. 합숙 면접, (후각과 요리 실력 등을 보는) 관능 면접, 산행 면접 등 몇몇 기업의 튀는 면접 방식이 화제가 되기도 하지만, 대기업을 중심으로 하는 일반적인 면접의 경우 ‘구조화 면접(structured interview)’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말 그대로 질문의 내용과 방법을 미리 정해놓은 매뉴얼에 따라 진행하는 방식이다. 지원자마다 질문을 달리하는 게 아니라 똑같은 질문을 던진 후 답변에 따라 이어지는 후속 질문으로 인성과 역량을 평가하는 게 핵심.

기업들이 구조화 면접 방식을 속속 받아들이고 있는 건 그만큼 적재적소의 인재 채용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구조화 면접은 다른 말로 ‘역량 면접’이라고도 부른다. 첫 질문과 이에 대한 답변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지만, 답변 유형에 따른 후속 질문들이 이어지다 보면 지원자의 역량과 인성, 돌발행동에 따른 대응법 등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게 인사담당자들의 공통된 평가다.

구조화 면접의 단골 질문 중 하나가 ‘자기소개’다. 취업 포털 잡코리아가 올 상반기 공채 면접 질문을 조사한 결과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28.6%)에 이어 자기소개 질문이 가장 많이 나온 질문 2위를 차지했다. 자기소개 유형으로는 1분간 자기소개 하기, 자기 PR 하기, 장점을 토대로 자기소개 하기, 영어로 자기소개 하기 등 질문이 구체적인 것이 특징이다. 올 하반기 진행되는 공채에서도 LG전자, SK하이닉스, 삼양식품 등의 기업이 자기소개를 요구했다.
[뽑히는 면접의 기술] 하반기 면접 트렌드, 구조화 면접 대비하고 회화 능력 키워야
직무 능력·영어 회화 능력 키워라

지원자의 직무 능력을 검증하는 것도 면접의 주요 목적 중 하나다. 인성이나 가치관 등을 주로 보는 구조화 면접과 달리 프레젠테이션(PT) 면접, 토론 면접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 대기업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직무 면접은 ‘우리 회사에 왜 지원했느냐’는 상투적인 질문 대신 전공 지식, 직무와 연관된 구체적인 전문 지식을 묻는 질문이 많아진 것이 특징이다.

포스코건설은 올 상반기에 ‘송도신도시에 대해 아는 대로 말해보시오’란 질문이 나왔다. 자사의 주요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지역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를 체크하는 질문의 예다. ‘우리 출판사에서 출간한 도서와 출간 방향은’(삼성출판사), ‘자바를 활용한 일상생활에서의 도구들을 한번 말해보세요’(삼성전자) 등도 직무 능력을 검증하기 위한 직접적인 질문 중 하나다. 최근에는 구조화 면접 과정에서 직무 능력을 확인하는 사례도 점점 늘고 있다.

영어 면접도 강화되는 추세다. 토익 등 계량화된 점수보다는 실제 회화 능력에 주안을 두겠다는 뜻. 실제로 올 하반기 공채를 진행하는 주요 기업 중 서류 전형에 어학점수란을 없앤 곳이 많다. 잡코리아가 국내 454개 기업을 대상으로 ‘2012 하반기 대졸 신입 공채 프로세스 현황’을 조사한 결과 어학 점수에 제한을 둔 기업은 전체의 32.4%에 그쳤다. 특히 업무상 전문 지식이 많이 요구되는 금융업의 경우 전체의 15.8%만이 어학 점수에 제한을 두는 것으로 드러났다.

반면 실제 회화 실력을 검증하는 영어 면접을 도입하는 기업은 갈수록 늘고 있다. 전체 조사대상 기업 중 28.4%가 ‘영어 면접을 시행하겠다’고 답했고, 특히 주요 기업 10개사 중 5개 기업이 영어 면접을 시행할 것으로 보인다. 외국계 기업의 경우 영어 면접 시행 비율이 62.8%로 가장 높았고, 국내 대기업도 51.2%, 공기업은 36.5%가 영어 면접을 진행할 계획이다.
[뽑히는 면접의 기술] 하반기 면접 트렌드, 구조화 면접 대비하고 회화 능력 키워야
[뽑히는 면접의 기술] 하반기 면접 트렌드, 구조화 면접 대비하고 회화 능력 키워야
기업이 숨기고 싶은 면접의 비밀

“정문 통과부터 나갈 때까지가 모두 면접”

면접의 성패가 질문과 답변에만 달려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흔하다. 면접이 끝난 후 사무실을 나와 친구와 예상 결과에 대해 수다를 떨거나, 넥타이를 풀며 정문을 나서는 모습 등은 모두 이런 인식에 기인한다.

하지만 기업 인사담당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조언하는 내용 중 하나가 ‘처음부터 끝까지’이다. KT그룹 인사책임자 김기택 상무는 “회사의 벽에도 눈이 있다”고 말한다. 정문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나갈 때까지 지원자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다는 뜻. 면접 장소에선 매너 있게 행동하다가도 면접장을 나온 순간 흐트러지는 사람이 의외로 많고, 그럴 경우 실제로 감점 요인이 될 수 있다.

삼성그룹도 채용설명회에서 “회사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타는 그 순간부터 모두가 당신을 주시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를 조심하라는 뜻. 또 면접은 똑똑하고 능력 있는지보다는 열정과 태도를 보는 경우가 많으므로 모르는 질문에 당황하지 말고 편안하고 당당하게 임하는 것이 좋은 인상을 주는 노하우다.


글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