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NG족 리포트


“우리는 단군 이래 가장 많이 공부하고, 제일 똑똑하고, 외국어에도 능통하고, 첨단 전자제품도 레고블록 만지듯 다루는 세대야. 안 그래? 거의 모두 대학을 나왔고 토익 점수는 세계 최고 수준이고 자막 없이도 할리우드 액션영화 정도는 볼 수 있고 타이핑도 분당 300타는 우습고 평균 신장도 크지. 악기 하나쯤은 다룰 줄 알고, 맞아, 너도 피아노 치지 않아? 독서량도 우리 위 세대에 비하면 엄청나게 많아. 우리 부모 세대는 그중에서 단 하나만 잘해도, 아니 비슷하게 하기만 해도 평생을 먹고살 수 있었어. 그런데 왜 지금 우리는 다 놀고 있는 거야? 왜 모두 실업자인 거야? 도대체 우리가 뭘 잘못한 거지?”

이 시대 젊은이들의 현실을 묘사한 김영하의 장편소설 ‘퀴즈쇼’의 한 대목이다. 2011년을 사는 20대는 역사상 그 어느 세대보다 질 좋은 교육을 받았지만 이들에게 남은 건 ‘88만 원 세대’라는 씻을 수 없는 오명뿐. 이 현실 자체가 ‘NG(No Good)라서 ‘NG(No Graduation족’이 양산되는 것일까.
4년 만에 졸업하면 조기 졸업생 당신도 신 NG족입니까?
지난 2월 졸업한 이영란(가명·인천대 영문 졸업) 씨는 4학년 내내 졸업을 할까 말까 고민했다. 채용 공고마다 ‘기졸업자나 졸업 예정자’로 지원 자격을 정해놓은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졸업과 동시에 꼼짝없이 실업자가 되느니 ‘학생’ 신분으로 지원이라도 해보는 편이 여러모로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졸업에 필요한 학점을 다 이수하고도 졸업을 하지 않는 ‘신(新) NG(No Graduation)족’이 크게 늘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로 고용시장이 얼어붙자 당시 대학가에서는 취업이 될 때까지 졸업을 늦추기 위해 해외연수를 떠나거나 각종 자격증 취득 등의 명목으로 휴학하는 ‘대학 5학년생(NG족)’이 생겨났다. 15년이 지난 지금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극심한 경기침체가 이어져 ‘대학 6~7학년생(신NG족)’까지 등장했다.

교육과학기술부 집계에 따르면 국내 NG족은 2003년 60만 명에서 2009년 말 100만 명으로 급증했다. 이는 전체 재학생의 20~30% 비율로 현재 대학생, 대학원생 10명 중 2~3명은 제때 졸업을 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졸업 연기의 대가는 60만 원

2010년 정부 발표에 따르면 청년 실업자는 모두 41만여 명으로 청년 실업률이 9.3%에 달한다. 이렇듯 극심한 취업난으로 청년 실업 문제가 가중되자 학생들의 졸업 유예를 지원하는 대학이 늘어나고 있다. 취업률에 신경을 써야 하는 대학으로서 졸업이 곧 실업이라는 악순환을 손 놓고 보고만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졸업연기제’는 휴학을 하거나 필수과목을 일부러 수강하지 않는 등 편법으로 졸업을 기피하는 NG족이 늘어나자 일부 대학이 도입한 제도다. 등록금의 6분의 1(50만~60만 원) 정도만 받고 재학생 신분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준다. 2009년 동아일보가 전국 주요 대학 30여 곳을 조사한 결과 졸업연기제를 운영하는 학교는 연세대 등 10여 곳으로 나타났다. 이 중 5개 대학의 졸업 연기자 수는 1416명으로 전년에 비해 79%나 증가했다.

대학생들이 졸업을 미루는 것에는 몇 가지 심리적 이유도 있다. 학교 소속감을 느끼고 싶은 심리와 ‘장미족(장기 미취업 졸업생)’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에서 벗어나고 싶은 심리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재학생 신분의 혜택’에 있다. 이른바 ‘재학생 프리미엄’. 재학생 자격으로 누릴 수 있는 혜택이 취업 준비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특히 도서관 등 학교 시설 이용 여부는 민감하다. 결국 졸업을 택한 이영란 씨도 “졸업 후에도 학교 시설 이용이 자유로웠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졸업 후에도 취업 준비에 2~3년이 걸리는데, 졸업생들의 학교 시설 이용에는 많은 제약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대학은 졸업생의 도서 대출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이화여대의 경우 졸업생은 예치금 20만 원을 내야 도서 대출이 가능하다.



애프터서비스를 강화하라!

대학이 미취업 졸업생을 완전히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미취업 졸업생을 대상으로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대학이 늘고 있다. 이른바 애프터서비스다.

건국대는 2010년 8월, 2011년 2월 졸업생 중 미취업자를 대상으로 ‘졸업생 취업 성공을 위한 이노베이터(Innovator) 육성 특성화 과정’을 도입했다. 3월부터 5월 말까지 14주간 진행된 이 프로그램은 인적자원개발 전문가들의 취업역량 강의, 일대일 맞춤 취업 컨설팅 등의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했다. 성결대도 미취업 졸업생들의 취업을 돕기 위해 ‘취업 매칭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3월부터 6월 말까지 취업 코칭 서비스, 개인별 취업 컨설팅 등을 지원했다. 한국외대는 지난 2008년 여름부터 매년 방학을 이용해 ‘졸업생 재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오고 있다. 취업 여부와 관계없이 한국외대 졸업생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컴퓨터 활용능력, 비즈니스 리더십, 한자 자격증 대비 등의 강좌를 운영한다.



“우리가 원하는 건 작은 배려”

신NG족의 증가를 막을 방법은 없을까. 학교와 사회가 고민해봐야 할 대목이다. 미취업 졸업생들은 학교 시설의 이용과 지원자 연령 제한 폐지를 꼽고 있다.

학교 시설의 경우 기숙사나 도서관 이용이 대표적이다. 졸업을 하고도 갈 곳이 없는 이들은 학교 기숙사와 도서관이 아쉬울 수밖에 없다. 생활비 수준이 대폭 올라가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졸업생에게 기숙사 입주 기회를 제공하는 대학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주인공은 바로 건국대. 건국대는 작년부터 매달 32만5000원 정도의 기숙사비를 납부하면 미취업 졸업생도 주거시설과 편의시설, 도서관 등을 이용하면서 1~2학기 정도 취업을 계속 준비할 수 있도록 했다.



‘청춘’이란?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이라는 뜻으로,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에 걸치는 인생의 젊은 나이 또는 그런 시절을 이르는 말. 청춘의 사전적 정의는 밝기만 한데, 거울에 비춰본 이 시대 청춘은 그렇지 않다. ‘니트족’ ‘88만 원 세대’ ‘신NG족’ ‘청년실신’ 등 암울한 세태를 반영한 신조어들이 ‘청춘’의 의미를 대체하고 있다.



글 정지은 대학생기자 (경원대 신문방송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