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때 CEO의 태도가 회사 브랜드다

갑자기 나를 찾는 팀원은···‘십중팔구’다 [장헌주의 Branding]
“드릴 말씀이 있는데 시간 되시나요?”

리더가 구성원들로부터 듣는 친절한(?) 말 가운데 가장 느낌이 ‘싸한’ 말이다. 서로에게 오가는 어색한 바이브. 서늘해지는 공기에 시간이 있어도 없다고 말하고 싶은 순간이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시간이 있냐”고 묻는 경우 십중팔구 이직 계획을 털어놓는다. 전조증상이 짙은 경우도 있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폭탄처럼 던지기도 한다. 위로부터의 총알, 아래로부터의 폭탄…리더의 외로움이 사무치게 몰려오는 순간을 한번쯤은 경험했거나 경험할 것이다.

한번은 보내기가 너무 싫은 팀원이 있었다. 팀에 꼭 필요한 인재였고, 개인적으로도 그 친구의 성장을 위해 공을 많이 들이기도 했다. 그때 CEO께 면담을 요청하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사실 일개 팀원이 퇴사하는 일을 CEO와 논의하는 것도 매우 이례적인 일이지만, 한 부서를 책임지는 리더로서 회사 전체를 책임지는 선배 리더의 생각과 조언이 궁금했다.

현재 우리 회사나 업무에 대한 만족도는 높지만, 상대 회사에서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해 미래를 위해서 옮기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상황을 말씀드렸다. 당시 우리 회사도 좋은 회사였지만, 이직을 원하는 회사 역시 좋은 회사였다. 필자의 얘기를 듣고 난 CEO의 반응은 의외로 심플했다.

“지금 우리 회사에서 그 직급에 그 연봉은 어렵다고 판단되는데…그 만큼 해줄 수 없다면, 그 친구의 선택을 응원해주는 게 맞을 듯한데요.”

당시의 필자보다 조직에서 훨씬 많은 사람을 받아들이고 떠 보냈을 CEO의 경험이 녹아 있는 조언이었다. 무작정 붙잡는 것은 서로의 관계를 불편하게 할 뿐이니 웃으면서 잘 보내주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결론. 관리자로서 형평성에 대한 고민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일은 조직 내에서의 만남과 헤어짐에 대한 생각의 틀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간혹 시위성(?) 퇴사선언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새로운 도전에 목이 마르거나 조직 내에서 자신의 성장이 멈췄다고 생각하는 구성원이 이직을 알려올 때엔 아낌없이 그들의 결정을 지지해주려 노력했다.

결국 돌고 돌아 다시 만나는 세상, 헤어질 때 얼굴이 만날 때 얼굴보다 오래 기억될 것이고, 헤어질 때 조직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그 조직의 현재와 미래의 ‘그릇의 크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스타트업 기업에서 마음에 쏙 드는 인재를 구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필자 역시 최근 몇 년간 스타트업에 근무하면서 초과근무도 모자랐던 업무량보다 더 힘들었던 기억은 대기업과 맞선 인재 쟁탈전에서 고배를 마시는 일이 반복되는 것이었다.

스타트업 리크루팅의 현실적 어려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과연 인재를 모셔올(?) 때만큼 그들과 헤어질 때 정성을 다하는지는 자문해 볼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대기업 못지 않는 기업 성장성을 피력하며 영입한 사람들이 어떠한 이유로든 떠날 때 조직이 보여주는 헤어지는 과정(프로세스)과 태도는 대기업과 견줄만하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조직에 대한 사람들의 불만이 곪아 터질 때까지 방관하기, 경영난으로 회사를 떠나는 구성원이 속출하는데도 “다 떠나고 나 혼자 남아도 할 수 있다. 원래도 혼자 시작했다”며 걱정하지 말라는 말만 반복하기, 퇴사하겠다며 면담을 요청하는 직원에게 지키지도 못할 연봉인상과 승진 카드 남발하기. 마치 유년시절에서 성장이 멈춰버린 것처럼 ‘기업인’ 으로서의 학습이 완결되지 못한 CEO의헤어지는 방식들이다. 이 모든 것을 모두 갖춘 CEO가 있는 조직이라면? 내일 당장 문을 닫아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다.

CEO는 회사의 최고의사결정자로서 대표성을 띠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기업의 브랜드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스타트업에선 더욱 그렇다. 구성원과 밀착돼 일하는 만큼 CEO가 가지고 있는 생각은 말과 태도를 통해 조직 구성원들에게 전달될 수밖에 없고, 그것이 쌓여 기업문화가, 구성원을 대하는 태도가 되고, 내부 구성원들의 회사에 대한 생각과 평판이 쌓여 기업의 아이덴티티가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부인들의 평판은 외부인들의 평판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평판’도 기업의 ‘자산’이다. 업에 따라서는 기업의 존폐를 좌우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평판은 마케팅 비용만 쏟아붓는다고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 언론기사, 소셜 미디어 콘텐츠, 퇴사자의 취업 포털사이트 근무후기, 퇴사자가 다른 기업에서 하는 인터뷰 등 모두가 사람들이 전하는 말과 글이다. 확대시켜 말하자면 기업에 대한 여론이다.

입사할 때 ‘웰컴 기프트’는 준비하면서 퇴사할 때 ‘페어웰 기프트’는 찾기 어렵다. 퇴사자는 회사의 마지막 내부고객이자 회사를 떠난 후 기업 브랜드에 대한 ‘필터 없는’ 인플루언서가 된다. 또한 퇴사자를 대하는 CEO의 태도에서 남은 구성원들은 자신이 떠날 때의 모습을 보게 된다. 부디, 회사를 떠나는 사람을 ‘루저’로 폄하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기 바란다.

혹 최근 껄끄럽게 헤어진 직원이 각종 취업 포털사이트에 올릴지도 모를 기업 리뷰가 염려된다면, 어떤 태도로 그를 보냈는지 돌아볼 일이다. 일상이 쌓여 평판이 된다. 헤어질 때 CEO의 얼굴이 회사 브랜드다.


장헌주 님은 홈쇼핑TV 마케터로 재직 중 도미(渡美), 광고 공부를 마친 후 중앙일보(LA) 및 한국경제매거진 등에서 본캐인 기자와 부캐인 카피라이터 사이를 오가며 살았다. 딜로이트 코리아에 이어 IT기업 커뮤니케이션 총괄 디렉터를 역임한 후 지금은 크리에이티브 솔루션 랩 '2kg'에서 PR & 위기관리, 브랜딩 전문가로 세상의 일에 '시선'을 더하고 있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