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기자는 나만의 공간이 갖고 싶었다. 파스텔 톤 책상과 어린이용 싱글 침대가 놓인 방. 그 상상이 현실이 되는 날,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내방’은 하루의 고단함을 녹이고, 새 힘을 얻는 충전소이자 아지트다. 하지만 방 정리를 방심하는 순간, 그곳은 탈출하고 싶은 소굴이 되기도 한다. 버지니아 울프는 일찍이 ‘자기만의 방’을 가지라고 했지만 그것은 잘 관리하고 유지할 때에만 유효한 얘기. 책상 위에 쌓인 책들과 정체불명의 서류들은 공부할 마음까지 싹 사라지게 하는 재주가 있다. 방이 쾌적해야 그 안에서 ‘쉼’도 ‘공부’도 가능한 법.

지난 10월 초 ‘아무리 치워도 지저분한 방’에 대한 고민을 호소하는 의뢰인 한 명을 만났다. 5년째 원룸에서 자취 중이라는 그는 “치우고 싶어도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이를 위해 윤선현 굿베리 정리컨설팅 대표와 박경순·이현주·이희정 컨설턴트가 출동했다. 기자를 포함 총 6명이 방 치우기 프로젝트에 나섰다.
[방 정리의 마법]아무리 치워도 지저분해? ‘구역’ 나누고 ‘공간’을 만들어라
의뢰인 A씨(익명 요청)는 원룸에서 룸메이트와 함께 5년째 자취 중이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겹겹이 쌓여 있는 신발이 방의 분위기를 짐작케 했다. 8평(26.4㎡) 남짓한 공간에는 기능을 상실한 책상과 쓰러질 듯한 행거 두 개가 애처롭게 서 있었고, 바닥의 반은 책이 차지하고 있었다. 쉴 수 있는 공간은 이불 두 개를 펼 수 있는 자리뿐이었다. 5년째 두 명이서 한 방에 살다 보니 점차 짐이 늘어난 데다 물건을 쉽게 버리지 않는 성격 때문에 방 치우기가 더욱 쉽지 않았다고.

윤선현 방 정리 컨설턴트는 “원룸은 한 공간에서 모든 생활을 하는 만큼 구역을 더욱 확실히 나눠야 한다”고 했다. 먼저 옷이 있어야 할 곳과 책이 있어야 할 곳을 구분해 가구를 재배치하고, 공간을 확보하기로 했다. 또한 책, 가방 등을 수납하는 공간으로 쓰이던 싱크대를 정리해 주방 기능을 살리는 데 포인트를 두었다.

방 정리를 잘하는 비법은 방의 목적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잠자는 공간이라면 수면을 방해하는 요소를 없애야 하며, 공부하는 곳이라면 집중이 잘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정리 컨설팅이란 이런 목적에 따라 방의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인데 크게 정리→정돈→청소의 3단계를 거친다. 먼저 정리는 사용할 물건, 중요한 물건만을 남기는 것이다. 사용하지 않는 물건은 버린다. 정돈은 사용할 물건을 쉽게 꺼낼 수 있도록 배치하는 것이다. 이렇게 했을 때 청소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눈에 보이는 먼지나 더러운 것을 닦으면 끝이다.


방 정리 과정 공개!
1. 상황 파악 & 짐 분류
[방 정리의 마법]아무리 치워도 지저분해? ‘구역’ 나누고 ‘공간’을 만들어라
아무리 짐이 많아도 매일 생활하다 보면 무엇이 문제인지 잘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눈을 크게 뜨고 주변을 둘러보자. 섞여 있고 쌓여 있는 물건들, 정체불명의 자잘한 짐들이 보일 것이다. 방 정리의 첫 번째 과정은 객관적으로 방의 상황을 파악해 보는 것. 방 안에 무슨 물건이 있는지, 무엇이 많은지, 공간은 효율적으로 쓰이고 있는지 등을 분석하는 것이다.

의뢰인의 방바닥에 쌓여 있는 가지각색의 물건들을 같은 종류끼리 모으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크게 명함, 책, 펜, 가전제품 등으로 분류했고, 그 외 귀중품 등은 따로 빼두었다. 그리고 집 안에 수납이 가능한 여유 공간이 있는지를 살펴봤다.



2. 버리기
[방 정리의 마법]아무리 치워도 지저분해? ‘구역’ 나누고 ‘공간’을 만들어라
본격적으로 짐들을 옮기기 전에 버리는 일부터 시작했다. 물건은 크게 필요한 것, 쓰지 않는 것, 철 지난 애매모호한 것으로 나뉘는데 개인마다 기준을 세워서 필요와 불필요를 나누는 게 핵심이다. 아무리 비싸게 주고 샀더라도 자신이 사용하지 않는다면 정리해야 할 대상. 상태가 좋은 물건이라면 중고 시장에 팔거나 기부하는 편이 낫다.

의뢰인은 대학 초년생 때 쓰던 리포트, 5년 이상 된 영수증도 박스에 모아두고 있었다. 싱크대 안 철 지난 잡지, 책상 뒤 색 바랜 옷은 모두 정리 대상으로 분류했다.



3. 집 만들기
[방 정리의 마법]아무리 치워도 지저분해? ‘구역’ 나누고 ‘공간’을 만들어라
사람만 집이 있는 게 아니다. 물건도 용도에 따라 있어야 할 자리가 있다. 정리 정돈의 비법은 물건이 항상 있어야 할 자리, ‘집’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때 무작정 짐을 다 끄집어낸 후에 정리하면 일이 복잡해진다. 구역을 나눠서 하나씩 정리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한정된 공간 안에서 정리가 이뤄져야 하는 만큼, 미리 머릿속에 어떤 모습을 만들지 계획을 세우고 움직이면 시간이 단축된다. 모든 공간에는 20~30%의 여유 공간을 남겨두는 것이 좋다. 그래야 새 물건을 수납할 수 있고, 보기에도 깔끔하다. 물건을 수납할 때는 사용 빈도, 중요도 등으로 기준을 세운다.
[방 정리의 마법]아무리 치워도 지저분해? ‘구역’ 나누고 ‘공간’을 만들어라
기자 후기
장장 6시간에 걸친 방 정리 프로젝트. 방 정리 후 삼겹살 파티를 열어 목에 걸린 먼지를 씻어내야 했을 정도로 상태가 심각한 방이었다.
한 가지 비밀을 밝히자면, 의뢰인은 상당히 예쁜 여성이었다.
윤 컨설턴트는“예쁜 여자 중에 방 정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남성들이여, 당장 여자친구의 방을 확인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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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별 정리 팁!

[방 정리의 마법]아무리 치워도 지저분해? ‘구역’ 나누고 ‘공간’을 만들어라
책장
책을 종류별로 구분하면 쉽게 꺼낼 수 있다. 어학, 시험, 전공 도서, 자기 계발, 인문 서적 등으로 구분해 수납하는 것이다. 손이 쉽게 닿는 곳에 더 자주 보는 책을 놓아두자. 수험생이라면 수험서가 중요한 자리에 놓여야 한다. 잡지는 필요한 부분만 찢어서 따로 보관하면 부피를 크게 줄일 수 있다. 또는 6개월, 1년 등으로 기간을 정해서 그 이후의 것만 수납한다.

주목 읽지 않는 책은 온라인 서점인 알라딘, 인터파크 등의 중고숍에 팔아보자. 제법 쏠쏠한 용돈이 될 것이다.



책상
공부가 목적이라면 책상 위는 가급적 비우는 것이 좋다. 책이 많으면 오히려 부담감이 커진다. 책상 서랍에는 작은 물건이 많은데, 물건을 쪼개 보면 몇 종류로 나뉜다. 펜, 휴대폰 부품, 수첩 등 같은 종류끼리 구분해 구획을 나눈 바구니에 보관하면 깔끔해진다.

주목 영수증, 화장품 샘플 등과 같이 작고 잘 흩어지는 것은 지퍼팩에 담으면 좋다.



[방 정리의 마법]아무리 치워도 지저분해? ‘구역’ 나누고 ‘공간’을 만들어라
옷장
옷장 아랫부분에는 무거운 옷을, 윗부분에는 가벼운 옷을 넣는 것이 좋다. 앞부분에는 자주 입는 옷을, 뒷부분에는 다른 계절의 옷을 수납해보자. 그리고 계절마다 이를 바꿔주면 된다. 행거는 최대한 비우는 편이 좋지만, 원룸의 경우 사계절 옷을 걸어야 할 때도 있다. 이때에도 역시 무거운 옷은 아래쪽에, 가벼운 소재는 위쪽에 건다. 계절별, 색상별, 원단별 등으로 옷을 정리할 수 있다. 의뢰인의 행거에는 빛이 들어오는 쪽에는 밝은 색상의 옷을, 그 반대에는 어두운 색상의 옷을 걸었다. 색상별로 옷을 정리할 경우 자신의 옷 취향이 한눈에 보인다. 옷걸이는 한 종류로 통일하고, 스웨터와 티셔츠 류는 행거가 아닌 옷장에 넣을 것.


주목 행거에 옷을 걸 때 입었던 옷을 무조건 앞쪽으로 보내보자. 3개월이 지난 후 뒤쪽에 있는 옷은 내가 입지 않는 옷이 된다. 서류나 책도 이와 같은 방법으로 정리해볼 수 있다.



글 이현주 기자 charis@hankyng.com
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
취재협조 굿베리 정리컨설팅(makece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