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토에게 듣는 직업 세계_항공기 조종사

비행기 한 대가 이륙할 때 많게는 500명 이상이 탑승한다. 사람들은 적지 않은 비용을 내고 하늘 길을 선택한다. 반면 누군가는 억대 연봉을 받으며 비행을 한다. 항공기 조종사가 그들이다.

일등석의 VIP 승객도 누릴 수 없는 하늘 절경을 이들은 매일 본다. 구름 사이를 가로지르며 하늘의 국경을 넘나든다.

어렸을 적 누구나 한 번쯤 꿈꿨을 법한 로망, 하늘을 나는 일. 특수한 경로를 통해 소수의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면, 지금 다시 눈을 떠보자.
항공기 조종사가 되는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창공 위의 지휘자’ 나는 기장이다!
이스타항공의 천병호 기장을 만나기 위해 김포공항 근처의 사무실을 찾았다. 말레이시아 비행을 방금 마치고 왔다는 그는 비행시 복장 그대로였다.

어깨에 달린 견장과 가슴에 찬 배지, 무엇보다 절도 있는 자세와 말투가 ‘나는 기장이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견장의 줄은 직책을 표시하는데 기장은 네 줄, 부기장은 세 줄을 긋는다고 한다.

18년째 항공기를 조종하고 있는 천 기장은 자신의 직업을 어떻게 정의할까.

“항공기를 운항하는 일이죠. 세부적으로는 비행을 주도하는 오퍼레이터이자 비행 시 생기는 여러 문제를 관리·처리하는 매니저예요. 기장은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최종 결정권자이기도 하죠.”

수장으로서 승객들을 안전히 목적지로 이끄는 것 외에도 후배 항공기 조종사를 교육·평가하고, 기술 관련 매뉴얼을 만들기도 한다. 소속은 다양하다.

“항공사에 취업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에요. 기업에 소속돼서 기업 소유의 비행기를 운행하기도 하고, 서울·울진 등 비행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해요. 경력자의 경우 외국 항공사로 진출하기도 합니다.”

한국에는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의 대형 항공사와 LCC(Low Cost Carrier 저비용 항공)로 불리는 이스타항공, 제주항공, 티웨이항공, 진에어, 에어부산 등이 있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국내 항공사에서 근무 중인 조종사 수는 4200명이다. 여성의 진출도 점차 활발해져, 2008년 이후 지금까지 총 5명의 여성 기장이 활약하고 있다.

항공기 조종사로 일하기 위해 갖춰야 할 자질은 무엇일까.

“리더십이 꼭 필요해요. 또 합리적인 사고를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기상 문제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착륙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비행 중 수많은 판단을 해야 해요. 비행기는 항상 위아래, 앞 또는 옆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적시에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갑자기 엔진이 꺼지거나 화산재를 만나는 등 변수가 생길 때에도 이성적으로 빠르게 결정해야 하죠. 위험을 직감하는 본능이 있으면 더 좋아요.”

수많은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는 막중한 임무를 맡는 만큼 조종사의 역량은 중요하다. 그래서 항공기 조종사는 평생을 훈련과 평가 속에서 산다.

“6개월에 한 번씩 비행 훈련을 받아요. 비상 상황에 대처하는 법을 배우고, 비행 용어나 새로운 매뉴얼도 계속 배우죠. 영어에 관해서는 표준항공영어라는 시험을 치르는데, 여기서 4~6등급을 받아야 해요. 그 이하를 받으면 비행 업무를 계속하지 못합니다.”

모든 부기장이 기장으로 승격하는 것이 아니다. 경력이 쌓이면 훈련을 거쳐 국토해양부 직원이 참관하는 자리에서 승격 심사를 받아야 한다. 다른 기종으로 변경할 때도 훈련과 심사를 거치고 그 밖에 정기·부정기적으로 받는 심사가 있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개발시키는 만큼 전문직으로서 자부심을 누리며 산다.

“리더로서 중요한 업무를 수행한다는 책무를 느끼고, 책임을 이행했을 때 보람도 따라요.”

항공기 조종사의 매력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업무 환경 아닐까.

“일반 사무직은 책상 앞에서 컴퓨터를 보고 일을 하지만, 우리는 항공기에 앉아서 탁 트인 하늘을 보고 일하죠. 구름 위에서 해 뜨는 장관도 가장 먼저 보고요. 하늘에서 보는 일몰은 어떤 휴양지에서보다 아름다워요. 공항에서 줄 서지 않는 것도 친구들은 부러워하더라고요.(웃음)”

해외에 자유롭게 나가 여러 경험을 쌓는 것, 평일에도 업무 시간 외에는 자유 시간을 쓸 수 있다는 것은 강조하지 않아도 알 법한 사항. 무엇보다 높은 연봉으로 소문난 항공기 조종사의 실제 연봉, 그것이 궁금했다.

“연봉 구조가 투명하고 체계적으로 돼 있어요. 항공사에 따라서, 비행시간·기종에 따라서 다르긴 한데, 기본적으로 경력이 쌓일수록 연봉이 올라가는 구조예요. 신입 부기장은 월 300만~500만 원 정도를 받고 저 같은 경우 연봉 1억 원 이상 받고 있어요. 월급 이외에도 여러 수당이 있어요. 야간 수당, 비행 수당, 이착륙 수당 등이 있어서 일한 만큼 소득을 얻죠.”

전공 제한 없이 누구나 도전 가능

캡틴으로서의 자부심을 부리면서 쾌적한 업무 환경에서 일하고, 보상도 합리적으로 받는 등 장점이 두드러진다. 힘든 점은 없을까.

“시차, 기압차, 소음 등을 견뎌야 하죠. 평일에 쉬기도 하지만 주말이나 성수기, 공휴일에 일하기도 해요. 또 항공사 내에서 조종사는 리더가 돼야 하고 여러 부서 사람들과 화합할 필요가 있는데, 비행 훈련 이외에 좋은 리더 되는 법 등을 교육해주지는 않아요. 스스로 알아서 잘해야 하는 게 어렵다면 어려운 점이에요.”

항공기 조종사의 세계는 들으면 들을수록 흥미롭다. 대학생에게 반가운 소식은 최근 LCC가 약진을 하고, 항공 수요가 날로 증가하면서 항공기 조종사의 직업 전망이 밝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관련 전공자만이 취업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채용 경로가 다양하다는 사실!

“많이 알려진 것처럼 공사나 공군 출신이 민항사로 취업할 수 있고요, 일반 4년제 대학 졸업생도 두 가지 경로를 통해 조종사가 될 수 있어요. 하나는 항공사에서 실시하는 조종사 프로그램 공채에 응시하는 겁니다. 대형 항공사 위주로 운영되고 있어요. 전공 불문하고 시험을 통과하면 미국 등 비행학교에서 훈련을 받고 부기장으로 일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자비를 들여 사설 비행학교에서 라이선스를 따는 겁니다.”

사설 비행학교의 경우 한국항공대 부설 비행훈련원, 울진·서울·김포 등의 비행학교가 대표적이다. 해외에서 라이선스를 취득하는 경우도 있는데 미국, 호주의 비행학교 출신이 많다.

교육 비용은 1년 평균 5000만~6000만 원. 라이선스 취득까지의 기간은 1년 정도다. 실제 항공기 조종사의 전공은 매우 다양하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천 기장은 체육교육학과 출신이다.
“항공사가 채용을 할 때 인성부터 영어, 물리, 상식 등 다양한 것을 꼼꼼히 평가합니다. 전공은 크게 중요하지 않아요. 열심히 준비해서 시험을 치르면 됩니다. 그보다 먼저 자신이 조종사가 되기에 적합한 사람인지를 살펴봐야 하죠.”

신체 조건과 건강 사항은 필수 체크 항목이다. 시력, 청력이 좋지 않거나 심혈관 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엔 아무리 비행 훈련을 많이 받았어도 항공사로의 취업이 어렵다. 항공 관련 영어는 조종사가 된 이후에 꾸준히 공부하는 사항이므로 취업준비생은 공인영어시험을 준비하면 된다.

마지막으로 천 기장의 조언 한마디를 들어보자.

“한때 조종사를 로봇이 대체한다는 말도 있었지만,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조종에는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꼭 필요합니다. 항공업계가 약진함에 따라 채용이 더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열린 직업이므로 하늘을 보며 조종사를 꿈꿨던 사람이라면 한번 도전해보세요.”

천병호 이스타항공 운항훈련팀 팀장(B737기장)
고려대학교 사범대 졸업
미국 플로리다 비행학교(Flight Safty in Florida) 수료
전(前) 아시아나항공, 에티하드항공 근무
현(現) 이스타항공 교관 및 훈련팀장


항공기 조종사에게 궁금한 점

★항공기 조종사의 경력 관리
조종 훈련 기간(1년 이상) → 부기장(평균 7~10년) → 기장(정년까지)

★비행 스케줄은?
스케줄은 한 달에 한 번씩 바뀐다. 법적 최대 근무시간인 100시간 이내에서 기종에 따라 스케줄 근무를 한다. 보통 한 번 비행을 하면, 하루 정도의 휴식 시간을 갖는다.

★정년은?
항공사에 따라 55~60세(‘촉탁’이라는 계약직 제도로 평균 5년 연장 근무 가능)

★교육기관별 조종사 비율은?
공사·공군 출신 약 40%, 항공사 조종사 프로그램 공채 출신 약 40%, 사설 비행학교 출신 약 20%(사설 비행학교 졸업생이 점차 늘고 있는 추세)

글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 사진 서범세 기자 joyci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