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봉사에서 천직을 찾다 ⑤

“해외봉사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뻔한 이야기다. 하지만 한국국제협력단(KOICA)에서 근무하는 조정신 씨가 하는 말이라면 조금 다르게 들릴 수 있다. 아프리카에서 3년을 살았던 그가 직접 털어놓는 감회라면 말이다.

조 씨는 지난 2006년부터 에티오피아에서 해외봉사를 했다. 신분은 KOICA 국제협력요원. 군 복무를 특별하게 하고 싶다는 생각에 지원했다. ‘봉사’보다는 ‘해외’라는 말에 더 끌렸다는 고백도 풀어놓는다.

에티오피아에서 2년간 봉사하는 동안 그는 현지인의 삶 속에서 자신이 변화시킬 수 있는 것들을 찾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변한 것은 에티오피아 사람들의 삶뿐이 아니었다. 그의 꿈과 가치관도 달라져 있었다.

2년의 활동이 끝난 뒤 그는 다시 에티오피아를 찾아 1년을 더 일했고 지금은 그 경험을 바탕으로 외교통상부 산하기관인 KOICA에서 근무 중이다. 평범한 직장인을 꿈꾸던 청년은 지금 ‘국제 원조’라는 큰 꿈을 꾸고 있다. 그런 그가 말한다. “해외봉사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KOICA 공동기획] “아프리카에서 꿈 찾기, 당신도 할 수 있어요!”
조정진씨 “에티오피아로 간다는 걸 알았을 때 얼떨떨했죠.”

KOICA 국제협력요원에 합격했던 순간을 조정신 씨는 이렇게 기억했다. 파견국으로 배정된 에티오피아가 어떤 나라인지 잘 몰랐다는 것. 대학 졸업 후 아르바이트를 하며 IT업계 취업 준비를 하던 중이었으니 아프리카의 빈곤국에 관심이 있을 리 없었다.

“사실은 군 복무를 특별하게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지원했어요. 봉사도 좋지만 해외 경험을 쌓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죠.”

그가 지원한 국제협력봉사요원은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중동지역의 개발도상국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군 복무를 대체할 수 있는 제도다.

비행기로 14시간 거리, 멀고 먼 아프리카 대륙에서 인생의 첫 해외 경험을 시작한 그에게 일어난 일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처음 놀란 것은 생각보다 선선한 에티오피아의 날씨. 해발 2500미터에 위치한 수도 아디스아바바는 연평균 기온이 16도로 쾌적한 편이다.
[KOICA 공동기획] “아프리카에서 꿈 찾기, 당신도 할 수 있어요!”
생활수준도 한국과 달랐다. 에티오피아의 1인당 국민소득은 220달러(2007년 기준)에 불과하다. 전 국민의 80%가 하루 2달러로 생활하는 수준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를 당황케 한 것은 현지인 사이에서 통용되는 ‘외국인 물가’가 따로 있다는 것.

택시 기사가 요금을 일부러 높게 부르거나 버스에서 차장이 거스름돈을 주지 않는 것은 초기 해외봉사단원이 흔히 겪는 어려움 중 하나였다.

“그들을 도와주려고 갔는데 오히려 저를 이용하려고 하니까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죠.”

이방인처럼 느껴지던 생활이 안정되기 시작한 것은 현지어인 ‘암하릭’을 구사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에티오피아인이 영어와 함께 사용하는 암하릭은 아프리카 언어 중 유일하게 문자가 있는 언어다. 그만큼 현지인이 느끼는 자부심도 대단하다. 암하릭을 아는 외국인을 보면 신기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친숙하게 다가오는 이가 많다.
[KOICA 공동기획] “아프리카에서 꿈 찾기, 당신도 할 수 있어요!”
그가 전하는 에피소드 하나. “하루는 택시를 탔는데 또 거품 가격을 부르는 거예요. 화가 나서 암하릭으로 말했죠.
‘나 가격 알아요. 보통 얼마에 가잖아요. 왜 외국인이라고 비싸게 받아요?’ 하고요.” 더듬더듬 말을 잇는 그를 본 택시 기사가 웃음을 터트렸다. 고개를 끄덕이며 택시 요금을 깎아준 건 물론이다.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도 저는 반드시 해외봉사를 택할 겁니다. 젊은 나이에 부모 곁을 떠나 봉사활동을 했던 경험이 인생이라는 ‘서바이벌 게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을 키워줬다고 생각하거든요.”


수만 리 타국에서 ‘진정한 홀로서기’

조 씨가 배치받은 곳은 수도인 아디스아바바에 위치한 에티오피아 연방 경찰 통신국. 경찰이 사용하는 무선 시스템을 관리하는 사무소다. 이곳에서 그가 중점적으로 추진한 사업은 컴퓨터 실습실을 만드는 것.

“전자회로에 대해선 전문가인 직원이 많았지만 컴퓨터를 다룰 수 있는 이는 많지 않았기 때문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전공한 전산학을 이용할 수 있는 프로젝트이기도 했고요.”

현지인에게 컴퓨터는 생소한 기기였지만 유망 산업이란 이야기에 호응이 높았다. 근무 중 시간을 내 실습실을 찾아온 직원들이 1~2시간씩 수업을 받고 돌아갔다.

“대부분 30~50대였는데 나이가 어린 저를 선생님으로 깍듯이 대해줘서 고마웠어요. 지금도 제가 만든 실습실이 잘 운영되고 있다는 후임 봉사단원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습니다.”

그는 2년간의 해외봉사를 통해 진정한 홀로서기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실습실을 만들고, 커리큘럼을 짜고, 가르치는 일까지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하는 동안 자신이 알지 못했던 능력을 발견하게 됐다는 것.

“봉사라고 거창한 것이 아니더라고요. 현지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부분을 잘 파악한다면 학생 신분으로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이 많거든요.”

또한 다른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국제 개발에 대한 가치관을 세우는 계기가 됐다고 덧붙였다. “예전엔 해외봉사라고 하면 배가 불룩 튀어나오고 앙상한 팔을 가진 어린아이의 얼굴만 막연히 떠올렸었죠. 하지만 실제로 에티오피아에서 생활하며 나와 다른 문화 속의 사람들을 이해하는 법을 알게 됐고, 이들을 어떻게 도와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구체적으로 하게 됐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찾은 국제 개발의 새 꿈
[KOICA 공동기획] “아프리카에서 꿈 찾기, 당신도 할 수 있어요!”
2년간 활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조 씨는 1년도 지나지 않아 다시 에티오피아로 향했다.

에티오피아 현지 사무소의 해외봉사단 관리요원에 선발된 것이다. 후배 봉사단원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업무로 한 번 더 에티오피아와 연을 맺은 그는 그 해 KOICA 신입 공채에도 도전했다.

필기시험과 면접시험을 보기 위해 당시 근무하던 에티오피아에서 한국까지 두 번이나 비행기로 왕복해야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해외봉사를 떠나기 전에는 평범한 직장인을 꿈꿨는데, 에티오피아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국제 개발 사업에 대한 꿈을 갖게 됐죠. 현지 사무소에서 일하는 직원 분들을 보면서 KOICA 사업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됐고,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면접에서는 현지에서 쌓은 경험을 중점적으로 어필했다. “봉사단원과 관리요원으로 일한 경험이 있으니 봉사 사업 전체를 아우르는 일을 잘할 자신이 있었어요. 현지인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데 봉사 경험이 큰 도움이 됐어요.”
[KOICA 공동기획] “아프리카에서 꿈 찾기, 당신도 할 수 있어요!”
2009년 11월 KOICA 봉사기획팀에 입사한 그는 현재 경영지원부 조달계약팀에서 근무 중이다.

KOICA의 주요 사업에 대해 원조 조달 계획 및 전략을 수립하고, 시공 업체 선정 및 계약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다.

그는 “국제 개발, 국제 협력 분야에 대한 공부를 계속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큰 그림을 그려나가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도 저는 반드시 해외봉사를 택할 겁니다. 젊은 나이에 부모 곁을 떠나 봉사활동을 했던 경험이 인생이라는 ‘서바이벌 게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을 키워줬다고 생각하거든요. 다만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영어와 전공 공부를 더 많이 한 뒤에 가고 싶습니다. 현지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이 언어와 전공이니까요. 해외봉사를 준비하는 후배들이 꼭 기억했으면 하는 부분입니다.”
[KOICA 공동기획] “아프리카에서 꿈 찾기, 당신도 할 수 있어요!”
*조정신 씨는…
2004년 전남대 전산학과 졸업
2006~2008년 KOICA 국제협력봉사요원(에티오피아)
2009년 KOICA 해외봉사단 관리요원(에티오피아)
2009년 KOICA WFK사업본부 WFK기획팀 입사
2011년 현재 KOICA 경영지원부 조달계약팀 근무
글 김보람 기자 bramvo@hankyung.com
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