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태로운 졸업반 커플의 연애

제아무리 위대한 사랑도 생존 문제 앞에선 때로 사치가 된다. 대하드라마 속에 나오는 명제가 아니다. 2011년의 한국을 살아내야 하는 대학생들의 현실이다. ‘사상 최악’의 타이틀을 붙이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취업 전쟁 소용돌이 속에서, 졸업을 앞둔 젊음의 사랑이란 점점 위태로운 그 무엇이 되어버렸다. 비정한 시대를 살아가는 당신들을 위한 위로의 한마디.
[LOVE] 이 시간을 이겨내고 우리 사랑할 수 있을까?
10년 전 필자가 졸업을 앞두었을 즈음에도 상황은 최악이었다. 지속적인 경기 침체로 인한 우울한 경제지표와 대량 해고 사태, 그리고 도미노처럼 이어지는 신규 고용 위축. ‘적어도 내가 졸업할 땐 이 사태가 좀 진정되겠지’라는 일말의 기대는 흐지부지 사라져버렸고, 소수의 자리를 두고 수많은 또래가 무한 경쟁을 해야 하는 비정한 취업 전쟁의 물결에 뛰어들어야 했던 시간이 있었다.

10년이 흘렀고 정권이 두 번 바뀌었다. 하지만 한 줄로 세워진 채 무한 경쟁을 강요받는 정규교육 과정, 자신의 가치를 온전히 발현하고 싶은 젊음들에게 그럴 기회가 충분히 주어지지 않는 슬픈 현실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생존의 위기를 온몸으로 감당해야 하는 젊음에게 결론적으로 사랑은 사치스러운 그 무엇이 돼버린 지 사실은 10년이 넘었다는 얘기다.

“지금이 7학기째이고, 그녀와 저는 3학년 초부터 사귀었으니까 사귄 지 1년이 좀 넘었어요. 3학년 때는 수업이 끝나면 함께 카페도 가고 영화도 보고, 각자 꾸는 꿈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죠.

7학기가 되고 나니 서로 말은 안 했지만 그런 식으로 쓰는 시간이 조금씩 버겁게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당장 취업이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압박감 때문에 카페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조차 ‘과연 이래도 되나’라는 자기 검열의 과정을 거치게 된 거죠.

마치 고3 때처럼요. 저학년 때 낮은 학점을 받았던 과목들을 재수강하고, 각종 발표 준비에다 토익학원, 스터디, 거기에 면접 준비까지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 지쳐가면서 서로에 대한 애정을 잃어버린 것 같아요. 어쩌면 그녀와 제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관계였는지도 모르지만요.”

언젠가 결혼을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여자친구와 얼마 전 헤어진 이성훈(24) 씨의 고백이다. 수많은 사람이 사랑의 위대한 힘에 대해 찬미할 때 분명 사랑은 모든 것을 이겨내는 힘이 된다고 이야기했건만, 왜 우리는 취업 스트레스 때문에 그동안 잘 지내오던 관계를 놓아버리고 마는 것일까?

정말 그것밖에는 방법이 없는 것일까? 어쩌면 일생을 두고 다시 만날 수 없을지 모를 소울메이트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지금이 아니면 느낄 수 없을 충만한 사랑의 감정을 만끽할 기회를 버리고 사는 건 아닐까?

지금 이 질문에 명쾌하게 ‘no’라고 답할 수 없다면 당신은 지금이라도 멈춰서서 잠시 생각해봐야 한다. 성공과 사회적인 위치가 아무리 대단한 목표라 해도 사랑이 없는 삶이라면 그 모든 것은 무용지물이라는 걸 당신도 부정할 수 없을 테니까. 결국 당신이 원하는 성공도 사랑하는 사람과 더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이니까.

당신이 기억해야 할 ‘4학년 연애의 원칙’

극심한 압박감 때문에 지금 하고 있는 연애를 그만두려 하는가?
그 전에 이 정도 액션은 취해봐야 한다.

첫째 둘의 관계 그 자체에 집중해보라

물론 알고 있다. 자칫하면 취업재수생이라는 괴로운 타이틀을 받을 수도 있는 결정적인 시기에 연애에 대해 고민한다는 게 사치스러운 일로 느껴질 수 있음을. 하지만 나중에 돌아봤을 때 후회 없는 결정을 내리려면 적어도 “난 정말 진지하게 고민했다”라고 스스로에게 떳떳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취업 준비는 제대로 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 ‘연애는 언제라도 할 수 있겠지’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 온통 뒤엉킨 상태에서 각자의 스트레스를 해결하지 못한 연인은 미처 어떻게 액션을 취해볼 새도 없이 이별 수순을 밟는다.

이별을 생각하기 전에 적어도 한 번은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이 사람이 없는 게 차라리 낫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렇다면 나는 고작 이런 감정을 갖고 있는 사람과 지금까지 왜 만나고 있었던 걸까?’

‘이 힘든 시간을 통과하는 데 이 사람이 걸림돌처럼 느껴지는 결정적인 이유는 뭘까? 해결 가능한 문제인가 아닌가?’ 명쾌하게 ‘정말 이 관계는 애초에 끝냈어야 할 관계야’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아닌 이상, 섣불리 헤어짐을 결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단순히 지금껏 사귄 정이나 의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상황이 조금 안 좋다고 해서 헤어지는 연애, 그것도 결국은 습관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연애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거라면 굳이 말리진 않겠다.

둘째 함께하는 시간의 양보다 질에 집중하라

졸업과 취업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가 오면 둘 사이에는 이전까지 없던 묘한 긴장의 기류가 생긴다는 것, 경험해본 사람은 아마 알 것이다. 둘이 함께 유유자적 데이트하던 예전과는 달리 서로에게 시간을 낸다는 게 점점 버겁게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현명해져야 한다. 함께 지내는 시간이 부족해지더라도 그 상황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매일매일 변하는 존재들이고, 그런 우리를 둘러싼 환경도 하루하루 변한다.

사랑이 언제나 변치 않고 그대로일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과한 기대가 아닐까? ‘어떻게 사랑이 변할 수 있니?’라고 상대방을 채근할 것이 아니라, 힘든 시간 속에서 둘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할지 기대감을 갖는 편이 둘의 관계에도 훨씬 도움이 되지 않을까?

중요한 건 함께하는 시간의 양이 아닌 질이다. 예전만큼 유유자적 데이트 모드로 지낼 순 없지만, 시간을 쪼개고 없는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서로에게 진심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하루 종일 샴쌍둥이처럼 붙어다니는 연애만 하던 습관에서 벗어날 때도 됐다. 그토록 고대하던 직장인이 되면 적어도 지금보다 두 배는 바빠지고, 함께할 시간은 그만큼 줄어들 테니까.

셋째 상대에 대한 배려는 무조건적이다

연애를 오래 못하고, 툭하면 ‘이럴 거면 헤어져’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건 아닌가? 연애를 해도 충만한 행복은커녕 늘 괴로움과 갈등 속에서 허우적댈 수밖에 없었던 건 지금껏 해온 당신의 사랑이 고작 ‘나한테 얼마나 잘하나 두고 보겠어’ 수준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만약 이런 식의 연애 패턴을 대학 생활 내내 유지해온 당신이라면 아마도 졸업을 앞두고 사귀고 있는 연인과 헤어질 확률은 99%일 것이다. 미안하지만 그런 식의 유아기적 연애를 반복적으로 하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낄 사람은 점점 사라질 것이다.

모두 성공을 향해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도시의 비정하고 외로운 삶, 사랑을 통해 위안받고 싶은 것은 당신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태어나서 맞이하는 가장 비정한 시간, 만일 그것이 취업 경쟁시장에 내던져진 지금인 사람들끼리 만나서 서로에게 든든한 위로이자 버팀목이 되는 시간으로 변하기를 기대하면 너무 과한 걸까?

서로에게 최대한 배려하는 연애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 ‘나한테 얼마나 잘해줄까’를 생각하기 전에 ‘내가 저 사람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그런 연애 말이다.

난 취업 전쟁 속에서도 성공적으로 연애했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의외로 답은 쉬운 곳에 있다는 사실을 선배들이 알려준다.

싸움에 현명하게 대처했어요

“졸업을 앞두고 서로 날카로워지면서 티격태격 싸울 일이 잦아졌죠. 그럴 때마다 그녀와 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싸움을 그 다음날까지 가져가진 말자’라고 약속한 것을 떠올렸어요.

스트레스 때문에 서로에게 이런저런 불만을 쏟아놓다가 격해지는 순간은 있었지만 ‘이럴 거면 헤어져’란 말이 한 번도 나오지 않은 건 ‘어차피 우리는 오늘 저녁 안에는 화해해야 할 사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에요.” 김성훈(29·연구원)

서로를 고마운 존재라고 생각했어요

“함께 뭔가 할 수 있는 시간도 에너지도 부족해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조바심을 갖진 않았어요. 곁에 아무도 없다면 더 외로운 상태에서 취업 전쟁에 뛰어들어야 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내 곁에 있어주는 것 자체만으로 고맙지 않나요? 하루에 한 번씩 ‘고마워’라고 말하는 습관을 들여보세요. 아마 예전보다 사이가 더 좋아질 걸요.” 이현진(28·마케터)

데이트 시간을 정해놓고 만났어요

“졸업반이던 저에 비해 아직 2학년이었던 여자친구는 시간이 많았죠. 그녀는 가능한 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했지만 전 그럴 수 없었어요. 일주일에 딱 두 번 데이트 날을 잡았어요.

수요일은 저녁 시간, 일요일은 늦은 오후부터 밤늦게까지. 대신 그날만큼은 둘이 신나게 놀면서 일주일간 쌓인 스트레스를 제대로 푸는 시간으로 삼았죠. 스트레스도 풀고 데이트도 하고, 정말이지 일석이조던데요.” 박성수(29·광고 회사)
[LOVE] 이 시간을 이겨내고 우리 사랑할 수 있을까?
곽정은

‘코스모폴리탄’ 피처 에디터이자 연애·성 칼럼니스트.
‘신데렐라의 유리구두는 전략이었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