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개그맨’으로 불리던 소녀…

지난해 KBS 공채 개그맨 시험에 합격한 이후 같은 해 연예대상 시상식에서 2개의 상을 휩쓴 이, ‘1박 2일’에서 은지원이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고 성대모사했던 주인공, 드라마 ‘드림하이’에 카메오 출연해 ‘미친 존재감’으로 불리기도 했던 그녀, 개그우먼 김영희다.

그는 요즘 확실히 뜨고 있다. 개그콘서트 ‘두분토론’에서 여당당의 대표로 활약하더니 ‘봉숭아학당’에선 돌아온 싱글들의 모임 ‘비너스’의 회장 역으로 인기몰이 중이다.

거센 경상도 억양으로 거침없이 말을 쏟아내는 아줌마 대표. 비너스에서 웃음 포인트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회원들이 제명을 당하는 순간이다.

“좋은 예로 평소 아이들을 좋아하는 손옥희 회원님께서는 젊은 피가 좋다고 자전거 부대가 아닌 인라인 부대에 껄떡대는~ 순간, 제명이 됐어요.”

제명을 외치기 전 절묘하게 반 박자를 쉬는 것이 핵심이다. 그의 개그엔 리듬감이 살아 있다.

“진짜 유머는 김영희가 20대라는 것이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캐릭터 싱크로율 100%인 개그우먼 김영희를 만났다.
[스타와 커피 한 잔] 개그우먼 김영희 “뒤늦게 천직을 찾았죠”
인터뷰는 여의도 KBS 근처 카페에서 이뤄졌다. 멀리서 들어오는 한 여인. 꽃무늬 스커트에 리본 달린 블라우스. “안녕하세요” 하며 수줍게 인사하는 그가 과연 아줌마 대표 그 김영희가 맞단 말인가.

“생각보다 동안이에요.”

“그런 얘기 많이 들어요. 어려 보인다는데 기분 좋죠.”

그는 KBS에서 개그우먼으로 발을 디딘 이후 곧바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상도 타고 광고도 찍었다. 2008년부터 차례대로 OBS, MBC, KBS 공채 개그맨 시험에 모두 합격한 능력자다. 남 웃기는 재주가 타고난 것일까.

“어렸을 때 동네 개그맨으로 불렸어요. 드라마는 안 봐도 개그 프로그램은 다 챙겨 볼 정도로 좋아했고요. 그런데 꿈이 개그우먼은 아니었어요. 한때는 피아노 전공하려고 레슨을 받았어요.”

갑자기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피아니스트의 꿈을 접고 영상제작과를 선택했다. 원해서 들어간 과는 아니었지만 후회 없는 대학생활을 했다. 진짜 당당한 여성이었다고.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과 학회장을 했어요. MT를 가면 신입생 앞에서 장기자랑을 하고 응원상도 과 최초로 받았죠. ‘학회장이 골 때리더라’ 해서 과 인지도가 높아졌어요. 제 인생의 전성기였죠.”

6개월 동안 밤새워 가며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단편영화도 찍었다. 컴맹이었지만 주변 친구들과 협업하여 꽤 괜찮은 작품을 만들어냈다.
[스타와 커피 한 잔] 개그우먼 김영희 “뒤늦게 천직을 찾았죠”
“알고 보니 컴퓨터를 많이 다루는 곳이었어요. 다행히 좋은 친구들을 만나서 저는 기획만 하고 말로 풀었어요. 기술적인 면은 친구들이 담당했고요.”

기술력 못지않게 어렵고 또 중요한 것이 바로 기획력이다.

“기획력은 확실히 좋았던 것 같아요. 기존의 것을 수정하고 조합하는 것을 잘했어요. 디테일을 잘 잡는 것 같기도 하고요.”

김영희는 지난해 KBS 연예대상에서 신인상과 함께 아이디어상을 수상했다. 아직 고정 코너가 없는 개그맨 동기들과 함께 밤을 새우면서 아이디어를 짜는 데도 적극 나서고 있다.

학창 시절 얘기가 나와 관련 질문 하나를 더 던졌다. 이번엔 공부 얘기. 이미 어디선가 ‘나 공부 잘했다’고 말한 김 씨의 코멘트를 접한 후였다.

“못하진 않았어요. 언어영역은 진짜 잘했어요. 수능 모의고사에서 120점 만점을 받은 적도 있어요. 선생님이 의심을 했죠. 초등학교 때 숙제로 시를 지어 가면 선생님이 ‘어디서 보고 베꼈느냐’고 해서 어머니가 직접 학교에 가 증언을 한 적도 있어요.”

문득 끝없이 입담을 늘어놓는 김영희 식 개그가 떠올랐다. 개그에도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 그런데 왜 잘해도 선생님의 의심을 산 걸까?

“수학을 못했어요. 이상하게 열심히 풀어도 10점이 안 나오더라고요. 수학만 아니었으면 다른 대학에 갔을 거고 회사원이 돼 있었을 텐데. 수학이 저를 개그의 길로 인도한 것 같아요. 오히려 고맙죠.(웃음)”

온통 개그 생각…‘제2의 신봉선’ 되고 싶어

정작 개그우먼의 꿈을 키운 건 대학을 졸업한 이후다. 다른 개그맨에 비해 비교적 늦게 출발한 셈이다.

“우연히 코미디 관련 일에 뛰어든 후배를 보고 소극장 시험을 본 것이 계기가 됐어요. 그냥 친구들을 웃기는 삶에 만족했었는데 재능이 있는 걸 알았더라면 좀 더 빨리 시작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개그우먼이 된 이후 지금까지 줄곧 휴대전화 메인 화면은 그의 롤모델 개그우먼 ‘신봉선’이다. 아줌마의 신, 미친 존재감 등 여러 별명 중에서도 ‘제2의 신봉선’이라고 불리는 것이 가장 기쁘다고 한다.

그는 데뷔 첫 해 유행어를 쏟아내는 저력을 보여줬다. 도대체 그 아이디어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유행어는 밤을 새워도 나오지 않다가 애드리브 한 번으로 만들어지고 그래요. ‘제명이 됐어요’는 KBS 공채 개그맨 시험을 볼 때 했던 말이에요. 그때 반응이 좋았는데 살을 붙여서 다시 선보였어요.”

아줌마 캐릭터를 연기하며 김 씨는 개그맨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고 한다.

“엄마한테 통하는 개그를 해서 더 좋아요. 아줌마들한테 인기가 많아졌어요. ‘나도 5학년 4반이다(54세를 이름)’고 편지를 보내는 팬도 있고, 일단 대중목욕탕이나 아줌마 밀집지역에는 절대 못 가게 됐어요.(웃음)”

KBS 무대 데뷔 후 무명생활 없이 상승곡선을 타고 있는 그는 떠오르는 인기만큼 행복할까.

“개그맨은 현장에서 바로 관객들의 반응을 볼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생동감이 넘치잖아요. 지금이 가장 행복해요. 스트레스는 많지만요.”

문득 지난해 연예대상에서 울먹이며 얘기하던 그가 생각났다. 당시 무려 10분 동안 소감을 얘기해 주변 사람들에게 ‘대상 받았느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밤낮 없이 개그 생각을 하느라 주변에서 오히려 휴식을 권유한다고 하는 개그우먼 김영희. 앞으로도 계속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개그를 들려주길 기대한다.


김영희

1983년 생
영남이공대 영상제작학과
2009년 MBC 18기 공채 개그맨
2010년 KBS 25기 공채 개그맨
2010년 KBS연예대상 코미디부문 여자신인상 수상
2010년 KBS연예대상 최우수 아이디어상 수상


글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사진 서범세 기자 joyci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