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리재보험 등산 면접

지난 12월 6일 월요일 새벽 7시. 청계산 입구로 향하는 4432번 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는 20대 중반의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종점인 ‘옛골’에 도착하자 등산로 입구에 수십 명의 젊은이들이 모여 있었다.

7시 40분. 홀연 대형 버스 한 대가 등산로 입구로 들어왔다.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은 모여 있던 젊은이들에게 번호표를 하나씩 나눠줬다. 가슴에 번호표를 단 젊은이들은 인솔자의 구령에 따라 몸을 풀었다. 2010년 코리안리 신입사원 공채의 마지막 관문, 철인 3종 경기를 방불케 하는 ‘심층 야외 면접’은 그렇게 시작됐다.
[현장스케치] 등산복에 축구화 신고 보는 ‘생얼’ 면접
코리안리의 인재상? 바로 ‘야성’

코리안리는 2003년부터 산행-축구(오래달리기)-식사로 이어지는 심층 야외 면접을 진행해왔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생존 본능, 즉 ‘야성’을 갖춘 인재를 채용하려는 코리안리 박종원 사장의 경영철학 때문이다.

코리안리 전 직원은 2004년부터 2009년까지 하루 평균 11시간을 걷는 백두대간 종주를 다녀왔다. 올해는 3개 조로 나눠 백두대간 역(逆)종주를 2박 3일간 했다. 박 사장부터 말단 신입사원에 이르기까지 누구 하나 ‘열외’란 없다. 이러한 ‘야성 경영철학’은 신입사원 면접에도 그대로 반영돼 있다.

이번 산행 면접에는 63명의 실내 면접 통과자가 참가했다. 지원자들은 5~6명이 1개 조로 편성돼 직원 2명(관리자, 실무자)과 함께 3시간 반이 소요되는 산행을 시작했다. 직원들은 숨이 턱까지 차올라 힘들어하는 지원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들의 언행과 성품 등을 체크했다.

기자와 동행한 홍보실 박헌정 팀장은 “실내 면접이 화장을 하고 보는 맞선 자리였다면 야외 면접은 지원자들의 ‘생얼’을 확인할 수 있는 진짜 면접”이라고 말했다. 박 팀장이 말한 ‘생얼’이란 힘든 산행을 통해 드러나는 지원자들의 성격과 가치관이다. 가파른 등산로를 올라가는 지원자들에게 면접관들은 ‘경영학을 전공한 이유’ ‘아르바이트 경험’ 등을 물어봤다.

해발 618m의 청계산은 4개가 넘는 봉우리가 있고 경기도 과천까지 뻗어 있다. 특히 ‘옛골’로 올라가는 등산로는 입산 10분 후부터 약 300m의 가파른 경사가 시작된다. 틈틈이 운동을 하지 않은 지원자들에게는 말 그대로 ‘깔딱고개’.

산행 초반부터 숨이 턱까지 차올라 대열에서 낙오한 지원자들이 눈에 띄었다. 담당 면접관은 함께 남아 지원자들을 독려했다. 도중에 산행을 포기하면 자동 탈락되므로 지원자들은 이를 악물고 무거운 발걸음을 떼야 했다. 체력이 부쳤는지 대열의 후미를 이룬 지원자들의 얼굴에서는 웃음기가 사라졌다.

3시간 반 동안의 산행을 마친 지원자들은 용인에 있는 ‘대림산업 연수원’으로 이동해 점심을 먹었다. 산행 후 먹는 꿀맛 같은 점심이었지만 지원자들은 한시라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기본적인 식사 예절까지도 평가 대상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박 사장과 함께 점심을 먹으며 “야외 면접의 장점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박 사장은 “코리안리는 직원들이 같이 일할 사람을 직접 보고 뽑는다”며 “이러한 선발 과정을 통해 모든 직원이 회사 미래에 대한 큰 책임감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직원 모두가 회사 일에 참여하는 ‘참여 경영’의 일환이라는 것이 박 사장의 설명이다.
[현장스케치] 등산복에 축구화 신고 보는 ‘생얼’ 면접
“축구를 못하면 볼보이라도 열심히 하라”

10분 남짓 짧은 휴식을 마친 지원자들은 운동장으로 이동해 다시 몸을 풀었다. 지원자들은 대오를 맞춰 운동장을 돌았다. 산행에 지친 지원자들이 걷기 시작했다. 면접에 참가한 양영진 인사교육과장은 “이제 슬슬 지원자들의 체력과 진면목을 제대로 알 수 있게 된다”며 지원자들의 행동을 꼼꼼하게 점검했다.

가벼운(?) 구보로 몸을 푼 지원자들은 2개 조로 나뉘어 축구 시합을 했다. 축구 시합은 산행 면접의 연장선. 실력이나 개인기보다는 전체를 위한 플레이와 성실성 위주로 평가한다. 남성뿐 아니라 여성 지원자도 20분 동안 축구 경기에 참가했다. 박 사장은 “축구를 못하면 볼보이라도 열심히 하라”고 말했다.

박 사장은 운동장에 마련된 간이 막사에서 지원자들의 축구 시합을 지켜봤다. 박 사장 앞에는 지원자들의 자필 이력서가 담긴 두꺼운 파일이 놓여 있었다. 홍보실 박 팀장은 “코리안리의 서류 전형이 한 달 동안 진행되는 이유는 1000장에 달하는 지원 서류를 사장님이 직접 읽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코리안리가 공개한 지원자들의 서류에는 박 사장이 직접 표시한 부분이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박 사장은 눈에 띄는 지원자들의 번호와 얼굴을 확인한 후 관련 서류를 꼼꼼히 체크했다.

축구 경기를 마친 지원자들은 800m 오래달리기로 ‘철인 3종’ 뺨치는 야외 면접의 대미를 장식했다. 몇몇 지원자는 표정이 굳어 있었고 면접관들은 그들의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추운 날씨임에도 지원자들의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이 맺혀 있었다.

지원자들은 코리안리 직원들과 함께 사우나를 하고 저녁 식사를 하면서 음주 예절을 비롯한 기본적인 에티켓을 점검받았다. 홍보실 박 팀장은 “음주를 잘하고 못하고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얼마나 진지하고 허심탄회하게 자신을 PR할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한 평가 기준”이라고 말했다. 또 “음주와 개인 건배사로 진행되는 식사 면접을 통해 입사 당락이 뒤바뀌는 사례도 있다”고 귀띔했다.

지원자들은 이러한 야외 면접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한 여성 지원자에게 “이번 산행 면접이 힘들지 않았나요”라고 질문을 던져봤다. 그는 바닥난 체력, 땀으로 지워진 화장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번 면접을 위해 2주 전부터 매일 1시간 동안 조깅을 했다”며 “축제나 운동회처럼 야외 면접을 즐기고 있다”고 대답했다.

코리안리재보험은 어떤 회사?

박종원 코리안리 사장은 1998년 말 보증보험 영업 손실 3818억 원, 당기 순손실 2800억 원으로 적자에 허덕이는 대한재보험(현 코리안리)의 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사기가 떨어진 직원들에게 ‘야성’을 일깨웠다.

야성은 열정과 의욕, 끈질긴 생존 본능을 뜻한다. 이런 박 사장의 ‘야성 경영’은 코리안리를 260명의 직원이 4조6000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세계 11위, 아시아 1위의 재보험사로 우뚝 서게 만들었다. 박 사장은 업계 최초로 5연임이란 신화를 썼다.

재보험이란 ‘보험 회사가 드는 보험’이란 뜻으로 코리안리는 ‘보험사의 보험 회사’다. 대리점이나 영업 지점을 통해서 소비자에게 보험 상품을 판매하는 생명보험회사나 자동차보험회사 등 원수(元受)보험회사를 상대로 영업을 한다. 코리안리 박헌정 홍보팀장은 “신입사원도 재보험 계약 심사 및 인수 작업인 ‘언더라이팅’ 업무를 담당한다”며 “속칭 ‘보험 아줌마’처럼 소비자 영업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코리안리 채용 프로세스
같이 일하고 싶은 후배, 선배가 직접 뽑아

코리안리의 신입사원 공개 채용에는 토익 990점 만점, 학점 4.5 만점의 ‘특등급’ 지원자들이 몰린다. 업계 최고의 연봉, 업무 후견인 제도, 입사 후 2~3년 이내에 1회 이상 해외 연수 등 신입사원을 위한 혜택이 빵빵하기 때문이다.

코리안리에 입사하고 싶다면 주목하자. 지금부터 코리안리에서 공개한 신입사원 채용 전형 가이드라인을 공개한다.

가. 취업설명회 >> 출신 대학 1~2년 선배가 직접 리크루팅 나서

코리안리는 매년 9월 취업박람회와 취업설명회를 개최한다. 특히 출신 학교 1~2년 선배인 직원이 직접 나서서 자신의 경험담을 전달하며 우수 인력 유치에 앞장서고 있다.

나. 서류 전형 >> 출신 대학 선배가 1차 서류 전형 실시 (2차 관리자급, 3차 사장)

지원자들의 어학 실력, 학점 등 외형적 조건이 상향 평준화되면서 사회성과 대학생활에 대한 평가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코리안리는 인사담당 직원이 아닌 지원자의 출신 대학 선배 직원 3명과 다른 대학 출신 직원 1명이 한 조가 되어 서류 전형을 실시한다. 예컨대 지원자가 활동했던 동아리, 학과, 대외 활동 등은 학교 선배의 입장에서 정확히 판단할 수 있다.

다. 1차 실내 면접 >> 사장부터 신입사원까지 면접에 참석

면접관은 박종원 사장, 인사담당 임원, 총무부장(인사담당)과 더불어 노조위원장, 영어 테스트를 위한 영어 자문위원, 직원 대표 2명으로 구성된다. 5~6명이 한 조를 이뤄 1시간 동안 심층 실내 면접을 진행한다.

라. 2차 야외 면접 >> 산행-축구-식사로 이어지는 심층 야외 면접

산행 면접은 3시간 정도 소요되는 구간을 돌며 진행된다. 직원 2명(관리자, 실무자)이 참가해 지원자들의 언행과 품성 등을 파악한다. 축구 시합은 체력과 팀워크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성실하게 뛰어다니고 팀을 위해 노력하면 좋은 점수를 받는다. 저녁 식사에서 진행되는 ‘음주 면접(?)’은 음주 예절과 자기 절제 등을 파악하는 자리다.

마. 최종 선발 >> 사장과 직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심사해 선발

박종원 사장과 야외 면접에 참가한 직원들은 최종 선발을 위해 토론을 벌인다. 서류 전형과 1차 실내 면접 점수가 아무리 높다고 해도 실수로 ‘욕’을 했다거나 주변을 배려하지 않은 행동을 한 지원자들은 가차 없이 탈락시킨다.


취재·사진 이재훈 인턴기자 hymogoo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