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희 한경희생활과학 대표

[나의 꿈 나의 인생] 도전의 연속인 삶… 꿈 향해 달리는 난 행복하다
“입식 부엌 이후 남녀평등에 가장 기여한 여자”

한 사회학자는 한경희 대표(47)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스팀청소기를 개발해 남자들에게 걸레질을 하게 만든 주인공이라는 뜻이다.

한 대표는 ‘국민 청소기’ 스팀청소기 신화를 만든 스타 CEO다. 남들의 부러움을 사는 ‘꽃보직’ 공무원을 버리고 사업을 택해 성공을 일군 근성의 CEO이기도 하다.

또 두 아들을 키우는 엄마이자 아내로 1인 다역을 하는 주부 CEO다. 그가 사회학적 평가를 받을 이유는 남녀평등에 기여한 것뿐만은 아닌 셈이다.

그는 요즘 중국, 한국, 미국을 오가며 살고 있다. 주거지는 아예 베이징으로 옮겼다. 해외시장 개척 최전방에서 직접 뛰기 위해서다.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는 골리앗의 그것에 뒤지지 않는다. 바쁜 시간을 쪼개 노동부의 청년고용 홍보대사까지 맡은 그를 만나 ‘한경희’라는 브랜드로 사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11년 전인 1999년 어느 날, 깔끔한 성격 탓에 늘 팔팔 끓인 물로 욕실과 싱크대를 청소하던 주부 한경희는 “휴~”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끓는 물이 스팀으로 나오는 청소기가 있다면 힘들게 걸레질 안 해도 될 텐데….”

이게 시작이었다. 스위스(IOC), 미국(MBA 취득)에서 직장 생활과 공부를 하고 행정고시(교육행정 5급)까지 섭렵한 그가 정작 집안일에서 부딪친 작지만 큰 불편함, 그게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된 것이다. 한 집 걸러 하나씩 있다는 ‘국민 청소기’인 스팀청소기는 그렇게 탄생했다.
프로필을 보니 ‘도전의 연속’입니다. 안정된 공무원 신분을 버리고 사업을 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뭡니까.

제품에 대한 확신 때문이죠. 스팀청소기는 온돌을 아는 한국 사람만 고안할 수 있는, 그러나 세계 가정에서 통하는 제품이라는 믿음이 인생의 전환점을 만든 겁니다. 자신이 없었다면 공무원 생활을 그만두지 못했을 거예요.

당시 교육부 일에 한창 보람과 긍지를 느끼며 일했고, 가족의 반대도 심했거든요. 반드시 내가 고안한 대로 만들어야 한다는 고집으로 사표를 던졌던 겁니다.

스팀청소기가 처음부터 인기몰이를 한 건 아니었지요?

1999년 창업해 2001년 스팀청소기 발명특허 등록을 받고, 2003년 초 디자인과 실용성을 더 높인 ‘한경희 스팀청소기’를 다시 출시하는 과정을 거쳤어요. 4년여 동안 정말 힘들었습니다. 직원들 월급은 고사하고, 양가 부모님 집까지 은행에 저당 잡힐 정도로 형편이 좋지 않았지요.

그래도 희망 하나로 버텼는데 2004년에야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스팀청소기로 150억 원을 돌파하고, 2005년부터는 매출 1000억 원대에 진입했지요. 주부들 사이에 입소문이 퍼지기 시작하면서 반전이 된 거죠.
[나의 꿈 나의 인생] 도전의 연속인 삶… 꿈 향해 달리는 난 행복하다
흔히 ‘사업가는 DNA가 다르다’고 합니다. 직접 해보니 이 말이 맞던가요?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사업하는 사람이 가져야 할 자세, 가치관, 생활 습관 등이 보통 사람과 같아서는 곤란하니까요.

친정, 시댁 모두 사업하는 사람이 없으니 타고난 DNA는 없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목표를 세워놓고 전진하면서 사업가 DNA를 만들어가고 있어요.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사업가 DNA를 키우는 셈이죠.

해외시장 개척에 여념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기대한 만큼 성과가 나오고 있습니까?

미국·중국·일본 시장에 스팀청소기, 스탠드형 스팀다리미, 클리즈 워터살균기 등을 보급하면서 글로벌 기업으로 본격적인 도약을 시작했어요. 반응은 아주 좋은 편입니다.

2007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 지사를 설립했는데, 매년 세 자릿수 성장률을 보이고 있거든요. 2008년 100억, 2009년 300억에 이어 올해는 최소 500억 원의 매출을 목표로 잡고 있어요.

모두 주부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제품력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미국의 경우 알레르기 질환이 급증하면서 카펫 문화가 원목마루 문화로 바뀌고 있어요. 이에 착안해 카펫 청소에 유용한 ‘살균트레이’를 개발해 기본사항으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미국 주부들 반응은 어떻습니까.

지난해 글로벌 1위 홈쇼핑 채널인 QVC에서 약 16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어요. QVC에서만 전년 대비 253%의 매출 신장률을 보인 겁니다.

이 기록은 QVC 판매 기업 가운데 최고 매출 신장률이어서 매년 QVC가 수여하는 ‘라이징 스타(Rising Star)’상을 수상하기도 했지요. 또 오프라인 채널에도 속속 입점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미국 내 800개의 매장을 보유한 백화점 메이시스(Macys)에 입점했고, 올해는 미국 1위 백화점인 시어스(SEARS)에 입점하기로 했어요.

가을부터는 할인점 타깃(Target)에서도 스팀청소기를 만날 수 있고요. 제3국 바이어들 사이에 제품 인지도가 상승해 브라질, 러시아, 호주, 프랑스, 남아공 등에서도 수출 문의가 꾸준히 들어오고 있어요.

중국 시장에 거는 기대도 크지요?

지난해 여름부터 온 가족이 중국 베이징으로 이주를 했어요. 중국 법인에 상주하면서 현지 가전 시장을 파악하고 경영 전략을 세우기 위해서죠. 중국어 공부하는 게 너무 어렵지만(직원들은 한 대표가 짧은 시간 동안 놀랄 만한 중국어 실력을 길렀다고 말했다) 시장 전망이 밝아서 기쁜 마음으로 도전하고 있어요. 우선 중국인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스탠드형 스팀다리미 보급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20대의 한경희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공부를 무척 열심히 했을 것 같은데….

공부만 하진 않았어요. 그때만 해도 해외여행 자유화 이전이라서 어떻게든 외국에 직장을 얻어서 넓은 세상을 무대로 일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그리고 대학 시절부터 부모님에게서 탈출하려고 끊임없이 독립 투쟁을 했어요.

한번은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살면서 불어를 공부하겠다고 자취방을 얻었다가 다시 집으로 끌려들어가기도 했어요. 부모님이 아주 엄하셨어요. 그래도 졸업과 함께 외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꿈을 이뤘으니,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죠.

외국 생활은 어땠나요?

20대를 통틀어 보면 더 넓은, 더 많은 기회를 얻기 위해 몸부림친 시기였던 것 같아요. 스위스 IOC에서 2년 동안 일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MBA 과정을 밟으면서 직장 생활도 했는데, 그때 경험이 사업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한 대표는 미국에서 호텔 영업, 부동산 개발업무, 원달러 스토어 등 다양한 직장 생활을 경험했다).

인생에 영향을 준 책이나 영화가 있습니까.

10대 시절에 문학 책을 참 많이 봤어요. 20대 이후에도 실용서보다는 순수문학을 좋아했고요. 특히 10대 때 읽었던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가 기억에 남아요. 몸과 영혼이 자유롭기 위해서는 24시간을 48시간처럼 쓰며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는 걸 알았거든요.

한경희라는 이름을 브랜드로 쓰는 이유가 따로 있는지요.

중소기업이 가장 힘들어하는 게 바로 마케팅입니다. 자금이나 인력이 달려서 대기업과 경쟁하기가 정말 어렵지요. 더구나 스팀청소기는 기존에 없던 제품이라서 무작정 광고만 할 수도 없었어요.

특히 유사품이 돌면 꼼짝없이 시장을 뺏기는 겁니다. 고민 끝에 이름을 써서 각인을 시키기로 했어요. 스팀청소기의 ‘원조’라는 걸 강조하면서 믿음을 주는 마케팅 효과도 기대했는데, 결과적으로 잘한 선택이 됐어요.

최근 노동부 청년고용 홍보대사로 위촉됐습니다. 평소 고용 문제에 관심이 많은가요.
기업이 가진 가장 큰 과제 중 하나가 최고의 인재를 채용하는 것 아닐까요. 좋은 인재를 확보해야 회사가 발전합니다. 하지만 최근 채용시장을 보면 대기업 선호 현상이 너무 강해요. 중소기업 입장에선 좋은 인재를 뽑을 기회가 적은 겁니다.

중소기업에 대한 구직자의 인식도 왜곡돼 있어요. 구직자는 많은데 중소기업은 뽑을 사람이 없는, 미스매칭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작은 역할이나마 하고 싶어서 노동부의 요청을 수락했어요.

[나의 꿈 나의 인생] 도전의 연속인 삶… 꿈 향해 달리는 난 행복하다
한경희생활과학도 인재 채용에 어려움을 겪습니까.


다른 중소기업에 비해 상황이 좋은 편입니다. 비교적 알려진 기업이라 운이 좋은 거죠. 지난해엔 16명 채용에 1000명이 지원했어요. 올 상반기에는 2명 채용에 600명이 지원했고요.

하지만 지원자들을 만나보면 제조업과 중소기업에 대해 근본적인 인식 문제가 있다는 걸 느낍니다. IT, 통신 등 소위 잘나가는 분야에 비해 호감도가 낮고, 서울 변두리(금천구 가산동)에 사옥이 있다는 것도 꺼리는 요인이더군요.

고용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국민 인식부터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 자신의 커리어를 개발해 평생 직업을 가진다는 생각으로 구직활동을 해야 합니다. 노동부 등에서 지원하는 여러 가지 직업 교육·자기 계발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도움이 될 겁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절실하게 느끼는 점은, 다양한 직업을 접할 기회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거예요.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직업이 있는데, TV 등을 통해 알려진 소수의 직업만 좇고 있어요.

장래희망이 연예인이라는 아이들은 동경의 대상이 TV 속 연예인뿐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거죠. 베이징 초등학교만 보더라도 국가 차원에서 ‘직업 배우는 날’을 정해 직업 체험의 기회를 주더군요. 스스로 평생 직업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해요.


한경희

1964년 생
1986년 이화여대 불문과 졸업
1986년 스위스 올림픽위원회(IOC) 입사
1990년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원 MBA
1998년 교육부 교육행정사무관
1999년 한영전기(한경희생활과학 전신) 설립
2008년 월스트리트저널 ‘주목해야 하는 여성 기업인 50인’ 선정
2010년 노동부 청년고용 홍보대사

[나의 꿈 나의 인생] 도전의 연속인 삶… 꿈 향해 달리는 난 행복하다
한경희가 꼭 만들어보고 싶은 것


‘예뻐지는 기계’ 꿈…화장품 론칭은 전초전

한경희 대표는 세상에 없던, 그러나 있다면 더없이 편리한 가전제품을 만들어왔다. 뜨거운 스팀이 나와서 찌든 때를 순식간에 없애주는 스팀청소기가 그랬고, 쪼그려 앉을 필요 없이 선 채로 30초만 쓱쓱 하면 주름이 쫙 펴지는 스팀다리미가 그랬다. “고객 삶의 질을 끊임없이 높이는” 게 목표라는 그가 앞으로는 어떤 제품을 만들어낼까.

“꼭 만들어보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예뻐지는 기계”라고 말했다. 뜻밖의 답이면서,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답.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는 제품을 만들어온 한 대표에게 딱 어울리는 ‘희망사항’이기도 하다.

한 대표는 작년부터 ‘예뻐지는 기계 만들기’ 프로젝트의 전초전을 시작했다. 유기농 화장품 브랜드 ‘오앤(O&)’을 론칭하고 미국과 한국 시장에서 바람몰이 중이다. 이미 50만 세트가 판매됐을 정도다.

“여성이라면 누구나 예뻐지고 싶은 욕구가 있잖아요? 명쾌한 해답을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죠. 그 첫 번째 스텝으로 화장품을 만든 건데, 반응이 좋아서 아주 신납니다.”

한 대표에게 사업 영역은 별 고려사항이 아니다. 가전제품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고객, 특히 여성의 삶의 질을 높이는 제품이라면 그 무엇이든 도전의 대상이라는 것. 그래서 가전에 익숙했던 사람들도 한경희표 화장품을 그리 낯설지 않게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한경의 대표가 원하는 인재는?

“공부 못했어도 열정만 있다면야…”

“사람 됨됨이를 가장 먼저 봐요. 그릇이 된 사람인가, 성실한 사람인가… 면접을 통해 대화를 나눠보면 얼추 알 수 있지요. 흔히 말하는 스펙은 별로 보지 않아요. 공부는 좀 못했어도 일에 대한 열정이 있는 사람이 더 좋아요.”

한경희생활과학은 지난해 16명의 신입사원을 뽑기 위해 채용 공고를 냈다. 지원자 수는 1000명에 달했다. 올 초 2명의 신입을 뽑을 때도 600명의 지원자가 원서를 냈다. 직원 수 150명의 중소기업이지만 한경희 브랜드가 널리 알려지면서 대기업 못지않은 지원자가 몰리고 있는 것이다.

미국, 중국, 일본으로 시장을 넓히고 있는 한경희생활과학이 필요로 하는 인재는 어떤 사람일까. 한 대표는 “대학 생활 열심히 한 사람에게 높은 점수를 준다”고 말했다.

“학벌이나 학점이 좋지 않은데, 그나마 다른 활동도 별로 한 게 없는 사람은 비호감이죠. 무언가 열심히 하느라 학점을 놓쳤다면 그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기 삶에 열정이 없는 경우는 곤란해요.”

한 대표에게 “최종 면접에서 자주 하는 질문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잠시 망설이던 그는 ‘천기누설’급 팁(tip)을 공개했다. “최종 면접에서 합격 후보자에게 던지는 질문이 따로 있어요. ‘5년 후 당신의 미래는 어떨 것 같습니까’라는 질문이죠. 이 질문을 받는 것은 우선 사장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뜻입니다.”

박수진 기자 sjpark@hankyung.com│사진 서범세 기자 joyci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