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진 전주 남부시장에 어느 날 칵테일바, 보드게임 카페, 멕시코 레스토랑이 생겼다. 일부러 전통시장과 어울리지 않는 업종만 고른 것처럼 ‘뜬금없는’ 등장. 그러나 그날 이후 ‘한물간’ 시장은 기발한 청년들의 둥지로 다시 태어났다. 폐허처럼 남아 있던 시장 2층 6개 동이 정말(레알) 뉴타운이 된 것이다. 그래서 이름도 ‘레알뉴타운’이다.
[창간 3주년 특집] 우리의 모토는 ‘적당히 벌어서 아주 잘 살자!’
2012년 5월,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다시피 조용하던 전주 남부시장 2층이 시끌벅적해졌다. ‘장사꾼’을 자청하는 20대들이 나타나 청소를 시작하더니 하나둘씩 간판을 내걸기 시작했다. 터줏대감 상인들은 ‘무슨 젊은이들이 전통시장에서 장사하려고 하느냐’며 탐탁지 않아 했다.

1년이 지난 지금, 그곳엔 17개 점포가 옹기종기 들어선 ‘레알뉴타운’이 되었다. 빛바래고 가라앉았던 분위기는 발랄하게 살아났다. 이곳은 문화관광부가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해 추진한 ‘문전성시 프로젝트’를 통해 ‘레알뉴타운’으로 거듭났다. 청년 장사꾼을 선발해 창업을 지원하고 전통시장도 살리는 윈-윈 프로젝트인 셈이다.

세 번의 사업설명회를 통해 자신의 사업을 펼칠 이들을 모집한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4 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보일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다. 선정된 청년 사업가들은 야시장을 열고 문화 클래스를 운영하면서 시민들을 시장으로 불러 들였다. 특히 10~20대의 호응을 얻은 것은 큰 성과다. 불과 1년 만에 시장 분위기는 180도로 달라졌다.
[창간 3주년 특집] 우리의 모토는 ‘적당히 벌어서 아주 잘 살자!’
발길 끊긴 시장에 새 생명을 심다

‘만지면 사야 합니다.’ 나지막히 읊조리는 듯 적혀 있는 한쪽 벽의 문구는 ‘미스터리상회’에서 내건 것이다. 셔터를 누르지 않고서는 지나갈 수 없는 명소로, 동갑내기 친구인 임유란(29)·황수연(29) 공동 대표가 운영하는 디자인 스튜디오다.

“레알뉴타운의 포스터를 디자인해 달라는 의뢰가 들어와서 처음 알게 됐어요. 디자인과 서양화를 전공한 우리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 같더라고요. 처음에는 시장에서 디자인을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됐지만 지금은 시장에 필요한 포스터를 만들고 로고도 디자인하면서 남부시장의 ‘디자인 응급센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어요.”

두 사람은 아이템 회의부터 콘셉트 회의, 자료 수집, 디자인 작업을 거쳐 제작에 이르기까지 똑 부러지게 해나가고 있다. 원래 직장에 다니던 임유란 씨는 이 ‘재미있는 일’에 반해 사표를 던지고 레알뉴타운에 합류했다. 수입이 좋지 않을 때도 있지만 단 한 번도 선택을 후회한 적은 없다고.

“레알뉴타운에는 살벌한 경쟁의식이 없어요. 오히려 서로 도움을 더 주지 못해서 안달이니까요. 전통시장의 분위기를 그대로 닮았죠. 더 어릴 때 도전하지 못한 게 후회될 정도로 만족하고 있어요. 사람들이 ‘미스터리상회’를 알아보고 좋아해주는 게 무척 행복해요. 이렇게 가다보면 이태원에 2호점, 신사동에 3호점을 내고 이케아를 뛰어넘게 되겠죠!”

레알뉴타운에는 먹을거리 골목이 있다. 멕시코 음식인 타코부터 보리밥까지, 없는 음식 빼고 다 있다. 이곳에서 일본식 선술집 ‘호카호카’를 운영하는 한선화(29) 대표는 오코노미야키가 주특기. 지난해 우연히 야시장에 참가했다가 ‘청년 장사꾼 프로젝트 2기’에 지원해 레알뉴타운의 멤버가 되었다.

“전통시장에 빈대떡이 아닌 오코노미야키라니, 젊은 층만 생각하는 건 아닌가 걱정도 됐어요. 하지만 일본에 가서 배워 온 철판 요리 솜씨를 포기할 순 없었어요. 손님이 원한다면 철판에 떡을 구워드릴 만큼 열정 하나로 임하자 결심했죠.”

한 대표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손님이 적다고 투정 부릴 생각도, 신세 한탄할 생각도 없다”며 “내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런 긍정 마인드는 레알뉴타운의 젊은 사장님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특징이다. 6명이 앉을 공간이 전부인 칵테일바 ‘차가운새벽’의 바텐더 강명지(29) 씨도 다르지 않다. 국회에서 정책비서으로 일했던 그는 우연히 보게 된 레알뉴타운 포스터에 이끌려 이곳에 왔다.

“전주에 괜찮은 칵테일바 한번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술을 잘 마시지 못해서 자연스럽게 칵테일에 관심을 뒀고, 직접 만들어보면서 관련 지식도 공부해 자신이 있었거든요. 같은 업계 전문가들도 엄지를 치켜들 만큼 실력이 좋다는 말을 들으면 아주 행복해요.”

그의 관심사는 칵테일만이 아니다. 디자인과 밴드 활동까지 활동 범위가 대단히 넓다. ‘좋아하는 일 하면서 재밌게 살기’가 최대 관심사다.

“다른 사람의 기준에 맞춰서 살 필요 있나요?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남이 시키면 쉽게 지치잖아요. 자신에게 충실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열쇠는 스스로가 갖고 있다는 점을 우리 잊지 말아요.”

레알뉴타운에서 만난 4명의 사장님들은 하나같이 유쾌하다. ‘적당히 벌어서, 아주 잘 살자!’는 멋들어진 모토도 똑같았다.


글 김은진 인턴 기자│사진 황수연(미스터리상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