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주년 특집

가수 윤하를 처음 본 것은 음악 프로그램이 아닌 다큐멘터리였다. 가수의 꿈을 안고 일본으로 홀로 떠나 오리콘 차트를 강타한 열여섯 살의 소녀. “HOT 오빠들을 만나고 싶어 가수가 됐다”던 패기 넘치는 소녀는, 어느새 “한 사람의 시대에 함께 할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근사한 싱어송라이터로 성장했다.
싱어송라이터 윤하, “한 발 빼고 사는 삶, 재미없지 않아?”
싱어송라이터 윤하
1988년생
한국외대 일본어학과 졸업
2004년 싱글 앨범 ‘유비키리’로 데뷔


“식사를 하고 차도 마실 수 있는 일본의 작은 카페였어요. 저는 건반을 세팅해놓고 주방에 들어가는 거예요. 그리고 잠시 기다렸다가 주방문을 열고 무대로 나가죠. 뭔가 등장하는 장치는 필요한데 그럴 만한 공간이 없었거든요.(웃음) 카페에 손님이 두 분 계셨는데, 한 분은 식사를 하다가 나가시고 나머지 한 분은 제 노래를 끝까지 들어주셨어요. 제 인생, 첫 무대였죠. 누군가 나의 노래를 들어준다는 그 행복한 기분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윤하는 자신의 데뷔 무대를 떠올리며 설레는 표정을 지었다. 10년 전에는 한 명의 관객을 앞에 두고 노래를 불렀지만, 이제는 수많은 관객의 환호를 받으며 무대에 오르는 그녀. 하지만 윤하에게 무대 위는 여전히 가슴 떨리는 곳이다. 그녀는 “무대 위에 있을 때 내 존재의 이유를 느낀다”고 말한다.
싱어송라이터 윤하, “한 발 빼고 사는 삶, 재미없지 않아?”
‘용기의 아이콘’ 윤하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쯤 학교를 자퇴하고 일본으로 떠났어요. 여기저기 돌렸던 데모테이프를 보고 일본에서 연락이 왔었거든요. 그때는 학업을 그만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죠. 제가 원래 갖고 싶은 건 꼭 가져야 하는 성격이거든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일본에 갔어요.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좀 아찔해요. 내가 정신이 나갔었구나 싶죠.(웃음)”

사람들은 꿈을 향해 용기를 낸 소녀를 자랑스럽게 바라보기도 했고, 홀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안쓰럽게 보기도 했다. 하지만 윤하는 그 시간이 남들의 생각처럼 힘들기만 했던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저는 어린 나이에 외국에서 일을 시작했잖아요. 그래서 모두들 친절하게 일을 잘 알려주셨어요. ‘얘는 어리니까 아무것도 모르겠구나’ 생각한 거죠. 하지만 또래 친구들이 이제 막 일을 시작하는 것을 보면 굉장히 혹독해 보여요. 커피 한 잔 마실 시간도 없다더라고요. 그런 것을 보면 일찍 시작해서 더 좋은 환경에서 일을 배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또 어디든 떨어뜨려놔도 잘 살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고요.”

하지만 가수 활동 때문에 고등학생 때의 추억이 없다는 것은 여전히 아쉬운 점이다. 때문에 그녀는 바쁜 스케줄 속에서도 대학에 진학해 OT도 참가하고 수업도 열심히 들으며 마음속의 갈증을 채우려고 노력했다. 당시에는 학교생활이 익숙하지 않은 윤하를 대학 친구들이 많이 도와줬는데, 요즘은 친구들이 윤하에게 조언을 구하는 일이 많아졌다.
싱어송라이터 윤하, “한 발 빼고 사는 삶, 재미없지 않아?”
“‘사회생활이 이렇게 힘든 거냐’ ‘어떻게 하면 거래처와 원활한 소통을 할 수 있느냐’ ‘상사와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느냐’ 같은 고민거리를 제게 많이 털어놔요. 재테크 방법에 대해서도 많이 물어보고요.(웃음) 그럴 때마다 ‘빨리 환상을 깨라’는 이야기를 하죠. 누군가를 위해 일하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 일한다는 것을 기억하라고도 말하고요.”

얼마 전 디지털 싱글 ‘아니야’로 화제가 된 그녀는 곧 야심차게 준비한 미니앨범을 내놓을 예정이다. 가요계 선후배들과 공동 작업 형식으로 만든 콜라보레이션 앨범으로 윤하에게는 굉장히 의미 있는 앨범. 6월 21부터 23일까지는 콘서트를 통해 팬들과 만날 계획도 있다.

“무대에서 내려오면 항상 짜릿하고 스펙터클한 기분이 들어요. 처음에는 나를 위해 가수를 시작했어요. 갖고 싶고, 인기가 많아지고 싶고, 사람들이 나를 봐줬으면 하는 어린 마음에서요.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저를 있게 해주는 분들을 위해 노래하게 되더라고요. 그분들이 제 음악을 좋아해주기 때문에 제가 있을 수 있는 거죠.”

인터뷰 말미, 비슷한 또래지만 자신의 꿈을 향해 용기 있게 나아가는 윤하의 이야기에 푹 빠진 대학생 기자들은 자신의 고민거리를 그녀에게 털어놓으며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그녀는 대학생 기자들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의미 있는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요즘 대학생들은 참 똑똑하고 가진 게 많고 통찰력도 뛰어난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한 발 빼고 산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아요. 한 가지에 올인하기보다는 A가 아니면 B, B가 아니면 C라는 식으로 늘 모든 일에 여지를 두죠. 연애를 할 때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저는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한 살이라도 어릴 때 확 불태우고 모든 걸 제쳐두고 몰입하는 경험을 해봤으면 해요. 제가 그렇게 살았잖아요. 적어도 후회는 없으니까요.”


글 박해나 기자│사진 김기남 기자